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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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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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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리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생활 유구는 그 동안 조사 예가 거의 없었던 공주 북서부지역 청동기 시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신영리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생활 유구는 그 동안 조사 예가 거의 없었던 공주 북서부지역 청동기 시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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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공주_신영리_유적_2호_집자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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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05). <i>공주 신영리 여드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070571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신영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공주 신영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604-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저장 구덩이, 구덩이, 기둥 건물터, 도랑, 소성 유구,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규진



설명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 604-7 일원에 위치한다. 당진-대전 고속 도로 건설 공사에 따라 2003년 발굴 조사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4기, 저장 구덩이 39기, 구덩이 8기, 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1기, 도랑(溝) 2기, 소성 유구(燒性遺構) 1기, 기둥 열을 비롯하여 원삼국 시대 움무덤 및 조선 시대 움무덤이 확인되었다. 유적이 자리한 구릉의 동편에는 유구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서편에는 너비 50m 가량의 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입지한 구릉은 사면의 경사가 심하고 지형의 기복이 심한편으로, 일반적인 청동기 시대 취락(聚落)들과 비교하여 지형 조건이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집자리는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갖춘 송국리식으로 서사면 중단부에 입지한다. 기존의 송국리식 집자리와 달리 매우 가파른 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저장 구덩이는 3개의 군(群)으로 공간을 달리하여 배치되었다. 북쪽 평탄지 및 남쪽 사면부에 설치된 저장 구덩이 군은 열을 지어 분포하는데 반해 나머지 1개 군은 군집(群集)된 양상을 보인다.

구덩이는 조사 지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내부에서 노지와 유사한 불탄 면이 목탄 및 토기 편과 함께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집자리와 저장 구덩이, 구덩이에서는 송국리식 토기를 비롯하여 돌칼(石刀) 편과 간 돌검 편 등이 출토되었다.

신영리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생활 유구는 그 동안 조사 예가 거의 없었던 공주 북서부지역 청동기 시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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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