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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리 유적은 51기의 송국리식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돌무지 유구들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대규모 취락 유적이다. 집자리군은 단독으로 조성되었으며 중복의 예도 적어, 주거의 연속성 내지 주거군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집자리군에 인접하면서도 구별되게 위치한 고인돌군은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3~4열을 맞추어 무덤방이 들어서 있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무덤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근의 고인돌군과 다르게 덮개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덤방이 작은 돌널형 무덤방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신풍리 유적은 51기의 송국리식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돌무지 유구들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대규모 취락 유적이다. 집자리군은 단독으로 조성되었으며 중복의 예도 적어, 주거의 연속성 내지 주거군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집자리군에 인접하면서도 구별되게 위치한 고인돌군은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3~4열을 맞추어 무덤방이 들어서 있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무덤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근의 고인돌군과 다르게 덮개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덤방이 작은 돌널형 무덤방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5). <i>장흥 신풍유적Ⅰ</i>.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6). <i>장흥 신풍유적Ⅱ</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3 기준 최신판


신풍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장흥 신풍리 유적, 장흥 신풍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신풍리 31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승근



설명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신풍리 310 일원에 위치한다. 탐진 다목적댐 건설에 따라 2001~2003년까지 2차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 34기, 집자리 51기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군은 가장 북서쪽에 위치하며 수계상 탐진강 본류의 서쪽에서 흐르는 유치천 주변에 자리한다. 지형상 소규모 선상지의 동쪽 말단 사변부에 속하며 동쪽에 인접해 마정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고 영암과 장흥을 이어주는 국도 23호선이 유적의 남쪽을 동-서로 가르며 지나고 있다.

고인돌 덮개돌은 총 6기로 무덤방의 수에 비해 덮개돌은 그 숫자가 적다. 1·2·4·25호 덮개돌은 무덤방 위에 놓여져 있었으며 나머지는 주변에 흩어져 있다. 상석의 장축은 묘실의 장축과 대체로 일치하는 북서-남동 방향이다. 덮개돌의 무게는 1호 고인돌이 8톤에 이르며 2호 고인돌은 1.5톤, 나머지 고인돌은 모두 0.1~0.5톤 정도이다.

받침돌은 가장 큰 덮개돌을 가진 1호에서 유일하게 확인되었다. 4개의 받침돌이 각각 덮개돌의 네 모서리를 받치고 있는데 덮개돌의 남쪽에 놓여진 2개의 받침돌은 방형으로 각진 깬돌이 사용되었으며 북쪽 2개는 원형의 깬돌이 놓여져 있다. 뚜껑돌은 돌널형에 속하는 31호 무덤방이 장방형의 납작한 판돌 1매로 무덤방을 모두 덮고 있다.

묘역 시설은 무덤방과 다소 거리를 두고 1매의 자연석을 1단으로 눕히거나 세우는 방법으로 연이어 무덤방 주변을 방형으로 돌리는 형태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무덤방은 1·9·10·11·25호인데 가장 잘 남아 있는 10·11호 무덤방의 묘역 일부는 상호 중첩된 상태이고, 1·9·25호 무덤방은 일부분에만 묘역석이 남아 있었다. 이중 10호와 11호 무덤방은 묘역과 무덤방 사이가 비어있는 상태인 반면, 1·9·25호 무덤방과 묘역과 무덤방 사이에 작은 깬돌들이 채워져 있다. 또한, 10호 묘역의 일부가 11호 묘역을 훼손하고 설치된 것을 통해 무덤방 축조 시기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소형의 무덤방을 판돌을 이용해 조성한 후, 무덤방 주변에 납작한 판돌이나 자연석을 이용해 원형 또는 방형으로 돌을 깔거나 돌을 채워 넣은 후 주변을 돌아가며 긴 판돌이나 자연석으로 외곽을 마무리한 형태이다.

무덤방은 총 34기가 확인되었는데 돌덧널형은 23기, 돌널형은 8기, 돌돌림형은 3기이다. 무덤방의 장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으로 대별된다. 전자는 주로 돌덧널형 무덤방이, 후자에는 돌널형 무덤방이 해당하며 예외적으로 34호 돌덧널형 무덤방은 동서 방향에 가까운 장축을 두고 있다. 무덤방의 바닥 처리는 깬돌이나 자연돌을 바닥 전면에 조성한 것, 납작한 자연돌 3~4매를 묘실 방향과 직교되게 바닥에 놓는 것,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 판돌 1~2개 이용하여 조성한 것 등 다양하다.

