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644: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64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64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2번째 줄: 22번째 줄:


집자리는 2~3기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구릉의 능선상에는 단독으로 조성된 예가 있다. 그 중 초대형인 3호는 구릉 가장 높은 곳의 중앙에 입지하며, 내부에서 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공공집회소|공공 집회소(公共集會所)]]와 같은 기능으로 추정할 수 있다. 4호는 다량의 석기와 숫돌(砥石)류가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복수(複數)의 화덕 자리를 갖춘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써 확대 가족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소규모 마을이며,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집자리는 2~3기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구릉의 능선상에는 단독으로 조성된 예가 있다. 그 중 초대형인 3호는 구릉 가장 높은 곳의 중앙에 입지하며, 내부에서 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공공집회소|공공 집회소(公共集會所)]]와 같은 기능으로 추정할 수 있다. 4호는 다량의 석기와 숫돌(砥石)류가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복수(複數)의 화덕 자리를 갖춘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써 확대 가족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소규모 마을이며,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대구_송현동_유적_4호_집자리.jpg
</gallery>


==조사정보==
==조사정보==
29번째 줄: 34번째 줄:
| 발굴조사 || 1997년 || 대구 송현동 선사유적 || 2002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 발굴조사 || 1997년 || 대구 송현동 선사유적 || 2002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
|}
==참고문헌==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2002). <i>대구 송현동 선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951700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송현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송현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 906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식 화덕 자리, 공공 집회소, 겹아가리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대롱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안재호



설명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 906에 위치한다. 아파트 신축에 앞서 1997년 조사하여, 집자리 14기 및 고려~조선 시대의 무덤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해발 76m의 낮은 구릉지에 입지하며, 남서쪽 2.6㎞ 내외의 거리에 진천동, 상인동, 월성동 등의 고인돌선돌(立石), 집자리 유적이 분포한다.

집자리는 유실되어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않다. 형태는 방형 2기, 장방형 2기, 세장방형 3기로, 2호는 길이 6m, 너비 3.7m, 깊이 0.2m, 3호는 길이 10.3m, 너비 8.1m, 깊이 0.35m이다. 바닥 면적이 80㎡ 이상의 초대형(3호) 1기와 50㎡ 전후의 대형 3기, 25㎡ 전후의 중형 2기, 20㎡ 이하의 소형으로 분류된다. 화덕 자리는 모두 구덩식으로 장방형·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2~3기가 설치된 것이 일반적이다. 기둥 구멍은 뚜렷한 정형성이 보이지 않고 불규칙하며, 소수에 불과하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11호에서 골아가리(口脣刻目)가 새겨진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1점과 저부 편만이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장방형, 물고기 모양(魚形) 반달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2호에서는 양 끝의 단면에 ‘ㄴ’자 모양의 구멍을 낸 대롱옥(管玉) 1점이 출토되었다. 유사한 형태의 대롱옥은 같은 시기인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2~3기가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구릉의 능선상에는 단독으로 조성된 예가 있다. 그 중 초대형인 3호는 구릉 가장 높은 곳의 중앙에 입지하며, 내부에서 화덕 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공공 집회소(公共集會所)와 같은 기능으로 추정할 수 있다. 4호는 다량의 석기와 숫돌(砥石)류가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는 복수(複數)의 화덕 자리를 갖춘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써 확대 가족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소규모 마을이며, 시기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7년 대구 송현동 선사유적 2002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