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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운곡동·동수동 유적 | | 한글표제어=운곡동·동수동 유적 | ||
| 이칭별칭=나주 운곡동·동수동 | | 이칭별칭=나주 운곡동·동수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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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 | |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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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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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설명== | ||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 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은 1차와 2차 조성 부지로 나누어지는데, 운곡동 유적은 1차 조성 부지 내 Ⅱ지구에 해당한다. Ⅱ지구는 가야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 지역으로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50기, [[구덩이|구덩이]] 4기, [[도랑|도랑(溝)]] 4기가 발굴되었다. |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 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은 1차와 2차 조성 부지로 나누어지는데, 운곡동 유적은 1차 조성 부지 내 Ⅱ지구에 해당한다. Ⅱ지구는 가야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 지역으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50기, [[구덩이|구덩이]] 4기, [[도랑|도랑(溝)]] 4기가 발굴되었다. | ||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모두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 33기, 원형 17기이다. 장축은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북서-남동 방향이 28기로 가장 많고, 북동-남서 방향이 11기, 동서 방향이 13기, 남북 방향이 6기이다. 규모는 소형(2.28~3m), 중형(3.01~5m), 대형(5.01~5.58m)으로 구분되는데, 중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 도랑(溝) 등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 끝에는 기둥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타원형 구덩이 외부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거나 기둥 구멍이 아예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랑은 |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모두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 33기, 원형 17기이다. 장축은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북서-남동 방향이 28기로 가장 많고, 북동-남서 방향이 11기, 동서 방향이 13기, 남북 방향이 6기이다. 규모는 소형(2.28~3m), 중형(3.01~5m), 대형(5.01~5.58m)으로 구분되는데, 중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 도랑(溝) 등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 끝에는 기둥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타원형 구덩이 외부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거나 기둥 구멍이 아예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랑은 벽 도랑(壁溝)과 벽에서 타원형 구덩이로 연결되는 ‘Y’자 모양 ·‘I’자 모양 도랑, 배수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배수구와 연결되어 전면으로 돌아가는 31호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사가 높은 쪽 벽에서만 확인된다. ‘Y’자 모양 도랑은 25호에서 확인되는데, 경사가 높은 쪽 벽 도랑과 연결되어 있다. “I”자형 도랑은 벽 도랑과 타원형 구덩이가 한 갈래로 이어져 있으며, 21·29·30·32호에서 확인된다. 배수구는 31호 집자리에서 확인되는데 벽 도랑과 연결되어 경사가 낮은 쪽을 향해 일자로 뻗어있다. | ||
구덩이(1~4호)와 도랑(1·3·4·8호)은 주거군 사이 또는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구덩이는 대부분 불탄 흙과 숯이 토기 편과 함께 확인되어 | 구덩이(1~4호)와 도랑(1·3·4·8호)은 주거군 사이 또는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구덩이는 대부분 불탄 흙과 숯이 토기 편과 함께 확인되어 소성 유구(燒成遺構)로 판단된다. 1호 도랑은 내부에서 불탄(燒結) 점토층이 확인되어 이 역시 소성 유구로 판단된다. | ||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나누어진다.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4호 도랑)과 [[그물추|그물추]]를 제외하면 모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다. 석기류는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삼각돌칼|삼각돌칼]], [[돌끌|돌끌(石鑿)]], [[돌검|돌검]], [[굴지구|굴지구(掘地具)]], [[숫돌|숫돌(砥石)]], [[갈돌|갈돌(碾石)]], [[망치돌|망치돌]], [[가락바퀴|가락바퀴]], 용도 미상 석기 등과 함께 미완성 석기와 석재 등 석기 제작 과정에서 남겨진 유물들이 있다. 이 중 |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나누어진다.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4호 도랑)과 [[그물추|그물추]]를 제외하면 모두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다. 석기류는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삼각돌칼|삼각돌칼]], [[돌끌|돌끌(石鑿)]], [[돌검|돌검]], [[굴지구|굴지구(掘地具)]], [[숫돌|숫돌(砥石)]], [[갈돌|갈돌(碾石)]], [[망치돌|망치돌]], [[가락바퀴|가락바퀴]], 용도 미상 석기 등과 함께 미완성 석기와 석재 등 석기 제작 과정에서 남겨진 유물들이 있다. 이 중 돌살촉의 비율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석기 제작과 관련된 숫돌, 미완성 석기, 석재 순이다. 돌살촉은 통슴베식(一段莖式)과 턱 슴베(二段莖式)으로 구분된다. 돌살촉 중 일부에는 재가공 흔적이 있으며, 재가공으로 인해 몸체 길이가 짧은 소형 돌살촉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돌도끼는 조갯날 [[돌도끼|돌도끼(蛤刃石斧)]]와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로 나누어진다. 굴지구는 단인(單刃)을 이루고 있다. 숫돌은 사용으로 인하여 얇아진 상태이거나 일직선 홈이 관찰된다. 갈돌은 한쪽 면 이상이 편평하게 갈린 갈판이 대부분이며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 ||
집자리들은 중복 관계를 통해 선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3·24·49·50호 집자리를 보면, 방형이 원형보다 선행한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방형 집자리(6·18·41호)는 기원전 7~6세기경으로 나타났고, 원형 집자리(2·31·33호)는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한다. 이로 보아 원형과 방형 집자리는 상당 기간 동안 공존하였으며 방형 집자리가 원형 집자리보다 존속 기간이 짧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주로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하지만 33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 편으로 보아 그보다 늦은 시기까지도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동수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주거와 생산 흔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마을 유적이다. 주변에 위치한 [[ | 집자리들은 중복 관계를 통해 선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3·24·49·50호 집자리를 보면, 방형이 원형보다 선행한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방형 집자리(6·18·41호)는 기원전 7~6세기경으로 나타났고, 원형 집자리(2·31·33호)는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한다. 이로 보아 원형과 방형 집자리는 상당 기간 동안 공존하였으며 방형 집자리가 원형 집자리보다 존속 기간이 짧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주로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하지만 33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 편으로 보아 그보다 늦은 시기까지도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동수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주거와 생산 흔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마을 유적이다. 주변에 위치한 [[나주운곡동기능유적|운곡동 기능 유적]], [[나주운곡동능동고인돌군|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나주운곡동안성유적|운곡동 안성 유적]] 등과 함께 청동기 시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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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나주_운곡동_동수동_유적_31호_집자리.jpg | |||
