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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이칭별칭=나주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운곡동 유적
| 한글표제어=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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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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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수진
| 집필자=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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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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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1차와 2차 조성부지에서 확인되었다. 1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1에서 [[고인돌|고인돌]] 1기, 2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2에서 고인돌 27기, 능동 고인돌군3에서 석재가 조사되었고, [[채석장|채석장(採石場)]]과 [[바위그림|바위그림(岩刻畵)]]도 확인되었다. 능동 고인돌군1·2·3은 크게 보면 하나의 유적군을 이루고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1차와 2차 조성부지에서 확인되었다. 1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1에서 [[고인돌|고인돌]] 1기, 2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2에서 고인돌 27기, 능동 고인돌군3에서 석재가 조사되었고, 채석장(採石場)과 [[바위그림|바위그림(岩刻畵)]]도 확인되었다. 능동 고인돌군1·2·3은 크게 보면 하나의 유적군을 이루고 있다.


능동 고인돌군1(운곡동 245-6)에서는 해발 26m의 구릉 말단부에서 고인돌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덮개돌|덮개돌上石]]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않았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마름모형이고, 단면 형태는 부정형이다. 규모는 길이 3.2m, 너비 2.5m, 두께 1.6m이다.
능동 고인돌군1(운곡동 245-6)에서는 해발 26m의 구릉 말단부에서 고인돌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덮개돌|덮개돌(上石)]]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않았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마름모형이고, 단면 형태는 부정형이다. 규모는 길이 3.2m, 너비 2.5m, 두께 1.6m이다.


능동 고인돌군2(운곡동 239-3)에서는 구릉 사면부에 열을 지어 분포하는 고인돌 27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자연 지세에 따라 분포하지만 자연 수로의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직교한다. 덮개돌은 27기 중 8기에서만 확인되었다. [[묘역시설|묘역(墓域)]]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다. 축조 방법은 [[구획석|구획석(區劃石)]] 내부를 돌로 채운 a형, 구획석 내부를 흙으로 채운 b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a형은 16·20호에서 확인되는데,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를 축조한 후 작은 깬돌을 쌓고, 좀 더 큰 깬돌으로 구획석을 돌렸다. b형은 11·12호에서 확인된다. 11호는 덮개돌보다 조금 크게 외곽을 따라 타원형으로 구획하였고, 12호는 매장주체부와 장방형 구획석 사이를 흑갈색 부식토와 잡석을 섞어 채웠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은 덮개돌을 받치는 것과 덮개돌을 받치면서 그 자체가 [[벽석|벽석]]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12호와 23호처럼 대형 덮개돌을 사용한 고인돌은 벽석으로 쏠리는 무게를 고루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매의 받침돌을 사용하였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수 매의 판돌로 덮은 1형, 매장 주체부 윗면에 작은 잡석들을 깐 2형, 별다른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은 3형으로 나눌 수 있다. 1형은 18·20호가 해당하며, 매장 주체부는 모두 지하식[[돌널형|돌덧널형石槨形]]이다. 2형은 7·16·19·22호가 해당하는데, 16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덧널형이다. 3형은 2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된다.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 [[돌널형|돌널형(石棺形)]], [[돌두름형|돌 두름형(圍石形)]], [[구덩이형|구덩이형(土壙形)]] 등이 있다. 돌덧널형이 가장 많은데, 벽석을 3~4단으로 쌓은 것과 1~2단으로 쌓은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깊이가 깊고 바닥은 주로 깬돌(割石)을 전면에 깔았다. 