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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대한민국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2가 748·팔복동4가 1165 일원 |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2가 748·팔복동4가 1165 일원 | ||
| 성격= | | 성격=복합유적 | ||
| 키워드=[[ |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독무덤]], [[움무덤]],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돌칼]], [[홈자귀]], [[간 돌검]], [[돌창]], [[돌살촉]], [[돌끌]], [[숫돌]]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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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설명== |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2가 748·팔복동4가 1165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친환경 첨단 산업 복합 단지(3-1단계) 조성에 따라 2012~2013년에 전북문화재연구원(1구역)과 호남문화재연구원(2구역)이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황방산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구릉 최말단부와 북쪽의 만경강 사이에 위치한 해발 14m 내외의 평탄한 충적지에 분포한다. 유적의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져서 만경강의 지류인 전주천이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흘러 만경강으로 합수되어 넓은 충적지를 형성한다. 1구역에서는 [[집자리|집자리]] 5기·[[구덩이|구덩이]] 13기·[[도랑|도랑]] 5기·[[독무덤|독무덤]] 12기·[[움무덤|움무덤]] 11기, 2구역에서는 집자리 83기·구덩이 86기·[[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址)]] 10기·독무덤(甕棺墓) 3기·도랑(溝) 등이 확인되었다. | |||
2구역의 (장)방형 집자리는 13기로 평면 형태 장방형(8기)과 방형(7기)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 2구역의 (장)방형 집자리는 13기로 평면 형태 장방형(8기)과 방형(7기)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다양하게 확인되었는데 돌 두름식(圍石式)은 4기(1·1-1·39·60호), 무시설식은 7기(16·59·70~72·74·83호), 구덩식(土壙式)은 1기(56호)이다. 특히 39호의 화덕 자리는 북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집자리 바닥면을 장방형으로 판 후 바닥에 편평한 자갈돌을 깔고 벽쪽에 길고 납작한 자갈돌을 세워 축조하였다. 60호의 화덕 자리는 집자리 바닥을 파지 않고 평면 장방형으로 너비 보다 긴 자갈돌을 세우고 내부에는 일정한 두께로 점토를 깔았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 중 3기(59·70·71호)는 집자리의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형이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바닥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화덕 자리는 불에 의해 소결된 흔적만 남아 있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원형으로 추정된다. | ||
56호는 유일하게 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이며 생토층을 ‘U’자 모양으로 약하게 팠으며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 56호는 유일하게 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이며 생토층을 ‘U’자 모양으로 약하게 팠으며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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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구멍은 1·39·56·59·70호 등에서 확인된다. 39호는 2×3열로 정연하게 확인되며 59호는 남쪽 방형으로 구분되는 부분에 모서리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나머지 집자리는 정형성이 없다. 저장 구덩이는 1호 집자리 남서쪽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39호는 북서쪽 벽가, 56호는 북동쪽에 약간 치우쳐 설치되었다. 59호 집자리는 남서쪽 방형의 공간과 북동쪽 벽 가장자리와 접하여 여러 저장 구덩이가 분포한다. 특히 남쪽 방형 공간은 북쪽 바닥면과 0.1m의 높이차를 보이고 있으며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화덕 자리, 모서리 부분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특수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기둥 구멍은 1·39·56·59·70호 등에서 확인된다. 39호는 2×3열로 정연하게 확인되며 59호는 남쪽 방형으로 구분되는 부분에 모서리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나머지 집자리는 정형성이 없다. 저장 구덩이는 1호 집자리 남서쪽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39호는 북서쪽 벽가, 56호는 북동쪽에 약간 치우쳐 설치되었다. 59호 집자리는 남서쪽 방형의 공간과 북동쪽 벽 가장자리와 접하여 여러 저장 구덩이가 분포한다. 특히 남쪽 방형 공간은 북쪽 바닥면과 0.1m의 높이차를 보이고 있으며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화덕 자리, 모서리 부분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특수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
유물은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1-1·16·74·83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다. 1-1호 출토 돋을띠무늬 토기는 [[돋을띠마디토기|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이다. 16호 출토품은 대부분 편이나, 함께 출토된 바리 토기는 바닥에서 아가리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 입술(구연단)이 약간 외반된 형식이다. 74·83호에서 출토된 돋을띠무늬 토기는 무늬가 구연을 한바퀴 도는 형식이다. 83호에서는 깊은 바리 토기가 공반되었다. [[ | 유물은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1-1·16·74·83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다. 1-1호 출토 돋을띠무늬 토기는 [[돋을띠마디토기|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이다. 16호 출토품은 대부분 편이나, 함께 출토된 바리 토기는 바닥에서 아가리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 입술(구연단)이 약간 외반된 형식이다. 74·83호에서 출토된 돋을띠무늬 토기는 무늬가 구연을 한바퀴 도는 형식이다. 83호에서는 깊은 바리 토기가 공반되었다.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는 39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편이지만 잔존 상태로 보아 깊은 바리(深鉢)로 추정된다. 석기는 1·39호 집자리에서 [[배모양돌칼|배 모양 돌칼(舟形石刀)]], 60호 집자리에서 [[양날돌도끼|양날 돌도끼(蛤刃石斧)]] 편이 출토된 것을 제외하면 빈약하다. 그 외에는 토제 [[가락바퀴|가락바퀴]]와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 ||
