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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은 [[청동기|청동기]] 한 점이 짧은 벽 모서리 부분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D’자 모양이며 위쪽 가운데 부분에 고리가 달려 있다. 가장자리에 날(刃)이 형성되지 않아서 [[이기|이기(利器)]]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길이 9.1㎝, 너비 9.3㎝, 두께 0.35~0.9㎝이며, 무게는 33.4g이다. 이것은 절반 정도씩 파손된 것을 재가공하여 결합한 것으로 2차례 재가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1차 재가공에서는 양쪽이 요철(凹凸) 모양으로 결합되도록 한 후 그 부분이 관통되도록 구멍을 뚫었다. 그 후 이 부분이 파손되어 요철 부분을 다시 갈아(磨硏) 길이를 줄이고 구멍을 뚫어 결합하려 한 흔적이 확인된다. 하지만 완전한 결합이 어려워 2차 재가공이 완료되지 않은 단계에서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청동기는 경기도 [[광주역동유적|광주 역동 유적]]의 무덤에서도 출토된 바 있는데, [[청동검|청동 검(銅劍)]]의 손잡이 부분 아래쪽에서 출토되어 [[칼자루끝장식|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랴오닝 지역의 [[강상유적|다롄 강상]], 칭위안 만주족 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리자바오유적|리자바오 유적(李家堡遺址)]]의 무덤 출토품이 있다. 랴오닝 지역의 청동기는 기원전 8~7세기경으로 편년되어, 연지 고인돌의 연대는 김해 내동이나 [[김해율하리고인돌|율하리 고인돌]]보다 시기가 이를 가능성이 높다. 천곡리 연지 고인돌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남부 지역과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 랴오닝 지역의 원료와는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 내의 원료로 김해 지역에서 제작한 제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유물은 [[청동기|청동기]] 한 점이 짧은 벽 모서리 부분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D’자 모양이며 위쪽 가운데 부분에 고리가 달려 있다. 가장자리에 날(刃)이 형성되지 않아서 [[이기|이기(利器)]]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길이 9.1㎝, 너비 9.3㎝, 두께 0.35~0.9㎝이며, 무게는 33.4g이다. 이것은 절반 정도씩 파손된 것을 재가공하여 결합한 것으로 2차례 재가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1차 재가공에서는 양쪽이 요철(凹凸) 모양으로 결합되도록 한 후 그 부분이 관통되도록 구멍을 뚫었다. 그 후 이 부분이 파손되어 요철 부분을 다시 갈아(磨硏) 길이를 줄이고 구멍을 뚫어 결합하려 한 흔적이 확인된다. 하지만 완전한 결합이 어려워 2차 재가공이 완료되지 않은 단계에서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청동기는 경기도 [[광주역동유적|광주 역동 유적]]의 무덤에서도 출토된 바 있는데, [[청동검|청동 검(銅劍)]]의 손잡이 부분 아래쪽에서 출토되어 [[칼자루끝장식|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랴오닝 지역의 [[강상유적|다롄 강상]], 칭위안 만주족 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리자바오유적|리자바오 유적(李家堡遺址)]]의 무덤 출토품이 있다. 랴오닝 지역의 청동기는 기원전 8~7세기경으로 편년되어, 연지 고인돌의 연대는 김해 내동이나 [[김해율하리고인돌|율하리 고인돌]]보다 시기가 이를 가능성이 높다. 천곡리 연지 고인돌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남부 지역과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 랴오닝 지역의 원료와는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 내의 원료로 김해 지역에서 제작한 제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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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김해_천곡리_연지_고인돌군_출토_청동기.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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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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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9년 12월 7일~2010년 1월 19일 || 김해 연지 지석묘 || 2011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9년 12월 7일~2010년 1월 19일 || 김해 연지 지석묘 || 2011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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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1). <i>김해 연지 지석묘</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김해 천곡리 연지 고인돌군, 김해 천곡리 연지 지석묘군, 김해 연지 고인돌, 김해 연지 지석묘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462-2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청동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462-2에 위치한다. 김해 하수관거 정비 사업에 앞서 2009~2010년 고인돌 1기를 조사하였다. 마을 주민의 말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덮개돌(上石) 7기가 있었는데, 현재 후대의 개간과 개발로 유실되고 1기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고인돌은 금음산에서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에서 남동쪽에 위치하며, 금음산의 봉우리 중 하나인 황새봉 사이 계곡부에 입지한다. 주변에는 용곡, 원지리 국계, 내연리, 명법동, 신명, 구산동, 내동, 구지봉, 서상동, 유하리 등 여러 고인돌 유적이 위치한다.
고인돌은 주택 담장 아래와 골목길에 덮개돌이 노출된 상태였다. 덮개돌은 장방형이며, 길이 3.5m, 너비 2.2m, 두께 1.5m이다. 덮개돌 아래 약 0.3m까지는 옹기 편, 소형 깬돌(割石), 비닐 등이 포함된 점토층이 있고, 그 아래에서 매장 주체부의 벽석이 노출되었다. 덮개돌은 후대의 전신주 및 주택 건설 등으로 인해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이동되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며, 덮개돌과 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도 서로 50° 정도 어긋나 있다. 때문에 덮개돌 아래의 받침돌(支石)이나 매장주체부를 덮은 뚜껑돌의 유무는 알 수 없다. 매장 주체부의 벽면은 깬돌로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북쪽 긴 벽은 무덤 구덩이(墓壙)에 맞닿아 벽석을 쌓은 반면, 짧은 벽 쪽은 벽석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채움 돌(充塡石)을 채웠다. 바닥에는 사질점토를 5~10㎝ 두께로 깐 후 5~10㎝ 크기의 납작한 깬돌을 전면(全面)에 깔았다. 덮개돌 아래가 교란되어 고인돌의 종류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덮개돌과 매장 주체부의 규모가 내동 고인돌과 유사한 점에서 바둑판식 고인돌(碁盤式支石墓)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물은 청동기 한 점이 짧은 벽 모서리 부분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D’자 모양이며 위쪽 가운데 부분에 고리가 달려 있다. 가장자리에 날(刃)이 형성되지 않아서 이기(利器)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길이 9.1㎝, 너비 9.3㎝, 두께 0.35~0.9㎝이며, 무게는 33.4g이다. 이것은 절반 정도씩 파손된 것을 재가공하여 결합한 것으로 2차례 재가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1차 재가공에서는 양쪽이 요철(凹凸) 모양으로 결합되도록 한 후 그 부분이 관통되도록 구멍을 뚫었다. 그 후 이 부분이 파손되어 요철 부분을 다시 갈아(磨硏) 길이를 줄이고 구멍을 뚫어 결합하려 한 흔적이 확인된다. 하지만 완전한 결합이 어려워 2차 재가공이 완료되지 않은 단계에서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유사한 청동기는 경기도 광주 역동 유적의 무덤에서도 출토된 바 있는데, 청동 검(銅劍)의 손잡이 부분 아래쪽에서 출토되어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는 랴오닝 지역의 다롄 강상, 칭위안 만주족 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리자바오 유적(李家堡遺址)의 무덤 출토품이 있다. 랴오닝 지역의 청동기는 기원전 8~7세기경으로 편년되어, 연지 고인돌의 연대는 김해 내동이나 율하리 고인돌보다 시기가 이를 가능성이 높다. 천곡리 연지 고인돌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 남부 지역과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 랴오닝 지역의 원료와는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 내의 원료로 김해 지역에서 제작한 제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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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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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9년 12월 7일~2010년 1월 19일 | 김해 연지 지석묘 | 2011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11). 김해 연지 지석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