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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쌍송리·석교리 유적 | |||
| 이칭별칭=화성 쌍송리·석교리 유적, 화성 쌍송리 유적 | | 이칭별칭=화성 쌍송리·석교리 유적, 화성 쌍송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 544-9·석교리 452-10 일원 | |||
| 성격=복합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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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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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집자리 구조 및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0~9세기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상한 연대와 하한 연대의 폭을 넓게 보면 기원전 11~8세기로 파악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입지와 규모, 구조, 집자리와의 관계 등으로 보아 의례 공간(儀禮空間)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교되는 유적으로는 [[덧띠토기문화|덧띠 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를 표지로 하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부천고강동유적|부천 고강동]],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이 있다. 세 유적 모두 구릉의 정상부를 에워싼 형태이며 규모를 지름으로 비교하면, 쌍송리·석교리는 35m, 고강동은 30m, 반제리는 38m로 비교적 소형에 해당한다. 또한 환구 안쪽에 거주용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공통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환구들은 내부 공간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고강동에는 돌무지 유구(積石遺構)가, 반제리에는 자연 암괴(巖塊)가 배치된 반면에 쌍송리·석교리 환구는 기둥 구멍이 여러 개 있어 나무 기둥을 세웠거나 지상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덧띠 토기 단계의 의례용 환구가 다수 발굴된 양상을 고려한다면,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것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최근 쌍송리·석교리 유적과 같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환구가 [[구리토평동유적|구리 토평동]], [[평택용이동유적|평택 용이동 유적]]에서도 발굴되어 청동기 시대 환구와 의례 양상을 통시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집자리 구조 및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0~9세기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상한 연대와 하한 연대의 폭을 넓게 보면 기원전 11~8세기로 파악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입지와 규모, 구조, 집자리와의 관계 등으로 보아 의례 공간(儀禮空間)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교되는 유적으로는 [[덧띠토기문화|덧띠 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를 표지로 하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부천고강동유적|부천 고강동]],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이 있다. 세 유적 모두 구릉의 정상부를 에워싼 형태이며 규모를 지름으로 비교하면, 쌍송리·석교리는 35m, 고강동은 30m, 반제리는 38m로 비교적 소형에 해당한다. 또한 환구 안쪽에 거주용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공통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환구들은 내부 공간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고강동에는 돌무지 유구(積石遺構)가, 반제리에는 자연 암괴(巖塊)가 배치된 반면에 쌍송리·석교리 환구는 기둥 구멍이 여러 개 있어 나무 기둥을 세웠거나 지상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덧띠 토기 단계의 의례용 환구가 다수 발굴된 양상을 고려한다면,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것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최근 쌍송리·석교리 유적과 같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환구가 [[구리토평동유적|구리 토평동]], [[평택용이동유적|평택 용이동 유적]]에서도 발굴되어 청동기 시대 환구와 의례 양상을 통시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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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저널== | ==한국고고학저널== |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6&d_idx=214 청동기시대 최고最古의 의례용 환호가 확인된 마을유적]", <i>2010 한국고고학저널</i>. |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6&d_idx=214 청동기시대 최고最古의 의례용 환호가 확인된 마을유적]", <i>2010 한국고고학저널</i>. | ||
==참고문헌== | |||
* 기호문화재연구원. (2012). <i>화성 쌍송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6280514 | |||
* 김권구. (2012).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고지성 환구에 관한 고찰. <i>한국상고사학보, 76</i>, 51–7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64743 | |||
* 이형원. (2018). 삼한 소도의 공간 구성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중부지역의 환구유적을 중심으로. <i>백제학보, 24</i>, 239–265. https://www.riss.kr/link?id=A105432306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화성 쌍송리·석교리 유적, 화성 쌍송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 544-9·석교리 452-10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환구, 덧띠 토기 문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형원 |
