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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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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여의동 유적(全州 如意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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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전주 여의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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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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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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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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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에 위치한다. 1985년에 주민이 식목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 [[토광묘|움무덤(土壙墓)]]의 [[뚜껑돌|뚜껑돌(蓋石]])이 드러나면서 알려졌고 이에 대한 수습 조사 이후 198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집자리]] 1기, [[석개토광묘|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3기, 유물 포함층과 그 밖에 백제 시대의 [[석실묘|돌방무덤(石室墳]])이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에 위치한다. 1985년에 주민이 식목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 [[움무덤|움무덤(土壙墓)]]의 [[뚜껑돌|뚜껑돌(蓋石]])이 드러나면서 알려졌고 이에 대한 수습 조사 이후 198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3기, 유물 포함층과 그 밖에 백제 시대의 [[돌방무덤|돌방무덤(石室墳)]]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1호 움무덤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인 해발 50.1m의 대지상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긴 지름 6.8m, 짧은 지름 6.37m, 깊이 0.26m이다.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쪽에 4개의 기둥 구멍이 거의 정방형으로 배치된 송국리식이다. 동남쪽 벽선에서 약 0.6m 안으로 작은 4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일부 벽면에는 길이가 약 3m에 이르는 [[벽구|벽 도랑(壁溝)]]이 있으며 바닥은 불 다짐처리하였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과 [[갈판|갈판(碾石)]] 1점, [[자귀|자귀(手斧)]]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1호 움무덤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인 해발 50.1m의 대지상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긴 지름 6.8m, 짧은 지름 6.37m, 깊이 0.26m이다.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쪽에 4개의 기둥 구멍이 거의 정방형으로 배치된 송국리식이다. 동남쪽 벽선에서 약 0.6m 안으로 작은 4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일부 벽면에는 길이가 약 3m에 이르는 벽 도랑(壁溝)이 있으며 바닥은 불 다짐처리하였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과 [[갈판|갈판(碾石)]] 1점, [[자귀|자귀(手斧)]] 1점 등이 출토되었다.


1호 무덤은 해발 50.1m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길이 2.95m, 너비 2.55m의 오각형에 가까운 말각장방형 구덩이를 파 내려간 다음 이와는 대각선이 되도록 다시 동서 방향으로 길이 2.87m, 너비 1.15m의 안쪽 구덩이를 파 무덤 구덩이를 설치하였다. [[묘실|무덤방(墓室)]]은 길이 2.18m, 너비 0.47m, 깊이 0.4m이고 말각장방형이다. 뚜껑돌 2매가 무덤 바깥 윤곽에 맞추어 안쪽 구덩이를 덮고 있다. 신고된 유물은 [[여러꼭지거친무늬거울|여러 꼭지 거친무늬 거울(多紐粗文鏡)]] 2점, [[청동도끼|청동 도끼(銅斧)]] 1점, [[청동끌|청동 끌(銅鑿)]] 1점이며, 추가 조사 시에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1점이 출토되었다. 여러 꼭지 거울 1점은 전체 길이 15.3㎝로 주연周緣은 정연하지 않은 반원형 단면이다. 문양은 2구(二區)로 나누어 장식하였는데 외구(外區)는 너비 1.5㎝의 [[방사성거치문대|방사상 거치문대(放射狀鋸齒文帶)]]를 두르고, 내구(內區)는 3조의 종선(縱線)으로 5열 종구(縱區)로 나누고 각각 [[거치문|톱니무늬(鋸齒文)]]를 새겼다. 내외구 각각 삼각 톱니무늬를 기본 단위로 한다. 다른 한 점은 보다 소형으로 지름 13.2㎝이며, 주연부는 사다리꼴 단면이다. 문양은 [[별무늬거울|별무늬 거울(星形文鏡)]]로 중심에 5각형 내구를 설정하고, 외구에는 각변을 따라서 삼각형을 방사상으로 그려 별 모양을 만들었다. 외구와 내구 사이는 평행 집선문으로 메웠다. 청동 도끼는 흑색 광택이 뚜렷한 [[작은부채도끼|작은 부채 도끼(扇形銅斧)]]로 길이가 5.8㎝ 정도이며 자루 끝 부분(銎部)에는 2조의 돌대를 두르고, 한쪽 면 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청동 끌은 세장형으로 자루 구멍 부분에 2중 돌대가 있고 날 끝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뿌리 부분에 구멍(銎口)이 뚫려있다. 잔존 길이는 6.8㎝이다.
1호 무덤은 해발 50.1m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길이 2.95m, 너비 2.55m의 오각형에 가까운 말각장방형 구덩이를 파 내려간 다음 이와는 대각선이 되도록 다시 동서 방향으로 길이 2.87m, 너비 1.15m의 안쪽 구덩이를 파 무덤 구덩이를 설치하였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길이 2.18m, 너비 0.47m, 깊이 0.4m이고 말각장방형이다. 뚜껑돌 2매가 무덤 바깥 윤곽에 맞추어 안쪽 구덩이를 덮고 있다. 신고된 유물은]]를 두르고, 내구(內區)는 3조의 종선(縱線)으로 5열 종구(縱區)로 나누고 각각 [[톱니무늬|톱니무늬(鋸齒文)]]를 새겼다. 내외구 각각 삼각 톱니무늬를 기본 단위로 한다. 다른 한 점은 보다 소형으로 지름 13.2㎝이며, 주연부는 사다리꼴 단면이다. 문양은 [[별무늬거울|별무늬 거울(星形文鏡)]]로 중심에 5각형 내구를 설정하고, 외구에는 각변을 따라서 삼각형을 방사상으로 그려 별 모양을 만들었다. 외구와 내구 사이는 평행 집선문으로 메웠다. 청동 도끼는 흑색 광택이 뚜렷한 [[작은부채도끼|작은 부채 도끼(扇形銅斧)]]로 길이가 5.8㎝ 정도이며 자루 끝 부분(銎部)에는 2조의 돌대를 두르고, 한쪽 면 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청동 끌은 세장형으로 자루 구멍 부분에 2중 돌대가 있고 날 끝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뿌리 부분에 구멍(銎口)이 뚫려있다. 잔존 길이는 6.8㎝이다.


