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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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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고흥 운대리 고인돌군, 운대 고인돌군, 중대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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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소재지=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129-5 일원
| 집필자=이영문 | 신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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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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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129-5 일원에 위치한다. 운대리 일원에는 여러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다. 1926년 토지 소유주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발견하여 신고하여 고인돌군이 확인된 이후, 고흥-벌교 간 국도 27호선 확·포장 공사로 1129-5 일원의 운대·중대 고인돌군이 1999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129-5 일원에 위치한다. 운대리 일원에는 여러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다. 1926년 토지 소유주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발견하여 신고하여 고인돌군이 확인된 이후, 고흥-벌교 간 국도 27호선 확·포장 공사로 1129-5 일원의 운대·중대 고인돌군이 1999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1926년에 조사된 [[고인돌|고인돌]]군은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와 사와 준이치(澤準一)에 의해 4기의 하부 구조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하부 구조는 지하식 혹은 반지하식으로 추정되며 판상(板狀)의 깬돌(割石)을 가로 쌓기(橫積)하여 만든 장방형의 [[돌덧널|돌덧널(石槨)]]만을 확인하였다. 돌덧널의 짧은 벽은 1매, 긴 벽은 5매의 비교적 편평한 석재를 세워서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부정형 판돌을 깔았다. 이와 같은 형식을 보이는 고인돌의 돌덧널이 주위에서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길이 2.85m, 1.3m, 깊이 0.4m로, 바닥에는 판상의 돌이 깔려 있으며 돌덧널의 중앙부 짧은 벽하에 치우쳐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 편 1점이 출토되었다. 잔존 길이 13㎝, 너비 6.4㎝인 이 동검은 [[검끝|검 끝(鋒部)]]이 결실되었고 검 몸 하단과 [[슴베|슴베(莖部)]]만 남아 있는데, 검 몸 하단은 호형(弧形)을 이루고, 슴베에 홈이 나 있다. 이러한 동검은 금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 고인돌에서 [[부장품|부장품]]으로 출토되는 지역성을 보인 동검 형태이다.
1926년에 조사된 [[고인돌|고인돌]]군은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와 사와 준이치(澤準一)에 의해 4기의 하부 구조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하부 구조는 지하식 혹은 반지하식으로 추정되며 판상(板狀)의 깬돌(割石)을 가로 쌓기(橫積)하여 만든 장방형의 [[돌덧널|돌덧널(石槨)]]만을 확인하였다. 돌덧널의 짧은 벽은 1매, 긴 벽은 5매의 비교적 편평한 석재를 세워서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부정형 판돌을 깔았다. 이와 같은 형식을 보이는 고인돌의 돌덧널이 주위에서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길이 2.85m, 1.3m, 깊이 0.4m로, 바닥에는 판상의 돌이 깔려 있으며 돌덧널의 중앙부 짧은 벽하에 치우쳐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 편 1점이 출토되었다. 잔존 길이 13㎝, 너비 6.4㎝인 이 동검은 검 끝(鋒部)이 결실되었고 검 몸 하단과 슴베(莖部)만 남아 있는데, 검 몸 하단은 호형(弧形)을 이루고, 슴베에 홈이 나 있다. 이러한 동검은 금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 고인돌에서 [[부장품|부장품]]으로 출토되는 지역성을 보인 동검 형태이다.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국도 27호선에서 운대리 중대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분기점의 좌측 구릉에 8기, 우측 구릉에 16기로 총 24기의 고인돌이 남동-북서 향으로 3열의 배치상을 이루고 있다.