설명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 544-9·석교리 452-10 일원에 위치한다. 2009~2010년에 제2 서해안 고속도로(평택-시흥) 건설 공사 구간(17·20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37기와 환구(環溝) 1기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집자리 6기, 무덤 47기, 구덩이 35기, 소성유구(燒成遺構) 9기, 도랑(溝) 2기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서해안에 위치한 해발 70.3m의 구릉지에 해당하며 인근 1.5km 이내에는 해발 6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만 분포하고 있다. 화성방조제가 만들어 지기 전에는 유적 인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갯벌이 형성된 지역이며, 동쪽으로 1.1km 거리에는 남양천이 남서로 흐르고 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해발 45~65m 높이의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걸쳐 있으며, 환구는 가장 높은 해발 70m의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집자리는 환구를 중심에 놓고 북쪽과 남쪽에 모여 있으며, 두 집자리 군집(群集)은 90m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 많으며 방형도 일부 있다. 규모가 가장 큰 26호 세장방형 집자리는 길이 26.34m, 너비 4.3m, 최대 깊이 0.46m, 면적은 113.26㎡이다. 방형 집자리인 1호는 길이 3.55m, 잔존 너비 2.96m, 최대 깊이 0.76m, 잔존 면적 10.5㎡로 작은 규모이다. 두 집자리는 면적으로 보면 거의 10배의 차이가 난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전체적으로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장축 방향의 중앙을 따라 바닥을 원형으로 약간 판 구덩식 화덕 자리가 배치된 것이 많으며, 일부는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式爐址)도 있다. 화덕 자리의 수는 장방형 집자리는 1~2개가 많으며, 규모가 큰 세장방형의 집자리는 3~5개가 확인되었다. 장방형 집자리의 화덕 자리는 세부적으로 보면, 대체로 짧은 벽(短璧) 쪽에 치우쳐서 1기만 있는 것이 많으며, 중앙과 짧은 벽 쪽에 2기가 있는 것도 있다. 저장 구덩이는 장방형 집자리의 경우 화덕이 있는 곳의 반대쪽 짧은 벽에 위치하는 것이 많으며, 세장방형 집자리의 경우는 긴 벽長璧과 짧은 벽에 복수로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저장 구덩이는 곡물 등 식료품을 담은 토기를 안치安置하는 형태가 많다. 이 밖에 성격이 분명하지 않은 구덩이도 일부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로는 토기와 석기가 있다. 토기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대부분이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다리 토기(臺附土器)가 있다. 이 외에 간 토기와 사발모양 토기(盌形土器)와 뚜껑도 있다. 토기의 아가리에 있는 무늬는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口脣刻目), 골아가리 구멍 짧은 빗금무늬(口脣刻目孔列短斜線文), 구멍 ‘X’선 무늬(孔列X線文), 골아가리 ‘X’선 무늬(口脣刻目X線文), 골아가리 비뚠 문살무늬(口脣刻目斜格子文), 짧은 빗금 구멍무늬(短斜線孔列文) 등 다양하다. 토기 가운데에는 바닥에 구멍을 뚫은 것도 있다. 석기는 간 돌검, 돌창(石槍), 간 돌살촉,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끌(石鑿), 별도끼(環狀石斧), 숫돌(砥石) 등이 있다.
환구(環溝)는 마을을 감싸는 환호(環濠)와 다르게 내부에 집자리가 없는, 도랑으로 구획한 시설이며 환구의 성격에 대해서 의례 공간으로 추정하는 연구들이 있다.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조사 지역 중앙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주변을 조망하기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구릉의 정상부를 감싸며, 단면 형태는 완만한 ‘U’자형이지만, 암반을 굴착하여 만들어서 벽면과 바닥 처리의 정형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전체 규모는 지름이 약 35m이며, 둘레 약 90m, 최대 너비 4m에 깊이는 0.8m 정도이다. 환구의 안쪽 공간에 해당하는 구릉 정상부에서 기둥 구멍으로 보이는 원형 구덩이가 8개 확인되었는데, 정형성이 보이지 않는다. 발굴 보고서에는 제의 도구를 나무 기둥에 매달아 의례를 진행하였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환구에서는 골아가리 무늬와 구멍무늬를 함께 새긴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를 비롯해서 굽다리 토기(臺附土器), 조갯날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 등이 나왔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집자리 구조 및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0~9세기가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상한 연대와 하한 연대의 폭을 넓게 보면 기원전 11~8세기로 파악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입지와 규모, 구조, 집자리와의 관계 등으로 보아 의례 공간(儀禮空間)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비교되는 유적으로는 덧띠 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를 표지로 하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부천 고강동, 안성 반제리 유적이 있다. 세 유적 모두 구릉의 정상부를 에워싼 형태이며 규모를 지름으로 비교하면, 쌍송리·석교리는 35m, 고강동은 30m, 반제리는 38m로 비교적 소형에 해당한다. 또한 환구 안쪽에 거주용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공통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환구들은 내부 공간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고강동에는 돌무지 유구(積石遺構)가, 반제리에는 자연 암괴(巖塊)가 배치된 반면에 쌍송리·석교리 환구는 기둥 구멍이 여러 개 있어 나무 기둥을 세웠거나 지상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덧띠 토기 단계의 의례용 환구가 다수 발굴된 양상을 고려한다면, 쌍송리·석교리 유적의 환구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것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최근 쌍송리·석교리 유적과 같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환구가 구리 토평동, 평택 용이동 유적에서도 발굴되어 청동기 시대 환구와 의례 양상을 통시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지
한국고고학저널
- "청동기시대 최고最古의 의례용 환호가 확인된 마을유적", 2010 한국고고학저널.
참고문헌
- 기호문화재연구원. (2012). 화성 쌍송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6280514
- 김권구. (2012).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고지성 환구에 관한 고찰. 한국상고사학보, 76, 51–7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64743
- 이형원. (2018). 삼한 소도의 공간 구성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중부지역의 환구유적을 중심으로. 백제학보, 24, 239–265. https://www.riss.kr/link?id=A105432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