2호는 1호에서 서북쪽으로 42m 떨어진 능선상에 위치한다. 표토 0.7m 정도 아래에서 자연 판돌(自然板石) 5매를 이용한 뚜껑돌이 노출되었다. 장축이 서남 240° 방향이며 동서 양측의 짧은 벽을 둥글게 굴착하였다. 바닥면은 길이 1.7m, 너비 0.4m 깊이 0.6m이다. 지면으로부터의 바닥까지의 깊이는 0.95m이며, 무덤 구덩이 바닥면은 너비 0.7m로 넓게 조성되었다. 바닥에는 민무늬 토기 편을 깔았으며 내부에서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2호는 1호에서 서북쪽으로 42m 떨어진 능선상에 위치한다. 표토 0.7m 정도 아래에서 자연 판돌(自然板石) 5매를 이용한 뚜껑돌이 노출되었다. 장축이 서남 240° 방향이며 동서 양측의 짧은 벽을 둥글게 굴착하였다. 바닥면은 길이 1.7m, 너비 0.4m 깊이 0.6m이다. 지면으로부터의 바닥까지의 깊이는 0.95m이며, 무덤 구덩이 바닥면은 너비 0.7m로 넓게 조성되었다. 바닥에는 민무늬 토기 편을 깔았으며 내부에서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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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는 2호에서 북쪽으로 4m의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상부가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무덤 구덩이는 생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어 있는데, 장축 서남 230° 방향이며 길이 1.73m, 너비 0.6m, 깊이 0.2m이다. 바닥에는 편평한 잡석을 깔았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3호는 2호에서 북쪽으로 4m의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상부가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무덤 구덩이는 생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어 있는데, 장축 서남 230° 방향이며 길이 1.73m, 너비 0.6m, 깊이 0.2m이다. 바닥에는 편평한 잡석을 깔았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유물 포함층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간 돌검]],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대팻닐|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삼각돌칼|삼각 돌칼]] 등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와 밀접한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뗀석기|뗀석기(打製石器)]]를 비롯하여 [[가래모양석기|가래 모양 석기(石嵩形石器)]] 3점, [[갈판|갈판]] 3점, [[갈돌|갈돌(耉石棒)]] 1점, [[긁개|긁개(搔器)]] 4점, [[숫돌|숫돌(砥石)]] 2점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 포함층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돌검|간 돌검]],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대팻닐|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돌끌(石鑿)]], [[삼각돌칼|삼각 돌칼]] 등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와 밀접한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뗀석기|뗀석기(打製石器)]]를 비롯하여 [[가래모양석기|가래 모양 석기(石嵩形石器)]] 3점, 갈판 3점, [[갈돌|갈돌(耉石棒)]] 1점, [[긁개|긁개(搔器)]] 4점, [[숫돌|숫돌(砥石)]] 2점 등이 출토되었다.