무덤방 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완형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자루 간 돌검 1점을 비롯해 슴베 간 돌검 2점, 간 돌검 봉부 편, 슴베 돌살촉 5점, 돌칼 2점, 돌끌 1점, 토제 그물추 1점이 있다. 무덤방 주변에서는 묘역을 돌린 11호 무덤방과 묘역 사이에서 돌칼 1점, 13·29호 무덤방 주변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집자리군에서는 집자리 51기와 함께 구덩이, 적석 등이 함께 조사되었다. 집자리군은 대체로 산 사면부와 평탄지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모두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이다. 대부분 모래 자갈층에 축조된 관계로 정원형이나 정방형이 아니라 벽선이 다소 틀어진 경우가 많다. 집자리 중 중복된 경우는 15호 방형 집자리 와 16호 원형 집자리가 유일하다. 내부 시설로는 중앙의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을 비롯해 벽 도랑, 저장 구덩이, 출입 시설로 판단되는 방형의 돌출부, 벽가에 인접한 용도 불명의 소형 타원형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방형 집자리 11호와 36호에서 다른 집자리에서 보이지 않은 다량의 석재 편과 미완성 석기들이 출토되었으며, 6호 집자리 타원형 구덩이 상면에서는 적석과 불탄 흙,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출입 시설로 판단되는 것은 원형 14호 집자리에서 보인다. 북서쪽 벽 일부에 장방형의 돌출부로 집자리 상면에서 0.2m 정도 단을 이루고 있다. 돌출부는 길이 2m, 너비 1m의 장방형으로 집자리 상면 바닥과 약 0.15m 높이 차이를 보인다. 내부에서는 작은 기둥 구멍 2개만 확인되었다. 돌출부와 집자리 벽이 만나는 부분은 가마의 벽처럼 소결되어 단단하였다. 출입구로 판단되는 장방형의 돌출부는 집자리의 장축 방향과 나란하지 않고 집자리의 북서쪽에 해당하는 벽에 만들어졌다. 신풍 14호 집자리와 같이 일정한 형태로 집자리 벽면 바깥쪽으로 돌출된다거나, 벽면 한 쪽에 기둥 구멍이 마주보며 설치된다거나, 또는 집자리 내부에서 바닥면을 다진 상태가 ‘凸’자 모양으로 돌출된 경우를 모두 출입구로 추정한 바 있다. 저장 시설로 추정되는 구덩이는 3호 집자리의 서쪽벽에 잇대어 길이 1.5m, 너비 0.8m의 작은 장방형으로 확인되었다. 이 구덩이의 바닥 면 높이와 주거기 상면의 높이 차이가 거의 없게 설치되어 집자리와 관련된 저장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 시설은 14호 집자리에서 확인되며, 평면상에서 돌출되어 축조되었다. 이곳에서는 일부 토기 편이 수습되어 집자리 내의 선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 방형, 말각 방형, 장방형 등으로 구분된다. 장방형인 15호의 집자리는 처음부터 장방형을 가진 집자리라고 하기보다는 방형 집자리의 증축 또는 개축에 의한 평면의 변화로 확인된다. 원형 집자리는 대형인 14호 집자리를 중심을 남쪽에 인접하여 밀집된 양상을 보이나 대부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분포한다. 타원형 집자리는 총 4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조사 지역의 동쪽에 해당하며 고인돌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밀집한다. 방형 집자리는 총 12기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집자리가 밀집된 14호 집자리 주변에 자리한다. 또한, 폐기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집자리는 3기(1·3·14호)로,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신풍리 유적은 51기의 송국리식 집자리와 구덩이, 돌무지 유구들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대규모 취락 유적이다. 집자리군은 단독으로 조성되었으며 중복의 예도 적어, 주거의 연속성 내지 주거군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다. 또한, 집자리군에 인접하면서도 구별되게 위치한 고인돌군은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3~4열을 맞추어 무덤방이 들어서 있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무덤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근의 고인돌군과 다르게 덮개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덤방이 작은 돌널형 무덤방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5). 장흥 신풍유적Ⅰ.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6). 장흥 신풍유적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