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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월암동 유적 | |||
| 이칭별칭=대구 월암동 유적 | | 이칭별칭=대구 월암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1129 일원 | |||
| 성격=복합유적 | |||
| 키워드=[[선돌]], [[집자리]], [[돌더미]], [[화덕 자리]], [[벽 도랑]],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 [[마을 유적]] | | 키워드=[[선돌]], [[집자리]], [[돌더미]], [[화덕 자리]], [[벽 도랑]],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 [[마을 유적]]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하진호 | | 집필자=하진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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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내 화덕 자리의 [[고고지자기분석법|고고지자기분석(古考地磁氣分析)]]을 통해 개별 집자리간 조성 시기는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라는 결과를 얻었다. 유적과 같은 형식의 집자리와 유물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대구월성동1863유적|월성동 1863 유적]], [[대구월성동1854유적|1854 유적]], [[대구대천동511-2유적|대천동 511-2 유적]]이 있다. 유적은 월배선상지 선단 일대에 돋을띠무늬 토기와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를 중심의 이른 시기의 [[마을유적|마을 유적]]이다. 이를 통해 대구 지역의 청동기 시대 마을의 확산과 공간 활용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내 화덕 자리의 [[고고지자기분석법|고고지자기분석(古考地磁氣分析)]]을 통해 개별 집자리간 조성 시기는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라는 결과를 얻었다. 유적과 같은 형식의 집자리와 유물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대구월성동1863유적|월성동 1863 유적]], [[대구월성동1854유적|1854 유적]], [[대구대천동511-2유적|대천동 511-2 유적]]이 있다. 유적은 월배선상지 선단 일대에 돋을띠무늬 토기와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를 중심의 이른 시기의 [[마을유적|마을 유적]]이다. 이를 통해 대구 지역의 청동기 시대 마을의 확산과 공간 활용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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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대구_월암동_유적_선돌.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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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5년 11월 02일~2016년 01월 28일 || 대구 월암동 유적 || 2018 || 삼한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5년 11월 02일~2016년 01월 28일 || 대구 월암동 유적 || 2018 || 삼한문화재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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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삼한문화재연구원. (2018). <i>대구 월암동 유적</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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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월암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1129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선돌, 집자리, 돌더미, 화덕 자리, 벽 도랑,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 마을 유적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하진호 |
설명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1129 일원에 위치한다. 공원 건립에 앞서 2015~2016년 조사하여 선돌(立石) 1기, 집자리 14기, 돌더미(集石) 1기 및 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 유구도 확인되었다. 유적은 월배선상지(月背扇狀地)의 선단(扇端)에 위치한 홍적대지(洪積臺地)의 낮은 지대에 입지한다. 주변으로 대구 월암동 선돌Ⅱ가 위치한다.
선돌은 높이 2.6m, 너비 1m, 두께 0.64m이며, 지표면에서 1m 아래의 덮은 흙(覆土層)에 0.7m 깊이로 박혀 있었다. 조사 결과 선돌은 이 일대의 지형 변화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 선돌은 조사 후, 대구 월암동 유적의 복원 방안에 따라, 선돌 공원으로 조성되어 보존되어 있다. 선돌의 남쪽 30m지점에 돌무지 1기가 확인되었는데 길이 3m의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자갈돌을 채웠다.
집자리는 1호를 제외하고 대부분 후대 훼손으로 규모와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1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8.6m, 너비 6m, 깊이 0.15m이다. 내부 시설로 화덕 자리가 집자리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2개가 위치하고, 동쪽 짧은 벽 쪽으로 2개가 위치한다. 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로, 길이 0.6~0.9m, 너비 0.5~0.6m이다. 서벽을 제외한 벽 가장자리에서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깊이가 2㎝로 얕고, 내부에서 기둥 구멍과 벽체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습기 제어용으로 추정된다. 개별 집자리에서 확인되는 내부 시설을 종합하면, 장방형이며 복원 면적은 48㎡로서 중형 집자리이다. 화덕 자리는 돌 두름식(圍石式)과 구덩식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짧은 벽 쪽으로 치우쳐 등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3호는 폐기 시 돌쌓기(積石)하였고, 14호는 화덕 자리 위에 토기를 눕혀 놓았다.
출토 유물은 집자리 및 돌무지 내에서 돋을띠 마디 골무늬 토기(節狀刻目突帶文土器), 돋을띠무늬 토기(乳狀突帶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二重口緣鋸齒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슴베 없는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반달 돌칼, 돌도끼(石斧), 갈판(碾石), 원판 모양 석기(圓板形石器) 등이 있다. 이외에 가락바퀴, 그물추, 부정형 토제품(不定形土製品)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내 화덕 자리의 고고지자기분석(古考地磁氣分析)을 통해 개별 집자리간 조성 시기는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라는 결과를 얻었다. 유적과 같은 형식의 집자리와 유물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월성동 1863 유적, 1854 유적, 대천동 511-2 유적이 있다. 유적은 월배선상지 선단 일대에 돋을띠무늬 토기와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를 중심의 이른 시기의 마을 유적이다. 이를 통해 대구 지역의 청동기 시대 마을의 확산과 공간 활용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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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15년 11월 02일~2016년 01월 28일 | 대구 월암동 유적 | 2018 | 삼한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삼한문화재연구원. (2018). 대구 월암동 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