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국도 27호선에서 운대리 중대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분기점의 좌측 구릉에 8기, 우측 구릉에 16기로 총 24기의 고인돌이 남동-북서 향으로 3열의 배치상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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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대체로 0.5m 전후한 얇은 판돌(板石)을 사용하였으며 장축은 남서-북동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축조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下部構造)를 갖추고 있는 19기의 고인돌 중 16기가 지하식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돌덧널은 축조 형태에 따라 판돌형과 깬돌형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19기 고인돌 중 판돌형 7기, 깬돌형 12기로 구분된다. 1호 덮개돌은 길이 2.78m, 너비 2.58m, 두께 0.97m이고 무덤방은 깬돌형의 돌덧널로 길이 1.68m, 너비 0.45m, 깊이 0.38m이다. 10호는 덮개돌이 길이 3m, 너비 2m, 두께 0.41m이고 무덤방은 판돌형의 돌덧널으로 길이 1.75m, 너비 0.35m, 두께 0.42m이다.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上石)]]은 대체로 0.5m 전후한 얇은 판돌(板石)을 사용하였으며 장축은 남서-북동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축조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下部構造)를 갖추고 있는 19기의 고인돌 중 16기가 지하식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돌덧널은 축조 형태에 따라 판돌형과 깬돌형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19기 고인돌 중 판돌형 7기, 깬돌형 12기로 구분된다. 1호 덮개돌은 길이 2.78m, 너비 2.58m, 두께 0.97m이고 무덤방은 깬돌형의 돌덧널로 길이 1.68m, 너비 0.45m, 깊이 0.38m이다. 10호는 덮개돌이 길이 3m, 너비 2m, 두께 0.41m이고 무덤방은 판돌형의 돌덧널으로 길이 1.75m, 너비 0.35m, 두께 0.42m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반달돌칼|반달 돌칼]],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 천하석제(天河石製) [[곱은옥|곱은옥(曲玉)]] 등이 있다. 유물의 출토상은 간 돌검이 모두 깬돌형 무덤방에서, 비파형동검, 붉은 간 토기, [[삼각돌칼|삼각 돌칼]]등은 판돌형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붉은 간 토기와 [[돌칼|돌칼]]은 한쪽 짧은 벽 아래의 바닥석에서 [[석단|석단(石段)]]을 만들어 부장(운대 가·바·11호)하였다. 간 돌검은 긴 벽에 치우쳐 출토된 것(1·2호)과 한쪽 긴 벽에 세워진 채 출토된 것(12·14호)이 있는데, 이러한 부장 풍습은 고흥 반도 고인돌 특징 중의 하나이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을 재가공한 것 1점으로 13호의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중심부에서 흑갈색의 유기물에 쌓여 출토되었다. 길이는 17.5㎝, 슴베 길이 4.2㎝이며 원래 짧게 부러진 것을 갈아서 날부분이 극히 짧고 등대 돌기부도 없지만 슴베에 홈이 나 있어, 중부 이남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임을 알 수 있다. 운대리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신안리유적|신안리 유적]]의 [[신안리안치고인돌군|안치 고인돌군]]과 함께 유적 남쪽 한편인 두원면 용반리 산309-1 일원에 이전·복원 되었다. 이후 일부는 고흥 분청사기박물관에 이전·복원하였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반달돌칼|반달 돌칼]],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비파형동검, 천하석제(天河石製) [[곱은옥|곱은옥(曲玉)]] 등이 있다. 유물의 출토상은 간 돌검이 모두 깬돌형 무덤방에서, 비파형동검, 붉은 간 토기, [[삼각돌칼|삼각 돌칼]]등은 판돌형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붉은 간 토기와 [[돌칼|돌칼]]은 한쪽 짧은 벽 아래의 바닥석에서 석단(石段)을 만들어 부장(운대 가·바·11호)하였다. 간 돌검은 긴 벽에 치우쳐 출토된 것(1·2호)과 한쪽 긴 벽에 세워진 채 출토된 것(12·14호)이 있는데, 이러한 부장 풍습은 고흥 반도 고인돌 특징 중의 하나이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을 재가공한 것 1점으로 13호의 무덤 구덩이(墓壙) 중심부에서 흑갈색의 유기물에 쌓여 출토되었다. 길이는 17.5㎝, 슴베 길이 4.2㎝이며 원래 짧게 부러진 것을 갈아서 날부분이 극히 짧고 등대 돌기부도 없지만 슴베에 홈이 나 있어, 중부 이남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임을 알 수 있다. 운대리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신안리 유적의 [[고흥신안리안치고인돌군|안치 고인돌군]]과 함께 유적 남쪽 한편인 두원면 용반리 산309-1 일원에 이전·복원 되었다. 이후 일부는 고흥 분청사기박물관에 이전·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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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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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조사 || 1999년 1월 4일~1999년 3월 20일 || 고흥 운대·안치 지석묘 || 2003 || 국립광주박물관
|}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2003). <i>고흥 운대·안치 지석묘</i>.