여의동 유적의 움무덤은 구조나 유물의 성격에 있어서 초기 철기 시대의 대전 괴정동 유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움무덤을 비교해 보면 지표 아래에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를 설치한 점, 무덤 구덩이 벽면에 깬돌(割石)을 쌓지 않고 때려 붙이는 이른바 ‘[[장착|장착(張着)]]’ 수법을 쓴 점, 그리고 규모가 비슷한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둘째로 주목되는 것은 검은 간 토기이다. 이 토기는 괴정동 뿐만 아니라 [[비하유적|청원 비하]], [[남성리유적|아산 남성리]], [[구봉리유적|부여 구봉리]]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셋째, 두 유적이 거친무늬 거울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꼭지 거울 2면씩이 함께 출토되는 점도 동일한데, 등면 문양도 같은 계열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부채 도끼와 청동 끌은 괴정동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아산 남성리, [[동서리유적|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같은 형태의 청동 도끼가 출토되었고 청동 끌도 부여 구봉리, [[탄방동유적|대전 탄방동]] 등 금강 유역권에서 확인되는 유형이다. 이와 달리 2호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간 돌검과 민무늬 토기를 포함하고 있어 동일 지역에서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보인다.
여의동 유적의 움무덤은 구조나 유물의 성격에 있어서 초기 철기 시대의 대전 괴정동 유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움무덤을 비교해 보면 지표 아래에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구덩이|무덤 구덩이]]를 설치한 점, 무덤 구덩이 벽면에 깬돌(割石)을 쌓지 않고 때려 붙이는 이른바 ‘장착(張着)’ 수법을 쓴 점, 그리고 규모가 비슷한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둘째로 주목되는 것은 검은 간 토기이다. 이 토기는 괴정동 뿐만 아니라 청원 비하, [[아산남성리유적|아산 남성리]], [[부여구봉리유적|부여 구봉리]]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셋째, 두 유적이 거친무늬 거울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꼭지 거울 2면씩이 함께 출토되는 점도 동일한데, 등면 문양도 같은 계열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부채 도끼와 청동 끌은 괴정동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같은 형태의 청동 도끼가 출토되었고 청동 끌도 부여 구봉리, 대전 탄방동 등 금강 유역권에서 확인되는 유형이다. 이와 달리 2호에서는 [[부여송국리유적|부여 송국리 유적]]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간 돌검과 민무늬 토기를 포함하고 있어 동일 지역에서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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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88년~1989년 || 전주 여의동 선사유적 || 1990 || 전주대학교박물관
|}
 
==참고문헌==
* 전주대학교박물관. (1990). <i>전주 여의동 선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439983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여의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전주 여의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움무덤, 돌뚜껑움무덤, 돌방무덤, 민무늬 토기, 갈판, 자귀, 청동 도끼, 청동 끌, 검은 간 토기, 간 돌검, 돌살촉, 돌대팻날, 돌끌, 삼각 돌칼, 뗀석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민석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877-8 일원에 위치한다. 1985년에 주민이 식목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던 중 움무덤(土壙墓)뚜껑돌(蓋石)이 드러나면서 알려졌고 이에 대한 수습 조사 이후 198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집자리 1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3기, 유물 포함층과 그 밖에 백제 시대의 돌방무덤(石室墳)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1호 움무덤에서 동북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인 해발 50.1m의 대지상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이며 긴 지름 6.8m, 짧은 지름 6.37m, 깊이 0.26m이다.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쪽에 4개의 기둥 구멍이 거의 정방형으로 배치된 송국리식이다. 동남쪽 벽선에서 약 0.6m 안으로 작은 4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일부 벽면에는 길이가 약 3m에 이르는 벽 도랑(壁溝)이 있으며 바닥은 불 다짐처리하였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과 갈판(碾石) 1점, 자귀(手斧) 1점 등이 출토되었다.

