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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 240-3 일원에 위치한다. 영천 별빛중학교 신설에 앞서 2013~2015년 성림문화재연구원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57기, [[구덩이|구덩이]] 3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 1기, [[구|도랑(溝)]] 13기, 및 [[통일신라|통일 신라 시대]], [[조선시대|조선 시대]] 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영천시 고경면에서 경주시 안강읍으로 통하는 호국로 변의 고경면 사무소 뒷편의 나지막한 구릉 사면부에 입지하며, 북쪽은 천장산(해발 696m)에서 뻗어 내린 구릉, 남쪽으로는 고촌천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 240-3 일원에 위치한다. 영천 별빛중학교 신설에 앞서 2013~2015년 성림문화재연구원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57기, [[구덩이|구덩이]] 3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 1기, [[구|도랑(溝)]] 13기, 및 [[통일신라|통일 신라 시대]], [[조선시대|조선 시대]] 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영천시 고경면에서 경주시 안강읍으로 통하는 호국로 변의 고경면 사무소 뒷편의 나지막한 구릉 사면부에 입지하며, 북쪽은 천장산(해발 696m)에서 뻗어 내린 구릉, 남쪽으로는 고촌천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집자리는 해발 120~131m 선상에 입지하며 가운데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밀집 분포한다. 경작과 유실로 인한 파괴가 심하여, 형태를 알 수 있는 집자리는 28기로 방형 9기, 장방형 18기, 세장방형 1기로 구분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경북-24호로 길이 8.27m, 너비 3.47m, 깊이 0.13m, 면적 28.68㎡의 세장방형이다. 내부 시설로는 [[벽도랑|벽 도랑(壁溝)]],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一’, ‘ᄀ’, ‘ᄃ’, ‘ᄆ’자 모양 등 46기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외부 돌출구는 12기(경북 6·10·15·16·18·24·25·29·32·40~42호)로 모두 [[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ᄆ’자 모양 벽 도랑과 연결되어 경사면 아래로 설치된 점에서 배수 기능으로 판단된다. 벽 도랑과 연결되어 바닥을 가로지르는 도랑은 경북 30·32호에서만 확인되며, 내부 공간의 분리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바닥식화덕자리|바닥식(床面式)]], 구덩식,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 등이 있다. 30호는 구덩식과 돌 두름식을 같이 사용하였다. 기둥 구멍은 15기에서 1~6개 설치하였고, 대부분 정형성을 찾을 수 없다. 경북-6호와 성림-2호는 6주식(柱式)이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전면 불로 다진 것(6기) 또는 부분적으로 불 다진 것(3기) 한 예가 일부 확인된다. 집자리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며,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10기이다. 도랑은 집자리 주변 또는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대부분 북편 사면부에 등고선과 직교(直交)되게 조성되었다. 가장 큰 도랑은 길이 25.42m, 너비 0.34~64m, 깊이 0.14m이다.
집자리는 해발 120~131m 선상에 입지하며 가운데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밀집 분포한다. 경작과 유실로 인한 파괴가 심하여, 형태를 알 수 있는 집자리는 28기로 방형 9기, 장방형 18기, 세장방형 1기로 구분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경북-24호로 길이 8.27m, 너비 3.47m, 깊이 0.13m, 면적 28.68㎡의 세장방형이다. 내부 시설로는 [[벽도랑|벽 도랑(壁溝)]],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一’, ‘ᄀ’, ‘ᄃ’, ‘ᄆ’자 모양 등 46기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외부 돌출구는 12기(경북 6·10·15·16·18·24·25·29·32·40~42호)로 모두 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ᄆ’자 모양 벽 도랑과 연결되어 경사면 아래로 설치된 점에서 배수 기능으로 판단된다. 벽 도랑과 연결되어 바닥을 가로지르는 도랑은 경북 30·32호에서만 확인되며, 내부 공간의 분리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바닥식(床面式), 구덩식, 돌 두름식(圍石式) 등이 있다. 30호는 구덩식과 돌 두름식을 같이 사용하였다. 기둥 구멍은 15기에서 1~6개 설치하였고, 대부분 정형성을 찾을 수 없다. 경북-6호와 성림-2호는 6주식(柱式)이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전면 불로 다진 것(6기) 또는 부분적으로 불 다진 것(3기) 한 예가 일부 확인된다. 집자리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며,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10기이다. 도랑은 집자리 주변 또는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대부분 북편 사면부에 등고선과 직교(直交)되게 조성되었다. 가장 큰 도랑은 길이 25.42m, 너비 0.34~64m, 깊이 0.14m이다.


