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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이칭별칭=보성 죽산리 하죽 고인돌군, 주암댐 수몰 지역 유적
| 한글표제어=죽산리 하죽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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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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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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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에 위치한다. 고인돌군은 동복천을 따라 4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주암댐 수몰 지역 포함되어 이 중 3개 지역을 1987년 경희대학교 발굴 조사단(가군), 성균관대학교(나군), 전남대학교(다군)가 발굴 조사하였다. 이곳은 천봉산과 옥녀봉 사이의 보성강이 협소한 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평지는 거의 없고, 보성강 지류변에 약간의 평지가 있다. 동복천이 보성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강변 충적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인돌들은 강에 인접되어 강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에 위치한다. [[고인돌|고인돌]]군은 동복천을 따라 4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주암댐 수몰 지역 포함되어 이 중 3개 지역을 1987년 경희대학교 발굴 조사단(가군), 성균관대학교(나군), 전남대학교(다군)가 발굴 조사하였다. 이곳은 천봉산과 옥녀봉 사이의 보성강이 협소한 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평지는 거의 없고, 보성강 지류변에 약간의 평지가 있다. 동복천이 보성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강변 충적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인돌들은 강에 인접되어 강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가군은 11기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을 조사하여 [[돌두름형무덤방|돌 두름형(圍石形)]] 2기, [[구덩이형무덤방|구덩이형(土壙形)]] 3기 등 5기의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보성강 유역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 무덤방(墓室)]]은 1기도 없었다. 덮개돌은 길이 1.6~3.5m, 너비 1~2m, 두께 0.3~1.5m이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약간과 1호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있다. 발굴 전 당시 경작으로 파괴되어 5기의 덮개돌이 겹쳐있다. 5기만 원위치이고 나머지 6기는 고인돌의 위치나 하부 구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가군은 11기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을 조사하여 돌 두름형(圍石形) 2기, 구덩이형(土壙形) 3기 등 5기의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보성강 유역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돌덧널형(石槨形) 무덤방(墓室)은 1기도 없었다. 덮개돌은 길이 1.6~3.5m, 너비 1~2m, 두께 0.3~1.5m이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약간과 1호에서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있다. 발굴 전 당시 경작으로 파괴되어 5기의 덮개돌이 겹쳐있다. 5기만 원위치이고 나머지 6기는 고인돌의 위치나 하부 구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군은 가군과 같은 강변의 논두렁에 있으며 12기의 덮개돌을 조사하여 돌덧널형 4기, 구덩이형 2기 등 6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조사 당시 덮개돌이 논둑에 쌓여진 상태여서 상당수가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덮개돌은 길이 1.5~2.7m, 너비 0.8~1.7m, 두께 0.2~0.9m이다. 유물은 4호에서 출토된 자루 간 돌검 1점 뿐이며 토기 및 다른 [[껴묻거리|껴묻거리]]는 전혀 없다.
나군은 가군과 같은 강변의 논두렁에 있으며 12기의 덮개돌을 조사하여 돌덧널형 4기, 구덩이형 2기 등 6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조사 당시 덮개돌이 논둑에 쌓여진 상태여서 상당수가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덮개돌은 길이 1.5~2.7m, 너비 0.8~1.7m, 두께 0.2~0.9m이다. 유물은 4호에서 출토된 자루 간 돌검 1점 뿐이며 토기 및 다른 [[껴묻거리|껴묻거리]]는 전혀 없다.


다군은 원래 23기의 덮개돌이 논에 묻혀 윗부분만 노출된 상태로 남북 3열을 이루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소형 덮개돌 17기가 더 확인되어 모두 40여 기를 확인하였으나 조사된 무덤방 수는 31기이다. 덮개돌은 길이 1.6~4m, 너비 0.9~2.3m, 두께 0.2~1.3m이다. 무덤방 배치는 강물 흐름과 같은 남북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돌덧널형과 돌두름형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두 형식간의 연대나 피장자 문제 등을 살필 수 있다. 출토 유물은 1호 출토 [[갈판|갈판(碾石)]] 1점을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 무덤방에서 [[간돌검|간 돌검]] 10점, [[간돌살촉|간 돌살촉]] 3점이 껴묻거리로 발견되었으며, 무덤방 바닥이나 주변에서는 간 돌살촉 2점, [[돌칼|돌칼]] 5점, [[돌도끼|돌도끼]] 3점, [[돌끌|돌끌(石鑿)]] 3점, [[숫돌|숫돌(砥石)]] 2점, [[그물추|그물추]] 7점, [[가락바퀴|가락바퀴]] 1점, 갈판과 [[갈돌|갈돌(石棒)]] 등이 있고 이외에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쇠뿔손잡이|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편, [[두드림무늬토기|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편 등이 있다. 유물은 12호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과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이 각 1점씩, 15호에서는 슴베 간 돌검 2점과 간 돌살촉 3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다군은 원래 23기의 덮개돌이 논에 묻혀 윗부분만 노출된 상태로 남북 3열을 이루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소형 덮개돌 17기가 더 확인되어 모두 40여 기를 확인하였으나 조사된 무덤방 수는 31기이다. 덮개돌은 길이 1.6~4m, 너비 0.9~2.3m, 두께 0.2~1.3m이다. 무덤방 배치는 강물 흐름과 같은 남북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돌덧널형과 돌두름형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두 형식간의 연대나 피장자 문제 등을 살필 수 있다. 출토 유물은 1호 출토 [[갈판|갈판(碾石)]] 1점을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 무덤방에서 [[간돌검|간 돌검]] 10점, [[간돌살촉|간 돌살촉]] 3점이 껴묻거리로 발견되었으며, 무덤방 바닥이나 주변에서는 간 돌살촉 2점, [[돌칼|돌칼]] 5점, [[돌도끼|돌도끼]] 3점, [[돌끌|돌끌(石鑿)]] 3점, [[숫돌|숫돌(砥石)]] 2점, [[그물추|그물추]] 7점, [[가락바퀴|가락바퀴]] 1점, 갈판과 [[갈돌|갈돌(石棒)]] 등이 있고 이외에 민무늬 토기 편,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쇠뿔손잡이|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편, [[두드림무늬토기|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편 등이 있다. 유물은 12호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과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이 각 1점씩, 15호에서는 슴베 간 돌검 2점과 간 돌살촉 3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죽산리 고인돌군은 구조면에서 다른 고인돌보다 규모가 크고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 많아 무덤방 형식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또 돌 두름형 무덤방의 존재가 뚜렷이 밝혀져 고인돌 형식이나 그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주변에 집자리가 밀집한 것이 확인되어 한반도의 고인돌과 [[집자리|집자리]]와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며 고인돌의 일부는 기존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파괴하면서 설치되었다. 고인돌 중 상태가 양호한 32기가 순천 고인돌공원(우산리 454 일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죽산리 고인돌군은 구조면에서 다른 고인돌보다 규모가 크고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 많아 무덤방 형식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또 돌 두름형 무덤방의 존재가 뚜렷이 밝혀져 고인돌 형식이나 그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주변에 집자리가 밀집한 것이 확인되어 한반도의 고인돌과 [[집자리|집자리]]와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며 고인돌의 일부는 기존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파괴하면서 설치되었다. 고인돌 중 상태가 양호한 32기가 순천 고인돌공원(우산리 454 일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박물관. (1985). <i>주암댐 수몰지구 고고분야 조사보고</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2938
* 전남대학교박물관. (1988). <i>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Ⅲ -죽산리 ‘가~다’군 지석묘-</i>.  https://www.riss.kr/link?id=M282036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5 기준 최신판


