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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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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노시마 유적은 금제 인장과 세형동검의 거푸집이 출토되어, 야요이 시대부터 한반도·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한 북부 규슈 지역 일대의 소국인 나코쿠(奴国)를 비정하는 근거가 된다.
시카노시마 유적은 금제 인장과 세형동검의 거푸집이 출토되어, 야요이 시대부터 한반도·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한 북부 규슈 지역 일대의 소국인 나코쿠(奴国)를 비정하는 근거가 된다.
==참고문헌==
* 福岡市教育委員会. (1995). <i>志賀島·玄界島</i>.
* 福岡市立歴史資料館. (1984). <i>漢委奴國王</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시카노시마 유적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히가시구(東区) 시카노시마(志賀島)
관련 정보
키워드 금제 인장, 세형동검, 거푸집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2
집필자 김상민



설명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히가시구(東区) 시카노시마(志賀島)에 위치한 유적군이다. 유적은 하카타만(博多湾)의 동북쪽으로 이어진 우미노나카미치(海ノ中道) 해안 사구와 연결되는 연륙도(連陸島)에 입지한다. 연륙도는 동서 약 2㎞, 남북 약 3.5㎞의 타원형 섬으로 내부는 구릉성 산지이다.

1913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례 조사가 이루어져 조몬 시대부터 역사 시대에 이르는 24개소의 유적이 조사되었다. 그중 야요이 시대 유적은 야요이 토기와 석기류가 수습된 11개소가 보고되었지만, 실제 조사가 이루어진 유적은 한나라에서 하사된 금제 인장(金印) 출토 추정지와 가츠우마 지구(勝馬地區) 뿐이다.

금제 인장은 1784년 농민이 경작 중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도장면에는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으로 음각되어 있다. 1913년 나카야마 헤이지로(中山平次郞)에 의해 금제 인장 출토 추정지가 비정되어 조사된 이후 긴인공원(金印公園) 조성(1973년) 및 도로 확장 공사(1989년)와 관련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금제 인장과 관련된 유구와 유물은 확인되지 않아 금제 인장이 시카노시마에서 발견된 원인은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다. 한편 1947년 마에다 도미조우(前田富蔵)의 주택 우물 공사 중 발견한 세형동검거푸집 을 계기로 모리 테이지로(森貞次郞) 등에 의해 출토 지점 주변이 조사되었다. 거푸집과 관련된 유구와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주변에서 야요이 시대 중기~종말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시카노시마 유적은 금제 인장과 세형동검의 거푸집이 출토되어, 야요이 시대부터 한반도·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한 북부 규슈 지역 일대의 소국인 나코쿠(奴国)를 비정하는 근거가 된다.

참고문헌

  • 福岡市教育委員会. (1995). 志賀島·玄界島.
  • 福岡市立歴史資料館. (1984). 漢委奴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