File:나주_운곡동_동수동_유적_II호_도랑_출토_유물.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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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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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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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4년~2009년 || 나주 운곡동유적Ⅱ || 2009 || 마한문화연구원 | |||
|} | |||
==한국고고학저널== | ==한국고고학저널== |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5&d_idx=189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된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유적]", <i>2009 한국고고학저널</i>.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5&d_idx=189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된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유적]", <i>2009 한국고고학저널</i>. | ||
==참고문헌== | |||
* 마한문화연구원. (2009). <i>나주 운곡동유적Ⅱ</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나주 운곡동·동수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바리 토기, 그물추, 민무늬 토기, 돌살촉, 돌도끼, 삼각 돌칼, 돌끌, 돌검, 굴지구, 숫돌, 갈돌, 가락바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박수진 |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운곡동 244-6·동수동 385-2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지방 산업 단지(국민 임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은 1차와 2차 조성 부지로 나누어지는데, 운곡동 유적은 1차 조성 부지 내 Ⅱ지구에 해당한다. Ⅱ지구는 가야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 지역으로 청동기 시대 집자리 50기, 구덩이 4기, 도랑(溝) 4기가 발굴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모두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다. 평면 형태는 방형 33기, 원형 17기이다. 장축은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북서-남동 방향이 28기로 가장 많고, 북동-남서 방향이 11기, 동서 방향이 13기, 남북 방향이 6기이다. 규모는 소형(2.28~3m), 중형(3.01~5m), 대형(5.01~5.58m)으로 구분되는데, 중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柱孔), 도랑(溝) 등이 있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 끝에는 기둥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타원형 구덩이 외부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거나 기둥 구멍이 아예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랑은 벽 도랑(壁溝)과 벽에서 타원형 구덩이로 연결되는 ‘Y’자 모양 ·‘I’자 모양 도랑, 배수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배수구와 연결되어 전면으로 돌아가는 31호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사가 높은 쪽 벽에서만 확인된다. ‘Y’자 모양 도랑은 25호에서 확인되는데, 경사가 높은 쪽 벽 도랑과 연결되어 있다. “I”자형 도랑은 벽 도랑과 타원형 구덩이가 한 갈래로 이어져 있으며, 21·29·30·32호에서 확인된다. 배수구는 31호 집자리에서 확인되는데 벽 도랑과 연결되어 경사가 낮은 쪽을 향해 일자로 뻗어있다.
구덩이(1~4호)와 도랑(1·3·4·8호)은 주거군 사이 또는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구덩이는 대부분 불탄 흙과 숯이 토기 편과 함께 확인되어 소성 유구(燒成遺構)로 판단된다. 1호 도랑은 내부에서 불탄(燒結) 점토층이 확인되어 이 역시 소성 유구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나누어진다. 토기류는 바리 토기(鉢形土器) 1점(4호 도랑)과 그물추를 제외하면 모두 민무늬 토기 편이다. 석기류는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삼각돌칼, 돌끌(石鑿), 돌검, 굴지구(掘地具), 숫돌(砥石), 갈돌(碾石), 망치돌, 가락바퀴, 용도 미상 석기 등과 함께 미완성 석기와 석재 등 석기 제작 과정에서 남겨진 유물들이 있다. 이 중 돌살촉의 비율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석기 제작과 관련된 숫돌, 미완성 석기, 석재 순이다. 돌살촉은 통슴베식(一段莖式)과 턱 슴베(二段莖式)으로 구분된다. 돌살촉 중 일부에는 재가공 흔적이 있으며, 재가공으로 인해 몸체 길이가 짧은 소형 돌살촉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돌도끼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와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로 나누어진다. 굴지구는 단인(單刃)을 이루고 있다. 숫돌은 사용으로 인하여 얇아진 상태이거나 일직선 홈이 관찰된다. 갈돌은 한쪽 면 이상이 편평하게 갈린 갈판이 대부분이며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집자리들은 중복 관계를 통해 선후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23·24·49·50호 집자리를 보면, 방형이 원형보다 선행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방형 집자리(6·18·41호)는 기원전 7~6세기경으로 나타났고, 원형 집자리(2·31·33호)는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한다. 이로 보아 원형과 방형 집자리는 상당 기간 동안 공존하였으며 방형 집자리가 원형 집자리보다 존속 기간이 짧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주로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하지만 33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둥근 덧띠 토기 편으로 보아 그보다 늦은 시기까지도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운곡동·동수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주거와 생산 흔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마을 유적이다. 주변에 위치한 운곡동 기능 유적, 운곡동 능동 고인돌군, 운곡동 안성 유적 등과 함께 청동기 시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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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4년~2009년 | 나주 운곡동유적Ⅱ | 2009 | 마한문화연구원 |
한국고고학저널
- "삶과 죽음의 공간이 분리된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유적", 2009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마한문화연구원. (2009). 나주 운곡동유적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