후자는 깊이가 얕고 벽석이 지면 위로 노출되는 반지하식이 많다. 유물은 대부분 돌덧널형에서 출토되었다. 돌널형은 18호 고인돌 1기뿐이다. 긴 벽은 판돌(板石) 3~4매로 축조하였으며, 북쪽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고, 남쪽 짧은 벽은 토벽이다. 뚜껑돌로 추정되는 판돌은 북쪽 짧은 벽 쪽에서 1매가 확인되었다. 돌 두름형은 돌덧널형 다음으로 많다. 덮개돌이 대부분 확인되며, 정지한 면에 깬돌을 돌려놓은 지상식이다. 12호 고인돌 가까운 곳에 24·25호가 추가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돌 두름형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깬돌을 깐 것, 판돌을 깐 것, 깬돌과 판돌을 섞어 사용한 것,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깬돌을 바닥 전면에 깐 것과 아무런 시설도 없는 것이 가장 많다. 1호 고인돌에서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頸式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능동 고인돌군2(운곡동 239-3)에서는 구릉 사면부에 열을 지어 분포하는 고인돌 27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자연 지세에 따라 분포하지만 자연 수로의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직교한다. 덮개돌은 27기 중 8기에서만 확인되었다. 묘역(墓域)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다. 축조 방법은 구획석(區劃石) 내부를 돌로 채운 a형, 구획석 내부를 흙으로 채운 b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a형은 16·20호에서 확인되는데,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를 축조한 후 작은 깬돌을 쌓고, 좀 더 큰 깬돌으로 구획석을 돌렸다. b형은 11·12호에서 확인된다. 11호는 덮개돌보다 조금 크게 외곽을 따라 타원형으로 구획하였고, 12호는 매장주체부와 장방형 구획석 사이를 흑갈색 부식토와 잡석을 섞어 채웠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은 덮개돌을 받치는 것과 덮개돌을 받치면서 그 자체가 벽석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12호와 23호처럼 대형 덮개돌을 사용한 고인돌은 벽석으로 쏠리는 무게를 고루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매의 받침돌을 사용하였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수 매의 판돌로 덮은 1형, 매장 주체부 윗면에 작은 잡석들을 깐 2형, 별다른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은 3형으로 나눌 수 있다. 1형은 18·20호가 해당하며, 매장 주체부는 모두 지하식 돌덧널형(石槨形)이다. 2형은 7·16·19·22호가 해당하는데, 16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덧널형이다. 3형은 2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된다.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 돌널형(石棺形), 돌 두름형(圍石形), 구덩이형(土壙形) 등이 있다. 돌덧널형이 가장 많은데, 벽석을 3~4단으로 쌓은 것과 1~2단으로 쌓은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깊이가 깊고 바닥은 주로 깬돌(割石)을 전면에 깔았다. 후자는 깊이가 얕고 벽석이 지면 위로 노출되는 반지하식이 많다. 유물은 대부분 돌덧널형에서 출토되었다. 돌널형은 18호 고인돌 1기뿐이다. 긴 벽은 판돌(板石) 3~4매로 축조하였으며, 북쪽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고, 남쪽 짧은 벽은 토벽이다. 뚜껑돌로 추정되는 판돌은 북쪽 짧은 벽 쪽에서 1매가 확인되었다. 돌 두름형은 돌덧널형 다음으로 많다. 덮개돌이 대부분 확인되며, 정지한 면에 깬돌을 돌려놓은 지상식이다. 12호 고인돌 가까운 곳에 24·25호가 추가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돌 두름형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깬돌을 깐 것, 판돌을 깐 것, 깬돌과 판돌을 섞어 사용한 것,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깬돌을 바닥 전면에 깐 것과 아무런 시설도 없는 것이 가장 많다. 1호 고인돌에서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頸式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채석장(운곡동 240-7)은 능동 고인돌군3에서 남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봉사이태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다. 해발 30m정도에 거대한 암반석이 경사면을 따라 노출되어 있고, 경사면 하단부에는 덮개돌과 유사한 크기의 석재들이 많이 있다. 쐐기를 박았던 흔적이 일부 관찰되어 암반에서 석재를 분리하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암반의 전체 크기는 길이 24m, 너비 18m 정도이다. 바위그림은 채석장 내 9개 암반에서 확인되는데, 주로 채석이 이루어진 암반의 편평한 면에 그려져 있다. 바위그림은 54개 정도 확인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0개 정도이다. 암각이 이루어진 면은 수직면 27개, 수평면 13개이다. 문양은 채석된 면에 음각으로 새겼다. 세선화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가로선과 세로선을 중첩되게 격자 형태로 새겼으며, 길이 0.05~0.2m 정도가 가장 많다.
