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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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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택암리 고인돌군[平壤 宅庵里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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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평양 택암리 고인돌군, 평양 택암리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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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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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택암리에 위치한다. 무학산 서쪽 가지 능선부에 [[고인돌|고인돌]] 4기가 있는데, 발굴된 2호는 [[묵방형고인돌|묵방형 고인돌]]이다. 뚜껑돌(蓋石)은 서쪽으로 약간 밀려서 경사져 있었으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4m이다. 무덤방은 남북쪽의 긴 벽, 동쪽의 짧은 벽을 길이 0.15~0.6m 정도의 다양한 판돌(板石)을 쌓아 만들었고, 그 바깥쪽에는 깬돌(割石)을 쌓아 올려 보강하였다. 특이한 점은 긴 벽이 끝난 지점에서 0.5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서쪽 벽을 만들었는데, 맨 밑에는 크고 작은 판돌 2매를 잇대어 세운 후 그 위에 판돌 조각들을 쌓아 올려 빈 공간을 메운 점이다. 서벽 바깥쪽의 남북벽 사이에는 크고 작은 판돌 조각들을 채웠는데, 문 시설로 추정된다. 바닥면은 판석 조각들과 흙을 섞어서 약 0.2m 두께로 다졌다. 무덤방은 길이 1.7m, 너비 1.1m, 높이 0.5m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고인돌은 [[평양구서리고인돌군|구서리]] 11·13·15호와 구조가 유사하다. 구서리 11호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대롱옥|대롱옥(管玉)]]과 함께 살촉의 몸이 세 면으로 이루어진 [[청동삼릉촉|청동 삼릉촉(靑銅三稜鏃)]]이 출토되었다.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택암리에 위치한다. 무학산 서쪽 가지 능선부에 [[고인돌|고인돌]] 4기가 있는데, 발굴된 2호는 [[묵방형고인돌|묵방형 고인돌]]이다. 뚜껑돌(蓋石)은 서쪽으로 약간 밀려서 경사져 있었으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4m이다. 무덤방은 남북쪽의 긴 벽, 동쪽의 짧은 벽을 길이 0.15~0.6m 정도의 다양한 판돌(板石)을 쌓아 만들었고, 그 바깥쪽에는 깬돌(割石)을 쌓아 올려 보강하였다. 특이한 점은 긴 벽이 끝난 지점에서 0.5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서쪽 벽을 만들었는데, 맨 밑에는 크고 작은 판돌 2매를 잇대어 세운 후 그 위에 판돌 조각들을 쌓아 올려 빈 공간을 메운 점이다. 서벽 바깥쪽의 남북벽 사이에는 크고 작은 판돌 조각들을 채웠는데, 문 시설로 추정된다. 바닥면은 판석 조각들과 흙을 섞어서 약 0.2m 두께로 다졌다. 무덤방은 길이 1.7m, 너비 1.1m, 높이 0.5m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고인돌은 [[평양구서리고인돌군|구서리]] 11·13·15호와 구조가 유사하다. 구서리 11호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대롱옥|대롱옥(管玉)]]과 함께 살촉의 몸이 세 면으로 이루어진 [[청동삼릉촉|청동 삼릉촉(靑銅三稜鏃)]]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김영근, 리경일. (2015). 택암리일대 고인돌무덤발굴보고. <i>조선고고연구, 2</i>, 30-31. http://db.history.go.kr/id/hb_170_02_00118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택암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평양 택암리 고인돌군, 평양 택암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택암리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묵방형 고인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평양직할시 순안구역 택암리에 위치한다. 무학산 서쪽 가지 능선부에 고인돌 4기가 있는데, 발굴된 2호는 묵방형 고인돌이다. 뚜껑돌(蓋石)은 서쪽으로 약간 밀려서 경사져 있었으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4m이다. 무덤방은 남북쪽의 긴 벽, 동쪽의 짧은 벽을 길이 0.15~0.6m 정도의 다양한 판돌(板石)을 쌓아 만들었고, 그 바깥쪽에는 깬돌(割石)을 쌓아 올려 보강하였다. 특이한 점은 긴 벽이 끝난 지점에서 0.5m 정도 안쪽으로 들여서 서쪽 벽을 만들었는데, 맨 밑에는 크고 작은 판돌 2매를 잇대어 세운 후 그 위에 판돌 조각들을 쌓아 올려 빈 공간을 메운 점이다. 서벽 바깥쪽의 남북벽 사이에는 크고 작은 판돌 조각들을 채웠는데, 문 시설로 추정된다. 바닥면은 판석 조각들과 흙을 섞어서 약 0.2m 두께로 다졌다. 무덤방은 길이 1.7m, 너비 1.1m, 높이 0.5m이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 고인돌은 구서리 11·13·15호와 구조가 유사하다. 구서리 11호 고인돌에서는 간 돌검, 간 돌살촉, 대롱옥(管玉)과 함께 살촉의 몸이 세 면으로 이루어진 청동 삼릉촉(靑銅三稜鏃)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