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2351: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2351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2351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월양리 유적
| 이칭별칭=나주 월양리 유적
| 이칭별칭=나주 월양리 유적
| 키워드=[[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묘표석]], [[민무늬 토기]], [[독 모양 토기]], [[둥근 덧띠 토기]], [[슴베식 돌검]], [[슴베 돌살촉]], [[가락바퀴]]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돌살촉]], [[가락바퀴]], [[숫돌]], [[덧띠 토기]], [[독 모양 토기]], [[반달 돌칼]], [[삼각 돌칼]], [[둥근 덧띠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집필자=조진선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설명==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동강 도로확장구간에 포함되어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집자리|집자리]] 6기와 [[고인돌|고인돌]] 24기가 확인되었다. 도로를 경계로 A지구와 B지구로 구분하며 A지구에서는 집자리와 고인돌이, B지구에서는 집자리가 발굴 조사되었다.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동강 도로확장구간에 포함되어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집자리|집자리]] 6기와 [[고인돌|고인돌]] 24기가 확인되었다. 도로를 경계로 A지구와 B지구로 구분하며 A지구에서는 집자리와 고인돌이, B지구에서는 집자리가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6기가 확인되었다. A지구와 B지구의 여기저기에 1기씩 산재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구릉 상부에 위치한다. 1~3호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고, 4~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만 남아 있다. 6호 집자리는 말각 방형으로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만 확인된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 18점과 석기 13점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며, 석기는 [[석촉|돌살촉(石鏃)]], 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1호 집자리 2360±140 BP, 3호 집자리 2430±40 BP로 측정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6기가 확인되었다. A지구와 B지구의 여기저기에 1기씩 산재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구릉 상부에 위치한다. 1~3호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고, 4~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만 남아 있다. 6호 집자리는 말각 방형으로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만 확인된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 18점과 석기 13점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며, 석기는 [[돌살촉|돌살촉(石鏃)]], [[가락바퀴|가락바퀴]], [[숫돌|숫돌(砥石)]] 등이 있다.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1호 집자리 2360±140 BP, 3호 집자리 2430±40 BP로 측정되었다.


고인돌은 A지구 서쪽의 구릉 상부에 밀집 분포하는데, 월양리에서 후동 사거리로 넘어가는 완만한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1기만 확인되었다. 나머지는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원래부터 덮개돌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발 25~27m 정도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한다. 덮개돌을 갖춘 20호 고인돌은 [[매장시설|매장 시설(埋葬施設)]]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묘표석|묘표석(墓表石)]]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돌널형무덤방|돌널형(石棺形)]]으로 나누어진다. 돌덧널형은 좀 더 세분된다. Ⅰ형은 작은 깬돌으로 쌓은 형태이며, Ⅱ형은 Ⅰ형에 비해 큰 깬돌을 사용하였고, Ⅲ형은 작은 깬돌들로 만들어서 내부에 채워진 돌들과 벽석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3기에서만 확인되었는데 [[이중뚜껑돌|이중 뚜껑돌(二重蓋石)]]이 많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 16기, 남-북 6기, 동-서 1기이다. 이는 무덤방이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고인돌은 A지구 서쪽의 구릉 상부에 밀집 분포하는데, 월양리에서 후동 사거리로 넘어가는 완만한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1기만 확인되었다. 나머지는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원래부터 덮개돌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발 25~27m 정도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한다. 덮개돌을 갖춘 20호 고인돌은 매장 시설(埋葬施設)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묘표석(墓表石)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돌덧널형(石槨形)과 돌널형(石棺形)으로 나누어진다. 돌덧널형은 좀 더 세분된다. Ⅰ형은 작은 깬돌으로 쌓은 형태이며, Ⅱ형은 Ⅰ형에 비해 큰 깬돌을 사용하였고, Ⅲ형은 작은 깬돌들로 만들어서 내부에 채워진 돌들과 벽석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3기에서만 확인되었는데 이중 뚜껑돌(二重蓋石)이 많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 16기, 남-북 6기, 동-서 1기이다. 이는 무덤방이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군집은 크게 3개로 나누어진다. 해발 25~25.6m에 위치한 군집은 15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이 많고, 돌널형도 일부 있다. 돌덧널형은 Ⅰ형이 가장 많고 Ⅱ형, Ⅲ형 순으로 나타난다. 덮개돌이 있는 고인돌도 이 군집에 있다. 해발 25.6~26.5m에 위치한 군집은 6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 Ⅲ형 2기, 돌널형 2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2기이다. 해발 26.6m 이상에 위치한 군집은 4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널형 1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3기이다. 고인돌은 지형상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축조되어 간다는 견해를 따르면, 무덤방은 돌덧널형에서 돌널형으로 변화되며, 돌덧널형은 깊이가 낮은 것 → 깊은 것 → 구조가 허술하면서 깊이가 낮은 것으로 변화된다.
군집은 크게 3개로 나누어진다. 해발 25~25.6m에 위치한 군집은 15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이 많고, 돌널형도 일부 있다. 돌덧널형은 Ⅰ형이 가장 많고 Ⅱ형, Ⅲ형 순으로 나타난다. 덮개돌이 있는 고인돌도 이 군집에 있다. 해발 25.6~26.5m에 위치한 군집은 6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 Ⅲ형 2기, 돌널형 2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2기이다. 해발 26.6m 이상에 위치한 군집은 4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널형 1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3기이다. 고인돌은 지형상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축조되어 간다는 견해를 따르면, 무덤방은 돌덧널형에서 돌널형으로 변화되며, 돌덧널형은 깊이가 낮은 것 → 깊은 것 → 구조가 허술하면서 깊이가 낮은 것으로 변화된다.