(장)방형 집자리를 제외한 집자리는 70기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 27기, (타)원형 43기이다. 이 중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은 67기(방형 25기, 원형 42기)이고, 나머지 3기는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73호(원형)에 무시설식, 75(부정형)·77(말각 방형)호는 구덩식이 설치되었다. 유물은 73·75호에서 민무늬 토기, 77호에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 (장)방형 집자리를 제외한 집자리는 70기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 27기, (타)원형 43기이다. 이 중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은 67기(방형 25기, 원형 42기)이고, 나머지 3기는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73호(원형)에 무시설식, 75(부정형)·77(말각 방형)호는 구덩식이 설치되었다. 유물은 73·75호에서 민무늬 토기, 77호에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 ||
송국리식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에 따라 세분되지만 대체로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규모가 큰 집자리들은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말각)방형 집자리는 열을 지어 분포하지만, (타)원형 집자리는 소규모 그룹을 이루면서 분포한다. 중복 관계를 보면 방형 집자리를 원형 집자리가 파괴하고 축조되지만, 유물 간의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아 시기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 송국리식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에 따라 세분되지만 대체로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규모가 큰 집자리들은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말각)방형 집자리는 열을 지어 분포하지만, (타)원형 집자리는 소규모 그룹을 이루면서 분포한다. 중복 관계를 보면 방형 집자리를 원형 집자리가 파괴하고 축조되지만, 유물 간의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아 시기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독모양토기|독 모양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양날 돌도끼, [[돌칼|돌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간돌검|간 돌검]], [[돌창|돌창(石槍)]], [[돌살촉|돌살촉]], [[돌끌|돌끌]], [[숫돌|숫돌]], 석제·토제 가락바퀴, 토제 그물추, 흙구슬(土珠·土鈴), 불탄 곡물 등이 출토되었다. | ||
구덩이는 86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구역의 북동쪽과 북서쪽에 분포하고 북동쪽에 더 많이 집중한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등 다양하며 바닥면은 특별한 시설 없이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항아리 모양 토기, | 구덩이는 86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구역의 북동쪽과 북서쪽에 분포하고 북동쪽에 더 많이 집중한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등 다양하며 바닥면은 특별한 시설 없이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항아리 모양 토기, 저부 투공 토기(低部透孔土器), 돌살촉, 간 돌검 편,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48호는 내부에서 다량의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와 함께 불탄 점토, 숯, 불탄 돌이 확인되어 소성 유구(燒成遺構)로 추정된다. 104호는 다량의 유물이 자갈과 함께 한쪽에 치우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폐기장으로 판단된다. | ||
도랑은 남북을 가로질러 위치하는데, 원형 집자리와 중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형 집자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면 형태는 ‘U’자 혹은 'V' 자 모양이며 내부에는 기둥 구멍들이 있다. | 도랑은 남북을 가로질러 위치하는데, 원형 집자리와 중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형 집자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면 형태는 ‘U’자 혹은 'V' 자 모양이며 내부에는 기둥 구멍들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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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역 가지구에서는 독무덤 3기, 움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하였으며, 잘 남아있는 3호는 아래에 항아리 모양 토기를 세우고 그 위에 바리 토기를 거꾸로 세워서 덮은 2옹 합구식이다. 움무덤은 2기 모두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1호에서는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의 경우 무덤 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무덤 구덩이 벽에도 잔자갈을 채운 것으로 보아 나무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2구역 가지구에서는 독무덤 3기, 움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하였으며, 잘 남아있는 3호는 아래에 항아리 모양 토기를 세우고 그 위에 바리 토기를 거꾸로 세워서 덮은 2옹 합구식이다. 움무덤은 2기 모두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1호에서는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의 경우 무덤 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무덤 구덩이 벽에도 잔자갈을 채운 것으로 보아 나무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
