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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취안 유적의 조사를 통해 ‘샤자뎬 하층 문화-[[샤자뎬상층문화|샤자뎬 상층 문화]]-전국 시대 연문화’의 문화층이 차례로 퇴적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젠핑 일대의 문화 변동 양상을 파악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샤자뎬 상층 문화의 분기 설정 및 토기 형식 변천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수이취안 유적의 조사를 통해 ‘샤자뎬 하층 문화-[[샤자뎬상층문화|샤자뎬 상층 문화]]-전국 시대 연문화’의 문화층이 차례로 퇴적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젠핑 일대의 문화 변동 양상을 파악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샤자뎬 상층 문화의 분기 설정 및 토기 형식 변천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 河北博物馆. (2018). <i>辽宁建平水泉遗址夏家店下层文化陶器类型分析</i>.
* 辽宁省考古博物馆学会. (1986). <i>建平水泉遗址发掘简报</i>.
* 靳枫毅. (1983). 辽宁建平县的青铜时代墓葬及相关遗物. <i>考古, 8</i>, 679–694, 713, 770–771. https://oversea.cnki.net/KCMS/detail/detail.aspx?dbcode=CJFD&dbname=CJFD7984&filename=KAGU198308001&uniplatform=OVERSEA&v=YDfWAT_kqhyyrXdLSxsxugdA7NBCiUtIkeKVl0_R7igAJkJHxq09CdbT3xsMwh6d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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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수이취안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수천 유적(建平 水泉遺蹟)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젠핑현(建平縣) 주루커진(硃碌科鎭) 수이취안촌(水泉村)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환호, 집자리, 구덩이, 샤자뎬 상층 문화, 샤자뎬 하층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주호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젠핑현(建平縣) 주루커진(硃碌科鎭) 수이취안촌(水泉村)에 위치한다. 유적은 청쯔디(城子地) 대지 위에 있으며, 주변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1976년 발견되어 1977~1978년 약 2,200㎡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토축(土築) 성벽과 환호가 확인되었으며, 유적 내부에서 샤자뎬 상·하층 문화(夏家店上·下層文化), 전국 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하층에서는 집자리 120기, 구덩이(竪穴) 107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원형이 다수이고 방형도 일부 확인되었다. 집자리 중심에 부뚜막이 있고 바닥은 진흙이나 회를 발랐으며 벽은 토축이다. 구덩이의 형태와 규모는 다양하며 대부분 집자리 부근에 분포하며 일부는 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출토 토기의 태토는 조질(粗質) 위주이며, 소수의 니질(泥質)도 확인된다. 대부분 회갈도이며 흑도나 홍도도 확인되며, 일부는 물레로 수정한 것도 있다. 기종은 언(甗), 력(鬲), 정(鼎), 두(豆), 관(罐), 호(壺), 옹(甕), 분(盆), 뢰(罍), 궤(簋) 등이 확인되었다. 문양은 승문(繩文), 획문(劃文), 부가퇴문(附加堆紋)이 주로 장식되며 남문(藍文)도 확인된다. 석기는 석부(石斧), 석분(石錛), 석도, 석착(石鑿), 연봉(硏棒), 연석(硏石), 석구(石臼) 등 마제 석기 위주이다. 골각기골침(骨針), 골추(骨錐), 골채(骨釵)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골분, 골착(骨鑿), 골촉(骨鏃) 등도 있다.

중층에서는 집자리 13기, 구덩이 31기, 무덤 18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원형의 지상 건물지로 중앙에 화덕 자리가 있다. 토벽과 석벽 2종류가 확인되며 바닥은 불 다짐 처리하였다. 구덩이 내부에서 탄화 곡물이 확인된 예도 있다. 출토 토기의 태토는 거칠며, 색조는 대부분 홍갈색이고 일부 회갈색도 소수 확인된다. 대부분 무문의 마연 토기이다. 언, 정, 관, 옹, 발(鉢), 잔(盞),, 반(盤), 완(碗) 등과 토제 국자와 방추차 등이 확인되었다. 석기는 석부, 반월형 석도, 석촉 등이다. 그 밖에 골추, 골침, 골채, 골촉, 패식 등의 골각기도 확인된다.

무덤은 널무덤(木棺墓)으로 무덤 구덩이와 널 사이에 소량의 돌을 채웠다. 이외에 다수의 시신을 무질서하게 매장한 매장 구덩이(亂葬坑)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껴묻거리 가 없거나 적다. 8호 무덤에서는 공병식 동검(銎柄式短劍), 동도(銅刀), 동부(銅斧), 동착(銅鑿), 동촉, 원개형 동기(圓蓋形銅器) 등의 청동기와 석기, 골각기 등이 확인되었다. 1977년 유적의 시굴 조사 범위에서 벗어난 동남쪽, 동쪽 변두리에서 7701·7801호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7701호는 무덤의 규모, 형태, 유물의 구성이 8호와 동일하여 1기의 무덤을 달리 보고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7801호 무덤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8호 무덤 출토품과 유사한 양식의 공병식 동검, 동도, 경형 동기(鏡形銅器)가 1점씩 수습되었다.

상층에서는 타원형의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지름 약 2.9m이며, 길이 1m, 너비 0.6m의 출입구 시설이 확인되었다. 출입구는 황토를 다진 후 그 위에 판돌(板石)을 한 벌 깔았다. 바닥은 황토를 다진 후 불다짐 처리하였는데 출입구보다 낮다. 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화덕이 설치되어 있다. 화덕 위에는 판돌, 토기 편을 이용한 굴뚝이 확인된다. 상층에서는 전형적인 연나라 계통 토기가 출토되며, 동도, 동추(銅錐), 동촉, 철경 동촉(鐵頸銅鏃) 등의 청동기와 주조 철부(鑄造鐵斧), 반월형 철도(半月形鐵刀) 등의 철기, 명도전(明刀錢) 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각 층의 연대를 확인하였다. 하층은 5층 시료가 4130±110 BP, 41호 집자리 내 목탄이 3830±130 BP로 측정되었다. 중층은 1호 구덩이 출토 탄화 곡물이 2510±100 BP, 2층 출토 목탄이 2380±80 BP로 확인되었다. 보고자는 연대 측정 결과를 통해 유적 하층의 상한 연대가 기원전 23세기까지 소급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하층에 속한 샤자뎬 하층 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21~15세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층의 상한 연대는 서주 시기로 보고되었는데, 중층 무덤들은 대체로 서주 중기 또는 기원전 10~9세기경으로 편년된다. 중층의 하한 연대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수이취안 유적의 조사를 통해 ‘샤자뎬 하층 문화-샤자뎬 상층 문화-전국 시대 연문화’의 문화층이 차례로 퇴적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젠핑 일대의 문화 변동 양상을 파악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샤자뎬 상층 문화의 분기 설정 및 토기 형식 변천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