유물은 9기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21점과 석기 12점이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인데,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과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편이 확인된다. 석기는 [[슴베식돌검|슴베식 돌검(有莖式石劍)]],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석창|석창(石槍)]], [[반달돌칼|반달 돌칼]], [[삼각돌칼|삼각 돌칼]],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있다. 4호 고인돌의 바닥에는 토기 편들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데, 바닥에 석재 대신 토기 편을 깐 것으로 판단된다. 그 가운데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편이 섞여 있어서 월양리 고인돌은 둥근 덧띠 토기가 유행하던 때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유물은 9기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21점과 석기 12점이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인데, [[덧띠토기|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과 [[독모양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편이 확인된다. 석기는 [[슴베식돌검|슴베식 돌검(有莖式石劍)]],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석창|석창(石槍)]], [[반달돌칼|반달 돌칼]], [[삼각돌칼|삼각 돌칼]], 가락바퀴 등이 있다. 4호 고인돌의 바닥에는 토기 편들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데, 바닥에 석재 대신 토기 편을 깐 것으로 판단된다. 그 가운데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편이 섞여 있어서 월양리 고인돌은 둥근 덧띠 토기가 유행하던 때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월양리 고인돌군의 연대는 15호에서 수습된 숯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가 2740±40 BP로 측정되었고, 4호 고인돌에서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도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월양리 고인돌군은 영산강 인돌의 하한 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월양리 고인돌군의 연대는 15호에서 수습된 숯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가 2740±40 BP로 측정되었고, 4호 고인돌에서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도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월양리 고인돌군은 영산강 인돌의 하한 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나주_월양리_유적_A지구_2호_집자리.jpg
File:나주_월양리_유적_A지구_고인돌군_전경.jpg
File:나주_월양리_유적_고인돌_출토_유물.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2년~2013년 || 나주 월양리 유적 || 2014 || 마한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14). <i>나주 월양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153356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월양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나주 월양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돌살촉, 가락바퀴, 숫돌, 덧띠 토기, 독 모양 토기, 반달 돌칼, 삼각 돌칼, 둥근 덧띠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월양리 15-50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동강 도로확장구간에 포함되어 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는 집자리 6기와 고인돌 24기가 확인되었다. 도로를 경계로 A지구와 B지구로 구분하며 A지구에서는 집자리와 고인돌이, B지구에서는 집자리가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6기가 확인되었다. A지구와 B지구의 여기저기에 1기씩 산재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구릉 상부에 위치한다. 1~3호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이고, 4~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만 남아 있다. 6호 집자리는 말각 방형으로 기둥 구멍(柱孔)만 확인된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 18점과 석기 13점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 편이며, 석기는 돌살촉(石鏃), 가락바퀴, 숫돌(砥石) 등이 있다.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1호 집자리 2360±140 BP, 3호 집자리 2430±40 BP로 측정되었다.

고인돌은 A지구 서쪽의 구릉 상부에 밀집 분포하는데, 월양리에서 후동 사거리로 넘어가는 완만한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덮개돌(上石)은 1기만 확인되었다. 나머지는 하부 구조만 확인되었는데, 원래부터 덮개돌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발 25~27m 정도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한다. 덮개돌을 갖춘 20호 고인돌은 매장 시설(埋葬施設)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묘표석(墓表石)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덤방(墓室)은 돌덧널형(石槨形)과 돌널형(石棺形)으로 나누어진다. 돌덧널형은 좀 더 세분된다. Ⅰ형은 작은 깬돌으로 쌓은 형태이며, Ⅱ형은 Ⅰ형에 비해 큰 깬돌을 사용하였고, Ⅲ형은 작은 깬돌들로 만들어서 내부에 채워진 돌들과 벽석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뚜껑돌(蓋石)은 3기에서만 확인되었는데 이중 뚜껑돌(二重蓋石)이 많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 16기, 남-북 6기, 동-서 1기이다. 이는 무덤방이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군집은 크게 3개로 나누어진다. 해발 25~25.6m에 위치한 군집은 15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이 많고, 돌널형도 일부 있다. 돌덧널형은 Ⅰ형이 가장 많고 Ⅱ형, Ⅲ형 순으로 나타난다. 덮개돌이 있는 고인돌도 이 군집에 있다. 해발 25.6~26.5m에 위치한 군집은 6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덧널 Ⅲ형 2기, 돌널형 2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2기이다. 해발 26.6m 이상에 위치한 군집은 4기로 이루어졌다. 무덤방은 돌널형 1기, 형태를 알 수 없는 것 3기이다. 고인돌은 지형상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축조되어 간다는 견해를 따르면, 무덤방은 돌덧널형에서 돌널형으로 변화되며, 돌덧널형은 깊이가 낮은 것 → 깊은 것 → 구조가 허술하면서 깊이가 낮은 것으로 변화된다.

유물은 9기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21점과 석기 12점이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인데,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편과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편이 확인된다. 석기는 슴베식 돌검(有莖式石劍),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석창(石槍), 반달 돌칼, 삼각 돌칼, 가락바퀴 등이 있다. 4호 고인돌의 바닥에는 토기 편들이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데, 바닥에 석재 대신 토기 편을 깐 것으로 판단된다. 그 가운데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편이 섞여 있어서 월양리 고인돌은 둥근 덧띠 토기가 유행하던 때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월양리 고인돌군의 연대는 15호에서 수습된 숯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2740±40 BP로 측정되었고, 4호 고인돌에서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도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월양리 고인돌군은 영산강 인돌의 하한 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2년~2013년 나주 월양리 유적 2014 마한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