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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은 45기의 고인돌을 조사하였으나 무덤방을 알 수 있는 것은 17기에 불과하며 출토 유물도 매우 빈약한 편이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은 전남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강 흐름 방향과 일치되고 있다. | 이 유적은 45기의 고인돌을 조사하였으나 무덤방을 알 수 있는 것은 17기에 불과하며 출토 유물도 매우 빈약한 편이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은 전남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강 흐름 방향과 일치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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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전남대학교박물관. (1987). <i>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발굴보고서Ⅰ-오봉리 다군 지석묘, 오봉리 라군 지석묘, 오봉리 아군 지석묘-</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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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순천 오봉리 고인돌군, 순천 오봉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오봉리 782-1(다군)·799(라군)·306(아군)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움무덤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한옥민 |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오봉리 782-1(다군)·799(라군)·306(아군) 일원에 위치한다. 오봉리에 있는 신월·신흥·옥령마을은 지표 조사에서 8개소에 모두 80여 기의 고인돌이 군집되어 있는데, 주암댐 수몰 지역에 포함되어 1986년에 신월마을 일원의 다·라군, 신흥마을의 아군에 대해 전북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가 각각 발굴 조사하였다.
다군 고인돌은 산기슭 사면부에 보성강의 흐름에 따라 대체로 3열을 이루어 분포하고 있다. 덮개돌(上石)은 모두 14기가 있는데 제대로 남은 것은 3기에 불과하다. 14기 가운데 받침돌(支石)이 확실한 바둑판식(碁盤式)은 6기인데 2~3매 정도로 고이고 있다. 무덤방(墓室)은 모두 5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을 한 것은 2기가 있다. 1호 덮개돌은 길이 2.4m, 너비 2m, 두께 0.6m이며, 받침돌은 2매가 확인된다. 뚜껑돌(蓋石)은 판돌(板石) 3매와 5매를 이용하여 겹으로 덮었으며, 무덤방은 길이 2.1m, 너비 0.45~0.5m, 깊이 0.4m로 돌덧널형이다. 벽은 깬돌(割石)과 강돌(川石)로 쌓고, 바닥은 넓적한 강돌로 깔고 돌 사이에는 입자가 고운 흙으로 채워서 깔았다. 무덤방 주변에는 2~3열의 깬돌 또는 강돌로 적석하였다. 14호는 덮개돌이 길이 3.8m, 너비 2.3m, 두께 1m이며 받침돌 2매가 있으며,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군 내 유물은 벽옥제(碧玉製) 대롱옥(管玉),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민무늬 토기 편, 빗살무늬 토기 편이 있다.
라군 고인돌은 보성강 유역 산사면의 퇴적지 위에 남북 방향으로 4열을 이루고 있다. 고인돌은 여기에 34기가 분포되어 있으나 16기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루어졌다. 형식은 바둑판식과 덮개식(蓋石式)이 혼재되어 있는데 후자가 더 많고, 돌무지 시설은 3기에서 확인된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이 12기로 네 벽을 강돌을 주로 하여 쌓고 그 사이를 진흙으로 보충한 것과 깬돌을 주로하고 강돌이나 판돌을 사이에 보강한 것이 있으며, 움무덤(土壙墓)으로 추정되는 것이 2기 있다. 바닥은 판돌로 전면에 깐 것, 강돌과 판돌을 중앙부에만 깐 것, 판돌을 3부분에 깐 것, 작은 강돌을 전면에 깐 것, 생토면을 이용한 것 등 다양하다. 1호 덮개돌은 평면 타원형으로 길이 2.7m, 너비 1.9m, 두께 1.4m이다. 무덤방은 길이 1.3m, 너비 0.25~0.3m, 깊이 0.3m인 돌덧널형이다. 뚜껑돌은 2매를 이용하여 덮고 결실된 북벽을 제외하고 두 벽은 강돌로 쌓고 그 사이를 진흙으로 보강하였으며, 남벽은 얇은 강돌 1매로 세우고 그 뒤에 0.26m 정도의 판돌 3매를 잇대어 축조하였다. 바닥은 잔자갈을 깔았다. 8호 덮개돌은 평면 삼각형으로 길이 2.52m, 너비 1.9m, 두께 0.42m이며 잔존하는 받침돌은 2매가 있다. 무덤방은 길이 1.55m, 너비 0.32~0.43m, 깊이 0.34m의 돌덧널형으로 벽석은 깬돌과 판돌을 이용하여 이중으로 축조하고 바닥은 판돌을 세 부분에 깔았다. 장제(葬制)는 펴묻기(伸展葬)로 추정된다. 라 군내 유물은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자루 간돌검, 간 돌살촉, 돌도끼(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砥石),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1점이 있다.
아군 고인돌은 강변에 인접한 좁은 평야지대에 위치한다. 조사는 15기에 대해서 이루어졌으나 하부 구조는 1기도 확인되지 않았다. 고인돌 형식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4호, 9호인데 바둑판식, 덮개식이 혼재할 가능성이 있다. 유물은 교란층에만 수습되었는데 민무늬 토기, 돌도끼, 뗀돌도끼(打製石斧)가 있다.
이 유적은 45기의 고인돌을 조사하였으나 무덤방을 알 수 있는 것은 17기에 불과하며 출토 유물도 매우 빈약한 편이다. 고인돌의 장축 방향은 전남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강 흐름 방향과 일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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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박물관. (1987). 주암댐 수몰지역 문화유적발굴보고서Ⅰ-오봉리 다군 지석묘, 오봉리 라군 지석묘, 오봉리 아군 지석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