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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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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동 지구에서는 17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말각 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한데, 말각 방형이 가장 많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크기는 한 변의 길이(혹은 지름)가 3.6~6.5m 정도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기둥 구멍은 타원형 작업 구덩이 내·외에 각각 있으며, 대형인 경우에는 타원형 구덩이 외곽에 별도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듯이 4개가 배치된 예가 있다. 유물은 간 돌검, 간 돌살촉,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숫돌(砥石), 돌끌,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등의 석기류와 가락바퀴, 작은옥(小玉),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은 관동 가-2호 26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5년), 관동 가-3호 2520±70 BP (보정 연대 기원전 605년)이다.
한편, 관동 지구에서는 17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말각 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한데, 말각 방형이 가장 많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크기는 한 변의 길이(혹은 지름)가 3.6~6.5m 정도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기둥 구멍은 타원형 작업 구덩이 내·외에 각각 있으며, 대형인 경우에는 타원형 구덩이 외곽에 별도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듯이 4개가 배치된 예가 있다. 유물은 간 돌검, 간 돌살촉,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숫돌(砥石), 돌끌,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등의 석기류와 가락바퀴, 작은옥(小玉),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은 관동 가-2호 26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5년), 관동 가-3호 2520±70 BP (보정 연대 기원전 605년)이다.
==참고문헌==
* 순천대학교박물관. (2000·2001). <i>광양 용강리 택지개발지구 문화유적 1·2차 발굴조사 약보고</i>.
* 순천대학교박물관. (2002). <i>광양 용강리 유적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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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4 기준 최신판


용강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양 용강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돌덧널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동희(인제대)



설명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용강리 북쪽 산 구릉의 하단부 저평한 구릉에 해당하며 서쪽에 인접하여 광양 동천이 흐르고 있다. 용강 지구 택지 개발 조성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99~2001년까지 2차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용강리 유적은 기두와 관동 지구로 구분되는데, 기두 지구는 ‘가’지구와 ‘나’지구로 세분된다. 기두 가지구에서는 고인돌 4기와 돌덧널무덤(石槨墓) 34기, 집자리 8기, 기두 나지구에서는 고인돌 4기와 돌덧널무덤 18기 등이 확인되었다.

기두 나지구 고인돌은 받침돌(支石)이 있는 바둑판식이며, 3호는 매장 주체부 없이 묘표석(墓標石)의 기능을 했다고 판단된다.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이 대부분이고 3기만이 돌널(石棺)형이다. 대부분 뚜껑돌(蓋石)이 있으며 일부는 2중 뚜껑돌이다. 바닥은 맨 바닥인 경우와 판돌(板石)을 2~3매 깐 경우, 깬돌(割石)을 깐 경우 등으로 구분되지만, 대개 판돌 2~3매를 깐 것이다. 벽석의 축조는 돌무지(積石) 구조와 입석(立石) 구조로 구분되지만 짧은 벽의 경우는 대부분 판돌을 이용한 입석 구조이다. 매장 주체부는 지하식이 다수이고 지상식은 극소수이다. 돌덧널의 장축 방향은 대개 등고선과 직교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이고, 석기류는 돌끌(石鑿), 간 돌검, 간 돌살촉, 그 외에 소옥(小玉) 등이 확인되었다.

기두 가지구에서 집자리는 8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장축은 등고선과 나란한 남북 방향으로, 평면 형태는 타원형 내지 말각 방형이다.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다. 2호는 평면 장방형이고 길이 9.2m, (추정)너비 6.6m, 깊이 0.78m이다. 2-1호는 2호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는데, 평면 원형으로 (추정)지름 6m, 깊이 0.3m이다. 유적에서는 집자리 간 중복되거나 집자리와 돌덧널이 중복되어 확인되었다. 4호 집자리 위에 22호와 25호 돌덧널이 축조되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돌끌, 가락바퀴, 돌칼, 간 돌살촉, 숫돌 등의 석기류와 민무늬 토기 편, 구슬옥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집자리 관련 구덩이는 지름이 2m, 깊이는 0.1~0.2m이다. 유구 내부에서 소량의 목탄과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기두 나지구 고인돌과 무덤방은 대부분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 장축 방향이다. 4기의 고인돌 가운데 3호만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2기는 묘표석으로 판단된다. 무덤방은 돌로 정연하게 축조된 것도 있지만 토광을 이용하여 매장 주체부 가장자리에 깬돌 수매를 덧댄 경우도 있다. 고인돌 주변의 무덤방은 3~4구역으로 구분되는 군집성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편, 간 돌살촉 편, 돌끌,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구슬옥(丸玉), 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관동 지구에서는 17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말각 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한데, 말각 방형이 가장 많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크기는 한 변의 길이(혹은 지름)가 3.6~6.5m 정도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기둥 구멍은 타원형 작업 구덩이 내·외에 각각 있으며, 대형인 경우에는 타원형 구덩이 외곽에 별도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이루듯이 4개가 배치된 예가 있다. 유물은 간 돌검, 간 돌살촉, 홈자귀(有溝石斧), 숫돌(砥石), 돌끌, 삼각 돌칼 등의 석기류와 가락바퀴, 작은옥(小玉),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은 관동 가-2호 2650±8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5년), 관동 가-3호 2520±70 BP (보정 연대 기원전 605년)이다.

참고문헌

  • 순천대학교박물관. (2000·2001). 광양 용강리 택지개발지구 문화유적 1·2차 발굴조사 약보고.
  • 순천대학교박물관. (2002). 광양 용강리 유적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