나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구덩이 6기, 도랑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말각 방형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기둥 구멍은 1개가 확인되었다. 다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독무덤 9기, 움무덤 9기, 원삼국 시대 독무덤 2기, 움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무덤은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거나 2~3기가 군집을 이룬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한 것으로 보이며, 6호는 직립 구연호에 판판한 돌(板石)로 덮었다. 1·2·4·7~9호는 토기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껴묻거리는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은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구조를 알 수 없는데 바닥에는 강돌(川石)을 깔았다. 1~4호, 7~9호는 강돌을 전면에 고르게 깔았으며, 5호와 6호는 한쪽에만 강돌을 깔았다. 껴묻거리는 9호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 나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구덩이 6기, 도랑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말각 방형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기둥 구멍은 1개가 확인되었다. 다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독무덤 9기, 움무덤 9기, 원삼국 시대 독무덤 2기, 움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무덤은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거나 2~3기가 군집을 이룬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한 것으로 보이며, 6호는 직립 구연호에 판판한 돌(板石)로 덮었다. 1·2·4·7~9호는 토기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껴묻거리는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은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구조를 알 수 없는데 바닥에는 강돌(川石)을 깔았다. 1~4호, 7~9호는 강돌을 전면에 고르게 깔았으며, 5호와 6호는 한쪽에만 강돌을 깔았다. 껴묻거리는 9호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이 출토되었을 뿐 나머지 움무덤에서는 껴묻거리가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라지구에서는 도랑 2기가 조사되었으며, 마지구에서는 집자리 3기와 구덩이 7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2기는 원형이고 1기는 말각 방형이다. 저습지에서도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와 구덩이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말각 방형이며 도랑에서는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 ||
탄화 목재를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고려할 때, 이른 시기의 장방형 내지 방형 집자리는 기원전 1300~1000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고, 송국리식 집자리는 연대 측정치가 2500~2400 BP에 집중되어 대체로 기원전 800~40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전북 지역의 청동기 시대 단일 유적으로는 집자리가 가장 많은 대규모 취락 유적이면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았던 취락 유적이다. 아울러 유적에서는 집자리 외에 무덤, 저습지, 도랑, 저습지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함께 확인되어 집자리의 공간 배치와 구조, 나아가 마을 구조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탄화 목재를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고려할 때, 이른 시기의 장방형 내지 방형 집자리는 기원전 1300~1000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고, 송국리식 집자리는 연대 측정치가 2500~2400 BP에 집중되어 대체로 기원전 800~40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전북 지역의 청동기 시대 단일 유적으로는 집자리가 가장 많은 대규모 취락 유적이면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았던 취락 유적이다. 아울러 유적에서는 집자리 외에 무덤, 저습지, 도랑, 저습지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함께 확인되어 집자리의 공간 배치와 구조, 나아가 마을 구조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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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전주_여의동2가_팔복동4가_유적_1-1호_집자리_출토_토기.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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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전주_여의동2가_팔복동4가_유적_78호_집자리.jpg | |||
File:전주_여의동2가_팔복동4가_유적_86호_집자리_출토_토기.jpg | |||
File:전주_여의동2가_팔복동4가_유적_유구_배치도.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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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
{|class="listtable" | |||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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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2년~2013년 || 전주 동산동 유적Ⅰ·Ⅱ | 전주 동산동 청동기시대 취락 || 2015 || 전북문화재연구원, 호남문화재연구원 | |||
|} | |||
==참고문헌== | |||
* 전북문화재연구원. (2015). <i>전주 동산동 청동기시대 취락</i>. https://www.riss.kr/link?id=M16851310 | |||
* 호남문화재연구원. (2015). <i>전주 동산동 유적Ⅰ·Ⅱ</i>. https://www.riss.kr/link?id=M14152931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전주 여의동2가·팔복동4가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2가 748·팔복동4가 116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독무덤, 움무덤,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돋을띠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돌칼, 홈자귀, 간 돌검, 돌창, 돌살촉, 돌끌, 숫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규정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2가 748·팔복동4가 1165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친환경 첨단 산업 복합 단지(3-1단계) 조성에 따라 2012~2013년에 전북문화재연구원(1구역)과 호남문화재연구원(2구역)이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황방산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구릉 최말단부와 북쪽의 만경강 사이에 위치한 해발 14m 내외의 평탄한 충적지에 분포한다. 유적의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져서 만경강의 지류인 전주천이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흘러 만경강으로 합수되어 넓은 충적지를 형성한다. 1구역에서는 집자리 5기·구덩이 13기·도랑 5기·독무덤 12기·움무덤 11기, 2구역에서는 집자리 83기·구덩이 86기·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址) 10기·독무덤(甕棺墓) 3기·도랑(溝) 등이 확인되었다.