유물은 대부분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간돌검|간 돌검]],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반달돌칼|반달 돌칼]], [[갈돌|갈돌(碾石)]],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는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간돌검|간 돌검]],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반달돌칼|반달 돌칼]], [[갈돌|갈돌(碾石)]],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경북 8호 집자리 28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80~840년), 27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820년), 10호 26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770년), 27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800년)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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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7). <i>영천 고경면 해선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542646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6). <i>영천 해선리 청동기기대 취락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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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해선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영천 해선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 240-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화덕 자리, 구멍무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 돌끌, 반달 돌칼, 갈돌, 숫돌, 가락바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석범



설명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 240-3 일원에 위치한다. 영천 별빛중학교 신설에 앞서 2013~2015년 성림문화재연구원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 57기, 구덩이 3기, 야외 화덕 자리 1기, 도랑(溝) 13기, 및 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 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영천시 고경면에서 경주시 안강읍으로 통하는 호국로 변의 고경면 사무소 뒷편의 나지막한 구릉 사면부에 입지하며, 북쪽은 천장산(해발 696m)에서 뻗어 내린 구릉, 남쪽으로는 고촌천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집자리는 해발 120~131m 선상에 입지하며 가운데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밀집 분포한다. 경작과 유실로 인한 파괴가 심하여, 형태를 알 수 있는 집자리는 28기로 방형 9기, 장방형 18기, 세장방형 1기로 구분된다. 가장 큰 집자리는 경북-24호로 길이 8.27m, 너비 3.47m, 깊이 0.13m, 면적 28.68㎡의 세장방형이다. 내부 시설로는 벽 도랑(壁溝),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一’, ‘ᄀ’, ‘ᄃ’, ‘ᄆ’자 모양 등 46기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외부 돌출구는 12기(경북 6·10·15·16·18·24·25·29·32·40~42호)로 모두 구덩식(竪穴式)이며 대부분 ‘ᄆ’자 모양 벽 도랑과 연결되어 경사면 아래로 설치된 점에서 배수 기능으로 판단된다. 벽 도랑과 연결되어 바닥을 가로지르는 도랑은 경북 30·32호에서만 확인되며, 내부 공간의 분리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바닥식(床面式), 구덩식, 돌 두름식(圍石式) 등이 있다. 30호는 구덩식과 돌 두름식을 같이 사용하였다. 기둥 구멍은 15기에서 1~6개 설치하였고, 대부분 정형성을 찾을 수 없다. 경북-6호와 성림-2호는 6주식(柱式)이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전면 불로 다진 것(6기) 또는 부분적으로 불 다진 것(3기) 한 예가 일부 확인된다. 집자리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며,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10기이다. 도랑은 집자리 주변 또는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대부분 북편 사면부에 등고선과 직교(直交)되게 조성되었다. 가장 큰 도랑은 길이 25.42m, 너비 0.34~64m, 깊이 0.14m이다.

유물은 대부분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 편, 간 돌검,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돌끌(石鑿), 반달 돌칼, 갈돌(碾石), 숫돌(砥石),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경북 8호 집자리 28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80~840년), 277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10~820년), 10호 26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770년), 273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80~800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참고문헌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7). 영천 고경면 해선리유적. https://www.riss.kr/link?id=M14542646
  • 성림문화재연구원. (2016). 영천 해선리 청동기기대 취락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