채석장(운곡동 240-7)은 능동 고인돌군3에서 남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봉사이태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다. 해발 30m정도에 거대한 암반석이 경사면을 따라 노출되어 있고, 경사면 하단부에는 덮개돌과 유사한 크기의 석재들이 많이 있다. 쐐기를 박았던 흔적이 일부 관찰되어 암반에서 석재를 분리하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암반의 전체 크기는 길이 24m, 너비 18m 정도이다. 바위그림은 채석장 내 9개 암반에서 확인되는데, 주로 채석이 이루어진 암반의 편평한 면에 그려져 있다. 바위그림은 54개 정도 확인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0개 정도이다. 암각이 이루어진 면은 수직면 27개, 수평면 13개이다. 문양은 채석된 면에 음각으로 새겼다. 세선화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가로선과 세로선을 중첩되게 격자 형태로 새겼으며, 길이 0.05~0.2m 정도가 가장 많다.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은 인접한 [[운곡동기능유적|운곡동 기능 유적]], [[운곡동안성유적|운곡동 안성 유적]], [[운곡동유적|운곡동]]·[[동수동유적|동수동]] 유적 등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들과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마을 유적들은 모두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여 능동 고인돌군의 연대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 일대에서는 청동기 시대 마을과 무덤들이 함께 조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한 채석장도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은 물론 고인돌 축조 과정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특히 채석장 안에 있는 암반과 고인돌의 덮개돌에서 동일한 형태의 바위그림은 청동기 시대 바위그림의 새로운 기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은 인접한 [[나주운곡동기능유적|운곡동 기능 유적]], [[나주운곡동안성유적|운곡동 안성 유적]], [[나주운곡동동수동유적|운곡동·동수동 유적]]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들과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마을 유적들은 모두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여 능동 고인돌군의 연대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 일대에서는 청동기 시대 마을과 무덤들이 함께 조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한 채석장도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은 물론 고인돌 축조 과정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특히 채석장 안에 있는 암반과 고인돌의 덮개돌에서 동일한 형태의 바위그림은 청동기 시대 바위그림의 새로운 기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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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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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4년~2009년 || 나주 운곡동유적Ⅲ || 2011 || 마한문화연구원
|}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08). <i>나주 운곡동유적Ⅰ</i>.
* 마한문화연구원. (2011). <i>나주 운곡동유적Ⅲ</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나주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나주 운곡동 능동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바위그림, 통슴베 돌살촉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수진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5-6·239-3·239-5·240-7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1차와 2차 조성부지에서 확인되었다. 1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1에서 고인돌 1기, 2차 조성부지에서는 능동 고인돌군2에서 고인돌 27기, 능동 고인돌군3에서 석재가 조사되었고, 채석장(採石場)과 바위그림(岩刻畵)도 확인되었다. 능동 고인돌군1·2·3은 크게 보면 하나의 유적군을 이루고 있다.

능동 고인돌군1(운곡동 245-6)에서는 해발 26m의 구릉 말단부에서 고인돌 1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덮개돌(上石)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않았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마름모형이고, 단면 형태는 부정형이다. 규모는 길이 3.2m, 너비 2.5m, 두께 1.6m이다.