2구역의 (장)방형 집자리는 13기로 평면 형태 장방형(8기)과 방형(7기)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다양하게 확인되었는데 돌 두름식(圍石式)은 4기(1·1-1·39·60호), 무시설식은 7기(16·59·70~72·74·83호), 구덩식(土壙式)은 1기(56호)이다. 특히 39호의 화덕 자리는 북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집자리 바닥면을 장방형으로 판 후 바닥에 편평한 자갈돌을 깔고 벽쪽에 길고 납작한 자갈돌을 세워 축조하였다. 60호의 화덕 자리는 집자리 바닥을 파지 않고 평면 장방형으로 너비 보다 긴 자갈돌을 세우고 내부에는 일정한 두께로 점토를 깔았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 중 3기(59·70·71호)는 집자리의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형이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바닥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화덕 자리는 불에 의해 소결된 흔적만 남아 있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대부분 원형으로 추정된다.
56호는 유일하게 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집자리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화덕 자리는 (타)원형이며 생토층을 ‘U’자 모양으로 약하게 팠으며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둥 구멍은 1·39·56·59·70호 등에서 확인된다. 39호는 2×3열로 정연하게 확인되며 59호는 남쪽 방형으로 구분되는 부분에 모서리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나머지 집자리는 정형성이 없다. 저장 구덩이는 1호 집자리 남서쪽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39호는 북서쪽 벽가, 56호는 북동쪽에 약간 치우쳐 설치되었다. 59호 집자리는 남서쪽 방형의 공간과 북동쪽 벽 가장자리와 접하여 여러 저장 구덩이가 분포한다. 특히 남쪽 방형 공간은 북쪽 바닥면과 0.1m의 높이차를 보이고 있으며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화덕 자리, 모서리 부분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특수공간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1-1·16·74·83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다. 1-1호 출토 돋을띠무늬 토기는 돋을띠 마디 토기(節狀突帶文土器)이다. 16호 출토품은 대부분 편이나, 함께 출토된 바리 토기는 바닥에서 아가리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 입술(구연단)이 약간 외반된 형식이다. 74·83호에서 출토된 돋을띠무늬 토기는 무늬가 구연을 한바퀴 도는 형식이다. 83호에서는 깊은 바리 토기가 공반되었다.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는 39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편이지만 잔존 상태로 보아 깊은 바리(深鉢)로 추정된다. 석기는 1·39호 집자리에서 배 모양 돌칼(舟形石刀), 60호 집자리에서 양날 돌도끼(蛤刃石斧) 편이 출토된 것을 제외하면 빈약하다. 그 외에는 토제 가락바퀴와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를 제외한 집자리는 70기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 27기, (타)원형 43기이다. 이 중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은 67기(방형 25기, 원형 42기)이고, 나머지 3기는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73호(원형)에 무시설식, 75(부정형)·77(말각 방형)호는 구덩식이 설치되었다. 유물은 73·75호에서 민무늬 토기, 77호에서는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의 배치에 따라 세분되지만 대체로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형식들이다. 규모가 큰 집자리들은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대칭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말각)방형 집자리는 열을 지어 분포하지만, (타)원형 집자리는 소규모 그룹을 이루면서 분포한다. 중복 관계를 보면 방형 집자리를 원형 집자리가 파괴하고 축조되지만, 유물 간의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아 시기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바리 토기, 양날 돌도끼,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간 돌검, 돌창(石槍), 돌살촉, 돌끌, 숫돌, 석제·토제 가락바퀴, 토제 그물추, 흙구슬(土珠·土鈴), 불탄 곡물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86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구역의 북동쪽과 북서쪽에 분포하고 북동쪽에 더 많이 집중한다.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등 다양하며 바닥면은 특별한 시설 없이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항아리, 항아리 모양 토기, 저부 투공 토기(低部透孔土器), 돌살촉, 간 돌검 편,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48호는 내부에서 다량의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와 함께 불탄 점토, 숯, 불탄 돌이 확인되어 소성 유구(燒成遺構)로 추정된다. 104호는 다량의 유물이 자갈과 함께 한쪽에 치우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폐기장으로 판단된다.