죽산리 하죽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보성 죽산리 하죽 고인돌군, 보성 죽산리 하죽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민무늬 토기, 자루 간 돌검, 갈판, 간 돌검, 간 돌살촉, 돌칼, 돌도끼, 돌끌, 숫돌, 그물추, 가락바퀴, 갈돌, 붉은 간 토기,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영문



설명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75 일원에 위치한다. 고인돌군은 동복천을 따라 4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주암댐 수몰 지역 포함되어 이 중 3개 지역을 1987년 경희대학교 발굴 조사단(가군), 성균관대학교(나군), 전남대학교(다군)가 발굴 조사하였다. 이곳은 천봉산과 옥녀봉 사이의 보성강이 협소한 계곡을 흐르기 때문에 평지는 거의 없고, 보성강 지류변에 약간의 평지가 있다. 동복천이 보성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강변 충적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인돌들은 강에 인접되어 강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가군은 11기의 덮개돌(上石)을 조사하여 돌 두름형(圍石形) 2기, 구덩이형(土壙形) 3기 등 5기의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보성강 유역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돌덧널형(石槨形) 무덤방(墓室)은 1기도 없었다. 덮개돌은 길이 1.6~3.5m, 너비 1~2m, 두께 0.3~1.5m이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약간과 1호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있다. 발굴 전 당시 경작으로 파괴되어 5기의 덮개돌이 겹쳐있다. 5기만 원위치이고 나머지 6기는 고인돌의 위치나 하부 구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군은 가군과 같은 강변의 논두렁에 있으며 12기의 덮개돌을 조사하여 돌덧널형 4기, 구덩이형 2기 등 6기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조사 당시 덮개돌이 논둑에 쌓여진 상태여서 상당수가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덮개돌은 길이 1.5~2.7m, 너비 0.8~1.7m, 두께 0.2~0.9m이다. 유물은 4호에서 출토된 자루 간 돌검 1점 뿐이며 토기 및 다른 껴묻거리는 전혀 없다.

다군은 원래 23기의 덮개돌이 논에 묻혀 윗부분만 노출된 상태로 남북 3열을 이루고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소형 덮개돌 17기가 더 확인되어 모두 40여 기를 확인하였으나 조사된 무덤방 수는 31기이다. 덮개돌은 길이 1.6~4m, 너비 0.9~2.3m, 두께 0.2~1.3m이다. 무덤방 배치는 강물 흐름과 같은 남북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돌덧널형과 돌두름형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두 형식간의 연대나 피장자 문제 등을 살필 수 있다. 출토 유물은 1호 출토 갈판(碾石) 1점을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 무덤방에서 간 돌검 10점, 간 돌살촉 3점이 껴묻거리로 발견되었으며, 무덤방 바닥이나 주변에서는 간 돌살촉 2점, 돌칼 5점, 돌도끼 3점, 돌끌(石鑿) 3점, 숫돌(砥石) 2점, 그물추 7점, 가락바퀴 1점, 갈판과 갈돌(石棒) 등이 있고 이외에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편,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편 등이 있다. 유물은 12호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과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이 각 1점씩, 15호에서는 슴베 간 돌검 2점과 간 돌살촉 3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죽산리 고인돌군은 구조면에서 다른 고인돌보다 규모가 크고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 많아 무덤방 형식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또 돌 두름형 무덤방의 존재가 뚜렷이 밝혀져 고인돌 형식이나 그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주변에 집자리가 밀집한 것이 확인되어 한반도의 고인돌과 집자리와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며 고인돌의 일부는 기존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파괴하면서 설치되었다. 고인돌 중 상태가 양호한 32기가 순천 고인돌공원(우산리 454 일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