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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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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남대학교박물관. (2002). <i>천안 쌍용동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588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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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쌍용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천안 쌍용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1289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현숙



설명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1289 일원에 위치한다. 천안 쌍용동 택지 개발 부지로 1996년에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8기와 통일 신라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봉서산(해발 158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가지 능선의 구릉상에 입지하며 서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곳에 불당동 유적이 있다.

집자리들은 모두 동일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지만 최소 150m 이상 떨어져 각기 소단위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또한, 3지구의 2·3호 집자리는 유적에서 유일하게 중복 관계를 보이고 있어 8기의 집자리가 모두 동 시기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집자리는 두 단계로 구분되고 있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0세기 후반~9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Ⅰ단계는 평면 세장방형이며 구덩식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이 있다. 유물은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붉은 간 토기 등과 반달 돌칼이 공반된다.

기원전 8~5세기로 추정되는 Ⅱ단계는 대부분 평면 말각 (장)방형으로 전형적인 송국리식 집자리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비슷한 비율로 조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쌍용동 유적은 인근의 백석동, 불당동, 두정동 유적과 대비될 수 있는 집자리와 업성동, 대흥동 유적과 같은 늦은 시기의 집자리가 함께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 집자리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