도랑은 남북을 가로질러 위치하는데, 원형 집자리와 중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형 집자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면 형태는 ‘U’자 혹은 'V' 자 모양이며 내부에는 기둥 구멍들이 있다.
기둥 건물터는 8기로 모두 집자리와 구덩이 주변에서 확인되는데 유적 중앙에서 북동쪽에 2기, 북서쪽에 6기가 분포한다. 북서쪽에 위치한 3~7호는 서로 중첩되어 일정한 시기 동안 반복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주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다. 생토층인 암황갈색 점질토를 파고 축조하였으며 기둥 구멍에 흙을 채우고 상면에 잔자갈을 채워 넣었다. 기둥 구멍 간 거리는 일정하지 않은 것과 칸 수의 구분이 애매한 것 등 다양하다.
독무덤은 조사 지역의 북동쪽에서 2기, 서쪽 중간 부분에서 1기 등 총 3기가 확인되었다. 북동쪽에서 확인된 2기(1·2호)는 2점의 민무늬 항아리를 눕혀서 매장하였으며, 상단부는 경작으로 인해 결실되었다. 서쪽 중간 부분에서 조사된 1기(3호)는 세워서 안치하였는데 상부는 잔존하지 않아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껴묻거리(副葬品)는 출토되지 않았다.
저습지는 조사 지역의 동서를 가로질러서 약간 남서쪽으로 휘어나가는 구하도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가 저습지를 경계로 하여 그 북쪽에 위치한다. 저습지 깊이는 약 2.5m이며 토층은 ‘U’자 모양으로 모래와 자갈이 섞인 바닥층 위에 암회색의 뻘층, 암갈색 뻘층, 적갈색 점질토의 순으로 쌓였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와 절구 공이 등이 수습되었다.
2구역 가지구에서는 독무덤 3기, 움무덤 2기가 조사되었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하였으며, 잘 남아있는 3호는 아래에 항아리 모양 토기를 세우고 그 위에 바리 토기를 거꾸로 세워서 덮은 2옹 합구식이다. 움무덤은 2기 모두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1호에서는 자루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의 경우 무덤 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다. 무덤 구덩이 벽에도 잔자갈을 채운 것으로 보아 나무 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구덩이 6기, 도랑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말각 방형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기둥 구멍은 1개가 확인되었다. 다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독무덤 9기, 움무덤 9기, 원삼국 시대 독무덤 2기, 움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무덤은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거나 2~3기가 군집을 이룬다. 독무덤은 모두 세워서 안치한 것으로 보이며, 6호는 직립 구연호에 판판한 돌(板石)로 덮었다. 1·2·4·7~9호는 토기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껴묻거리는 출토되지 않았다. 움무덤은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구조를 알 수 없는데 바닥에는 강돌(川石)을 깔았다. 1~4호, 7~9호는 강돌을 전면에 고르게 깔았으며, 5호와 6호는 한쪽에만 강돌을 깔았다. 껴묻거리는 9호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이 출토되었을 뿐 나머지 움무덤에서는 껴묻거리가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라지구에서는 도랑 2기가 조사되었으며, 마지구에서는 집자리 3기와 구덩이 7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2기는 원형이고 1기는 말각 방형이다. 저습지에서도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와 구덩이 1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 말각 방형이며 도랑에서는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탄화 목재를 대상으로 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고려할 때, 이른 시기의 장방형 내지 방형 집자리는 기원전 1300~1000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고, 송국리식 집자리는 연대 측정치가 2500~2400 BP에 집중되어 대체로 기원전 800~40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전북 지역의 청동기 시대 단일 유적으로는 집자리가 가장 많은 대규모 취락 유적이면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았던 취락 유적이다. 아울러 유적에서는 집자리 외에 무덤, 저습지, 도랑, 저습지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함께 확인되어 집자리의 공간 배치와 구조, 나아가 마을 구조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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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12년~2013년 | 전주 동산동 청동기시대 취락 | 2015 | 전북문화재연구원, 호남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전북문화재연구원. (2015). 전주 동산동 청동기시대 취락. https://www.riss.kr/link?id=M16851310
- 호남문화재연구원. (2015). 전주 동산동 유적Ⅰ·Ⅱ. https://www.riss.kr/link?id=M14152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