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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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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역삼동 유적(서울 驛三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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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서울 역삼동 유적, 서울 도곡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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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66년 || 역삼동 주거지 발굴보고 || 1986 || 한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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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김양선, 임병태. (1986). 역삼동 주거지 발굴보고. <i>사학연구, 20</i> https://www.riss.kr/link?id=A1973935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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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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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역삼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서울 역삼동 유적, 서울 도곡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542-2(舊 성동구 역삼동) 일원
관련 정보
성격 집자리
키워드 집자리, 기둥 구멍,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깊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역삼동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만영



설명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542-2(舊 성동구 역삼동) 일원에 위치한다. 1966년 숭실대학교 사학과의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해 8월에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한강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변 해발 90m의 야산 정상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장축이 남서-북동 방향이고,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으로 바닥에 다량의 목탄 편이 깔려 있어 화재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길이 16m, 너비 3m의 대형이며,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약 0.7m이다. 네 벽면을 따라서 기둥 구멍이 1~2m 간격으로 배치되었으며, 기둥 구멍은 지름 0.1~0.15m이다. 일부 기둥 구멍 내에서 불탄 채 남아 있는 숯 기둥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입구는 벽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기둥 구멍이 없는 남쪽 짧은 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출토된 토기는 크게 민무늬 토기붉은 간 토기로 구분되는데, 민무늬 토기에는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등의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있고, 입술에 골아가리가 장식된 대형의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도 출토되었다. 붉은 간 토기는 2개체 분이 출토되었는데, 아가리가 짧게 벌어진 짧은 목 항아리(短頸壺)이다. 석기는 양날 돌도끼(兩刃石斧) 3점, 돌끌(石鑿) 2점,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2점, 반달 돌칼 1점, 숫돌(砥石) 6점, 갈돌갈판(耉石棒·耉石) 각 1점이 출토되었다.

한편 역삼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조합상을 표지로 하여 역삼동식 토기(驛三洞式土器) 또는 역삼동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구멍무늬와 골아가리 무늬 장식이 있는 깊은 바리 토기와 골아가리 무늬 혹은 민무늬 항아리 모양 토기,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접시 모양(高杯形)의 붉은 간 토기를 포함하기도 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66년 역삼동 주거지 발굴보고 1986 한국사학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