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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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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화강리 고인돌[平壤 華剛里支石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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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평양 화강리 고인돌, 평양 화강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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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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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고인돌은 2개의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로 조립한 [[탁자식고인돌|오덕형(卓子式, 五德型)]]이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1.6m, 너비 1.3m, 높이 1.8m이며 주위는 평지보다 20~30m높다. 남쪽 받침돌은 길이 2.6m, 너비 1.9m, 높이 1.8m로 윗면은 직선으로 잘 다듬었으며, 양 모서리에서 각각 0.35m 들어와 지름 0.1m의 반원의 홈이 있다. 북쪽 받침돌의 특징도 남쪽과 같으며, 모두 안기울임을 주어 세웠다. 덮개돌(上石)은 현재 길이가 3.6m에 불과하나 원래는 4.6m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알 수 없다.
남은 고인돌은 2개의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로 조립한 [[탁자식고인돌|오덕형(卓子式, 五德型)]]이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1.6m, 너비 1.3m, 높이 1.8m이며 주위는 평지보다 20~30m높다. 남쪽 받침돌은 길이 2.6m, 너비 1.9m, 높이 1.8m로 윗면은 직선으로 잘 다듬었으며, 양 모서리에서 각각 0.35m 들어와 지름 0.1m의 반원의 홈이 있다. 북쪽 받침돌의 특징도 남쪽과 같으며, 모두 안기울임을 주어 세웠다. 덮개돌(上石)은 현재 길이가 3.6m에 불과하나 원래는 4.6m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석광준. (2003). <i>각지고인돌무덤조사 발굴보고</i>. 백산자료원. https://www.riss.kr/link?id=M9095742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화강리 고인돌
기본 정보
동의어 평양 화강리 고인돌, 평양 화강리 지석묘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양직할시 강동군 화강리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오덕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양직할시 강동군 화강리에 위치한다. 강동역에서 희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4㎞ 거리인 화강리 수정천가에 고인돌 2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1기만 남아 있다.

남은 고인돌은 2개의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로 조립한 오덕형(卓子式, 五德型)이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1.6m, 너비 1.3m, 높이 1.8m이며 주위는 평지보다 20~30m높다. 남쪽 받침돌은 길이 2.6m, 너비 1.9m, 높이 1.8m로 윗면은 직선으로 잘 다듬었으며, 양 모서리에서 각각 0.35m 들어와 지름 0.1m의 반원의 홈이 있다. 북쪽 받침돌의 특징도 남쪽과 같으며, 모두 안기울임을 주어 세웠다. 덮개돌(上石)은 현재 길이가 3.6m에 불과하나 원래는 4.6m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