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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870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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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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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870 일원에 위치한다. 아파트 신축 공사에 앞서 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건지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야트막한 구릉 말단부인 해발 35~36m 내외의 구릉 정상부에 자리하며, 모두 6기의 집자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870 일원에 위치한다. 아파트 신축 공사에 앞서 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건지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야트막한 구릉 말단부인 해발 35~36m 내외의 구릉 정상부에 자리하며, 모두 6기의 [[집자리|집자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 6기는 모두 원형이며 이 가운데 5기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고 1기(6호)는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원형 집자리이다. 1~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된 형식이다.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은 모두 동서 방향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집자리 면적은 9~21㎡로 다양하며, 3기의 집자리는 바닥면을 점토로 다졌으나 나머지 3기는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호 집자리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6기는 모두 원형이며 이 가운데 5기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고 1기(6호)는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원형 집자리이다. 1~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된 형식이다.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은 모두 동서 방향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집자리 면적은 9~21㎡로 다양하며, 3기의 집자리는 바닥면을 점토로 다졌으나 나머지 3기는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호 집자리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는 [[호형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 조합상을 보여준다. 다만, 순수 원형 집자리에서는 미완성 석기와 함께 [[곧은목항아리모양토기|곧은 목(直立口緣)을 가진 항아리 모양 토기]]가 조각으로 출토되었다. 보통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토기이지만,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도 종종 출토되는 기종이다.
집자리에서는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 조합상을 보여준다. 다만, 순수 원형 집자리에서는 미완성 석기와 함께 곧은 목(直立口緣)을 가진 항아리 모양 토기가 조각으로 출토되었다. 보통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토기이지만,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도 종종 출토되는 기종이다.


집자리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가 측정되었는데 2430±50 BP(2호), 2480±50 BP(3호), 2310±60 BP(4호)로 보정 연대는 기원전 7~5세기에 해당된다. 구릉 정상부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열을 지어 분포하고,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이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동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보고자는 기원전 600년경을 중심 연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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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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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굴조사 || 2006년~2007년 || 전주 오송리 유적 || 2008 || 전북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전북문화재연구원. (2008). <i>전주 오송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81310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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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송천동1가 870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전주 송천동1가 870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87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토기, 돌살촉, 돌도끼, 그물추,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종철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870 일원에 위치한다. 아파트 신축 공사에 앞서 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건지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야트막한 구릉 말단부인 해발 35~36m 내외의 구릉 정상부에 자리하며, 모두 6기의 집자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 6기는 모두 원형이며 이 가운데 5기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식이고 1기(6호)는 타원형 구덩이가 없는 원형 집자리이다. 1~5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된 형식이다.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은 모두 동서 방향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집자리 면적은 9~21㎡로 다양하며, 3기의 집자리는 바닥면을 점토로 다졌으나 나머지 3기는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호 집자리에서는 화재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돌살촉(石鏃), 돌도끼(石斧),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송국리식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 조합상을 보여준다. 다만, 순수 원형 집자리에서는 미완성 석기와 함께 곧은 목(直立口緣)을 가진 항아리 모양 토기가 조각으로 출토되었다. 보통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는 토기이지만,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도 종종 출토되는 기종이다.

집자리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가 측정되었는데 2430±50 BP(2호), 2480±50 BP(3호), 2310±60 BP(4호)로 보정 연대는 기원전 7~5세기에 해당된다. 구릉 정상부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열을 지어 분포하고,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이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동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보고자는 기원전 600년경을 중심 연대로 삼았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6년~2007년 전주 오송리 유적 2008 전북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