* 梅原末治, 藤田亮策. (1947). <i>朝鮮古文化綜鑑 1</i>.  https://www.riss.kr/link?id=M6700766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운대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고흥 운대리 고인돌군, 고흥 운대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129-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비파형동검, 부장품, 붉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간 돌검, 간 돌살촉, 곱은옥, 삼각 돌칼, 돌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영문, 신상효



설명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1129-5 일원에 위치한다. 운대리 일원에는 여러 고인돌군이 분포하고 있다. 1926년 토지 소유주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발견하여 신고하여 고인돌군이 확인된 이후, 고흥-벌교 간 국도 27호선 확·포장 공사로 1129-5 일원의 운대·중대 고인돌군이 1999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1926년에 조사된 고인돌군은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와 사와 준이치(澤準一)에 의해 4기의 하부 구조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하부 구조는 지하식 혹은 반지하식으로 추정되며 판상(板狀)의 깬돌(割石)을 가로 쌓기(橫積)하여 만든 장방형의 돌덧널(石槨)만을 확인하였다. 돌덧널의 짧은 벽은 1매, 긴 벽은 5매의 비교적 편평한 석재를 세워서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부정형 판돌을 깔았다. 이와 같은 형식을 보이는 고인돌의 돌덧널이 주위에서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길이 2.85m, 1.3m, 깊이 0.4m로, 바닥에는 판상의 돌이 깔려 있으며 돌덧널의 중앙부 짧은 벽하에 치우쳐 비파형동검 편 1점이 출토되었다. 잔존 길이 13㎝, 너비 6.4㎝인 이 동검은 검 끝(鋒部)이 결실되었고 검 몸 하단과 슴베(莖部)만 남아 있는데, 검 몸 하단은 호형(弧形)을 이루고, 슴베에 홈이 나 있다. 이러한 동검은 금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 고인돌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지역성을 보인 동검 형태이다.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국도 27호선에서 운대리 중대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분기점의 좌측 구릉에 8기, 우측 구릉에 16기로 총 24기의 고인돌이 남동-북서 향으로 3열의 배치상을 이루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대체로 0.5m 전후한 얇은 판돌(板石)을 사용하였으며 장축은 남서-북동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덤방(墓室)은 축조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下部構造)를 갖추고 있는 19기의 고인돌 중 16기가 지하식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돌덧널은 축조 형태에 따라 판돌형과 깬돌형으로 분류되며 하부 구조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19기 고인돌 중 판돌형 7기, 깬돌형 12기로 구분된다. 1호 덮개돌은 길이 2.78m, 너비 2.58m, 두께 0.97m이고 무덤방은 깬돌형의 돌덧널로 길이 1.68m, 너비 0.45m, 깊이 0.38m이다. 10호는 덮개돌이 길이 3m, 너비 2m, 두께 0.41m이고 무덤방은 판돌형의 돌덧널으로 길이 1.75m, 너비 0.35m, 두께 0.42m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반달 돌칼, 간 돌검, 간 돌살촉, 비파형동검, 천하석제(天河石製) 곱은옥(曲玉) 등이 있다. 유물의 출토상은 간 돌검이 모두 깬돌형 무덤방에서, 비파형동검, 붉은 간 토기, 삼각 돌칼등은 판돌형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붉은 간 토기와 돌칼은 한쪽 짧은 벽 아래의 바닥석에서 석단(石段)을 만들어 부장(운대 가·바·11호)하였다. 간 돌검은 긴 벽에 치우쳐 출토된 것(1·2호)과 한쪽 긴 벽에 세워진 채 출토된 것(12·14호)이 있는데, 이러한 부장 풍습은 고흥 반도 고인돌 특징 중의 하나이다. 청동기는 비파형동검을 재가공한 것 1점으로 13호의 무덤 구덩이(墓壙) 중심부에서 흑갈색의 유기물에 쌓여 출토되었다. 길이는 17.5㎝, 슴베 길이 4.2㎝이며 원래 짧게 부러진 것을 갈아서 날부분이 극히 짧고 등대 돌기부도 없지만 슴베에 홈이 나 있어, 중부 이남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동검임을 알 수 있다. 운대리 운대·중대 고인돌군은 신안리 유적의 안치 고인돌군과 함께 유적 남쪽 한편인 두원면 용반리 산309-1 일원에 이전·복원 되었다. 이후 일부는 고흥 분청사기박물관에 이전·복원하였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9년 1월 4일~1999년 3월 20일 고흥 운대·안치 지석묘 2003 국립광주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