1호 무덤은 해발 50.1m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길이 2.95m, 너비 2.55m의 오각형에 가까운 말각장방형 구덩이를 파 내려간 다음 이와는 대각선이 되도록 다시 동서 방향으로 길이 2.87m, 너비 1.15m의 안쪽 구덩이를 파 무덤 구덩이를 설치하였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2.18m, 너비 0.47m, 깊이 0.4m이고 말각장방형이다. 뚜껑돌 2매가 무덤 바깥 윤곽에 맞추어 안쪽 구덩이를 덮고 있다. 신고된 유물은를 두르고, 내구(內區)는 3조의 종선(縱線)으로 5열 종구(縱區)로 나누고 각각 톱니무늬(鋸齒文)를 새겼다. 내외구 각각 삼각 톱니무늬를 기본 단위로 한다. 다른 한 점은 보다 소형으로 지름 13.2㎝이며, 주연부는 사다리꼴 단면이다. 문양은 별무늬 거울(星形文鏡)로 중심에 5각형 내구를 설정하고, 외구에는 각변을 따라서 삼각형을 방사상으로 그려 별 모양을 만들었다. 외구와 내구 사이는 평행 집선문으로 메웠다. 청동 도끼는 흑색 광택이 뚜렷한 작은 부채 도끼(扇形銅斧)로 길이가 5.8㎝ 정도이며 자루 끝 부분(銎部)에는 2조의 돌대를 두르고, 한쪽 면 가운데에 구멍이 있다. 청동 끌은 세장형으로 자루 구멍 부분에 2중 돌대가 있고 날 끝 부분이 결실되었으며 뿌리 부분에 구멍(銎口)이 뚫려있다. 잔존 길이는 6.8㎝이다.

2호는 1호에서 서북쪽으로 42m 떨어진 능선상에 위치한다. 표토 0.7m 정도 아래에서 자연 판돌(自然板石) 5매를 이용한 뚜껑돌이 노출되었다. 장축이 서남 240° 방향이며 동서 양측의 짧은 벽을 둥글게 굴착하였다. 바닥면은 길이 1.7m, 너비 0.4m 깊이 0.6m이다. 지면으로부터의 바닥까지의 깊이는 0.95m이며, 무덤 구덩이 바닥면은 너비 0.7m로 넓게 조성되었다. 바닥에는 민무늬 토기 편을 깔았으며 내부에서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3호는 2호에서 북쪽으로 4m의 간격을 두고 위치한다. 상부가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무덤 구덩이는 생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어 있는데, 장축 서남 230° 방향이며 길이 1.73m, 너비 0.6m, 깊이 0.2m이다. 바닥에는 편평한 잡석을 깔았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유물 포함층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민무늬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간 돌검, 돌살촉(石鏃),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石鑿), 삼각 돌칼송국리 문화와 밀접한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뗀석기(打製石器)를 비롯하여 가래 모양 석기(石嵩形石器) 3점, 갈판 3점, 갈돌(耉石棒) 1점, 긁개(搔器) 4점, 숫돌(砥石) 2점 등이 출토되었다.

여의동 유적의 움무덤은 구조나 유물의 성격에 있어서 초기 철기 시대의 대전 괴정동 유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움무덤을 비교해 보면 지표 아래에 타원형 움을 파고 다시 장방형 무덤 구덩이를 설치한 점, 무덤 구덩이 벽면에 깬돌(割石)을 쌓지 않고 때려 붙이는 이른바 ‘장착(張着)’ 수법을 쓴 점, 그리고 규모가 비슷한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둘째로 주목되는 것은 검은 간 토기이다. 이 토기는 괴정동 뿐만 아니라 청원 비하, 아산 남성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셋째, 두 유적이 거친무늬 거울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꼭지 거울 2면씩이 함께 출토되는 점도 동일한데, 등면 문양도 같은 계열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부채 도끼와 청동 끌은 괴정동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부여 구봉리 등에서 같은 형태의 청동 도끼가 출토되었고 청동 끌도 부여 구봉리, 대전 탄방동 등 금강 유역권에서 확인되는 유형이다. 이와 달리 2호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출토된 간 돌검과 민무늬 토기를 포함하고 있어 동일 지역에서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8년~1989년 전주 여의동 선사유적 1990 전주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