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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97년 || 황탄리유적 || 2001 || 고려대학교매장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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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매장문화재연구소. (2001). <i>황탄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8361867
* 국립청주박물관. (1993). <i>미호천유역지표조사보고서</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5191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1). <i>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구간 내 논산 장화리 1·2 및 야화리 저지대 유적</i>.
* 한국고고환경연구소. (2012). <i>청원 황탄리 바리미골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03137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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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황탄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청주 황탄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황탄리 산10-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구덩이, 고인돌, 돌덧널무덤, 독무덤, 매납 유구, 도랑, 가락동식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돌 두름식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병숙



설명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황탄리 산10-11 일원에 위치한다. 황탄리는 미호평야 배후의 낮은 구릉 지대에 자리하며 인근에는 미호천이 흐르고 있어 취락 입지에 양호한 조건을 제공하는데, 실제로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수행한 미호천 유역 지표 조사로 많은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후 경부 고속 철도와 호남 고속 철도 건설에 따른 발굴 조사를 통해 집자리 20기, 구덩이 16기, 고인돌 3기, 돌덧널무덤(石槨墓) 4기, 독무덤(甕棺墓) 1기, 매납 유구(埋納遺構) 2기, 도랑(溝)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2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평면이 장방형에 내부에서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가 설치된 것으로 2기가 조사되었다. 가락동식 집자리로 볼 수 있으나, 유물은 무늬가 없는 바리 토기(鉢形土器)만이 확인되었다. 다른 하나는 송국리식 집자리로 18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 17기, 방형 1기로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기둥 구멍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는 내부 또는 양 끝에 걸쳐 2개의 기둥 구멍이 양쪽으로 배치된 형태이다. 예외적으로 황탄리 유적의 KC-003, 006 집자리에서는 중앙에 1개의 기둥이 중심축으로 세워지는 형태가 확인되었다. 황탄리 바리미골 유적 KC-003 집자리에서는 2개의 돌출부가 확인되어 외부 돌출식 출입구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면적은 대부분 10~16㎡ 사이에 해당하며, 4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된 집자리는 20㎡가 넘는다. 바리미골 유적에서 집자리의 배치는 약 6~60m 정도의 간격을 이루며 능선 방향을 따라 직선상의 분포를 보이는데, 구릉 사면에서 아래쪽으로 갈수록 유구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16기가 조사되었는데, 바리미골 유적은 대부분 집자리 주변에서 1기 또는 2기가 확인되어 집자리의 부속 시설일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집자리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위치하는 구덩이는 상대적으로 규모도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별도의 기능을 가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인돌은 3기가 조사되었으나, 모두 덮개돌(上石)만 남아 있다. 국립청주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덮개돌의 윗면에는 6개씩의 못 자국이 남아 있다.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돌덧널무덤은 4기가 확인되었으며 대형의 KM-401는 구릉 정상부에, 나머지 무덤들은 사면을 따라 조성되었다. KM-401만이 짧은 벽에 판돌을 사용하였으며, 다른 돌덧널은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KM-401에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돌살촉, 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상부가 유실된 채로 옆으로 누워 세워진 상태이다. 일반적인 송국리식 옹관의 매장 방식이 똑바로 세우거나 비스듬히 눕혀서 안치하는 점을 감안하면 무덤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거나 다소 늦은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납 유구는 2기가 조사되었는데, 각 1점씩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모두 몸통 상반부가 유실된 채로 똑바로 세워진 상태이며 두 토기는 기형과 크기가 거의 유사하지만 2호의 것은 밑 부분이 결실된 채로 매납된 듯하다. 토기 바닥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독널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KC-006호 집자리에서 2420±30 BP, KC-005호 집자리에서 2750±40 BP 등의 값을 얻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지표조사 1992년 11월 24일~1992년 12월 13일 미호천유역지표조사보고서 1993 국립청주박물관
발굴조사 1997년 황탄리유적 2001 고려대학교매장문화재연구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