능동 고인돌군2(운곡동 239-3)에서는 구릉 사면부에 열을 지어 분포하는 고인돌 27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자연 지세에 따라 분포하지만 자연 수로의 북쪽에 있는 고인돌들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직교한다. 덮개돌은 27기 중 8기에서만 확인되었다. 묘역(墓域)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다. 축조 방법은 구획석(區劃石) 내부를 돌로 채운 a형, 구획석 내부를 흙으로 채운 b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a형은 16·20호에서 확인되는데, 매장 주체부를 축조한 후 작은 깬돌을 쌓고, 좀 더 큰 깬돌으로 구획석을 돌렸다. b형은 11·12호에서 확인된다. 11호는 덮개돌보다 조금 크게 외곽을 따라 타원형으로 구획하였고, 12호는 매장주체부와 장방형 구획석 사이를 흑갈색 부식토와 잡석을 섞어 채웠다. 받침돌(支石)은 덮개돌을 받치는 것과 덮개돌을 받치면서 그 자체가 벽석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12호와 23호처럼 대형 덮개돌을 사용한 고인돌은 벽석으로 쏠리는 무게를 고루 분산시키기 위해 여러 매의 받침돌을 사용하였다. 뚜껑돌(蓋石)은 수 매의 판돌로 덮은 1형, 매장 주체부 윗면에 작은 잡석들을 깐 2형, 별다른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은 3형으로 나눌 수 있다. 1형은 18·20호가 해당하며, 매장 주체부는 모두 지하식 돌덧널형(石槨形)이다. 2형은 7·16·19·22호가 해당하는데, 16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덧널형이다. 3형은 20기로 가장 많이 확인된다.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 돌널형(石棺形), 돌 두름형(圍石形), 구덩이형(土壙形) 등이 있다. 돌덧널형이 가장 많은데, 벽석을 3~4단으로 쌓은 것과 1~2단으로 쌓은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깊이가 깊고 바닥은 주로 깬돌(割石)을 전면에 깔았다. 후자는 깊이가 얕고 벽석이 지면 위로 노출되는 반지하식이 많다. 유물은 대부분 돌덧널형에서 출토되었다. 돌널형은 18호 고인돌 1기뿐이다. 긴 벽은 판돌(板石) 3~4매로 축조하였으며, 북쪽 짧은 벽은 판돌 1매로 축조하였고, 남쪽 짧은 벽은 토벽이다. 뚜껑돌로 추정되는 판돌은 북쪽 짧은 벽 쪽에서 1매가 확인되었다. 돌 두름형은 돌덧널형 다음으로 많다. 덮개돌이 대부분 확인되며, 정지한 면에 깬돌을 돌려놓은 지상식이다. 12호 고인돌 가까운 곳에 24·25호가 추가장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돌 두름형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깬돌을 깐 것, 판돌을 깐 것, 깬돌과 판돌을 섞어 사용한 것,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깬돌을 바닥 전면에 깐 것과 아무런 시설도 없는 것이 가장 많다. 1호 고인돌에서 통슴베 돌살촉(一段頸式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채석장(운곡동 240-7)은 능동 고인돌군3에서 남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봉사이태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다. 해발 30m정도에 거대한 암반석이 경사면을 따라 노출되어 있고, 경사면 하단부에는 덮개돌과 유사한 크기의 석재들이 많이 있다. 쐐기를 박았던 흔적이 일부 관찰되어 암반에서 석재를 분리하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암반의 전체 크기는 길이 24m, 너비 18m 정도이다. 바위그림은 채석장 내 9개 암반에서 확인되는데, 주로 채석이 이루어진 암반의 편평한 면에 그려져 있다. 바위그림은 54개 정도 확인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0개 정도이다. 암각이 이루어진 면은 수직면 27개, 수평면 13개이다. 문양은 채석된 면에 음각으로 새겼다. 세선화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가로선과 세로선을 중첩되게 격자 형태로 새겼으며, 길이 0.05~0.2m 정도가 가장 많다.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은 인접한 운곡동 기능 유적, 운곡동 안성 유적, 운곡동·동수동 유적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들과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마을 유적들은 모두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여 능동 고인돌군의 연대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 일대에서는 청동기 시대 마을과 무덤들이 함께 조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인돌의 덮개돌을 채석한 채석장도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은 물론 고인돌 축조 과정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특히 채석장 안에 있는 암반과 고인돌의 덮개돌에서 동일한 형태의 바위그림은 청동기 시대 바위그림의 새로운 기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4년~2009년 나주 운곡동유적Ⅲ 2011 마한문화연구원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08). 나주 운곡동유적Ⅰ.
  • 마한문화연구원. (2011). 나주 운곡동유적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