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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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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송림리·계산리 유적
| 이칭별칭=합천 송림리·계산리 유적, 합천 저포리 E지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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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깊은 바리 토기]], [[얕은 바리 토기]], [[긴 목 항아리]],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돌끌]], [[돌낫]], [[숫돌]], [[그물추]], [[빗 모양 반달 돌칼]], [[자루 간 돌검]], [[홈 자루 간 돌검]], [[역삼동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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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집필자=배진성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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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에 위치한다. 합천댐 수몰 지구에 포함됨에 따라 1986~1987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7기, [[고인돌|고인돌]] 8기 및 [[신석기시대|신석기]]·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구덕산과 소용산에 의해 앞뒤가 막혀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덕천 양안의 좁은 곡간지의 경작지가 위치한다. 집자리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 남쪽 사면에 위치, 고인돌은 남쪽에 있는 덕천과 마을 뒷산 사이에 발달된 충적지에 동서 2열로 입지한다. 집자리는 모두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3호 길이 5.9m, 너비 1.32m, 깊이 0.34m, 4호 길이 2.3m, 너비 0.63m, 깊이 0.12m, 6호 길이 4.8m, 너비 2.7m, 깊이 0.4m이다. 내부 시설은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산사면 쪽에 위치하며, 화덕 자리는 얕게 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으로 집자리 한 쪽에 치우쳐 1기가 있다. 유물은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긴목항아리|긴 목 항아리(長頸壺)]], 항아리 모양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문양은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가 새겨져있다. 석기류는 [[간돌검|간 돌검]] 편,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돌끌|돌끌(石鑿)]], [[돌낫|돌낫(石鎌)]], [[숫돌|숫돌(砥石)]] 등과 4호에서는 원판형의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 51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깬돌(割石)을 깔아서 개별 묘역(墓域)을 만들고 그 중앙부에 [[받침돌|받침돌(支石)]] 없이 [[무덤방|무덤방(墓室)]]을 둔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이 대부분이다. [[부석시설|부석 시설(敷石施設)]]은 장방형이며, 크기는 7호 길이 2.4m, 너비 2.7m, 8호 길이 6m, 너비 10m로 다양하며, 대·소형의 깬돌을 1~3겹 정도로 깔고 가장자리는 대형의 깬돌을 정연하게 배치해 묘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무덤방(墓室) 바로 위에 올려 [[뚜껑돌|뚜껑돌(蓋石)]]의 역할을 한 것과 뚜껑돌 위에 놓여 있는 것(6·8호)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구분된다. 지상식의 무덤방은 뚜껑돌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유사 돌덧널형(石槨形)으로 1~3호가 있다. 지하식의 돌널형(石棺形)은 6·7호, 돌덧널형(石槨形)은 8호로 구분된다. 6호는 부석 시설 없이 대형 깬돌 5매를 받침돌로 하고 그 아래 뚜껑돌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3겹으로 눕혀 쌓았다. 돌널의 크기는 길이 0.66m, 너비 0.32m, 깊이 0.33m로 벽석은 판돌을 세워 잇대고 바닥은 판돌 1매를 깔아 축조하였다. 8호는 길이 2.65m, 너비 1m, 깊이 0.85m로 부석 시설 아래에 나무판(木板)으로 덮고 깬돌을 얹어 뚜껑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벽석은 깬돌을 이용하여 가로변 쌓기를 하고 동쪽 짧은 벽은 다소 엉성하게 세로 쌓기를 하였으며 바닥은 판돌을 한겹 깔았다. 특히 8호는 무덤방 동쪽 짧은 벽에 [[묘도|무덤길(墓道)]]이 있는 [[앞트기식돌덧널무덤|앞트기식 돌덧널형(橫口式石槨形)]]으로 삼국 시대의 무덤축조 방식과 비교된다. 고인돌 내부 출토 유물은 항아리 모양의 붉은 간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단추 모양의 손잡이(把手)와 [[빗모양반달돌칼|빗 모양(櫛形) 반달 돌칼]],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와 고인돌의 시기는 형태와 구조 및 출토 유물로 보아 주로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 및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가 유행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고인돌 가운데 일부는 그 이후 시기인 송국리 문화기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에 위치한다. 합천댐 수몰 지구에 포함됨에 따라 1986~1987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7기, [[고인돌|고인돌]] 8기 및 [[신석기시대|신석기]]·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구덕산과 소용산에 의해 앞뒤가 막혀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덕천 양안의 좁은 곡간지의 경작지가 위치한다. 집자리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 남쪽 사면에 위치, 고인돌은 남쪽에 있는 덕천과 마을 뒷산 사이에 발달된 충적지에 동서 2열로 입지한다. 집자리는 모두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3호 길이 5.9m, 너비 1.32m, 깊이 0.34m, 4호 길이 2.3m, 너비 0.63m, 깊이 0.12m, 6호 길이 4.8m, 너비 2.7m, 깊이 0.4m이다. 내부 시설은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산사면 쪽에 위치하며, 화덕 자리는 얕게 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으로 집자리 한 쪽에 치우쳐 1기가 있다. 유물은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긴목항아리|긴 목 항아리(長頸壺)]], 항아리 모양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문양은 [[골아가리|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가 새겨져있다. 석기류는 [[간돌검|간 돌검]] 편,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삼각오목돌살촉|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돌끌|돌끌(石鑿)]], [[돌낫|돌낫(石鎌)]], [[숫돌|숫돌(砥石)]] 등과 4호에서는 원판형의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 51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깬돌(割石)을 깔아서 개별 묘역(墓域)을 만들고 그 중앙부에 [[받침돌|받침돌(支石)]] 없이 [[무덤방|무덤방(墓室)]]을 둔 [[개석식고인돌|덮개식(蓋石式)]]이 대부분이다. [[부석시설|부석 시설(敷石施設)]]은 장방형이며, 크기는 7호 길이 2.4m, 너비 2.7m, 8호 길이 6m, 너비 10m로 다양하며, 대·소형의 깬돌을 1~3겹 정도로 깔고 가장자리는 대형의 깬돌을 정연하게 배치해 묘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덮개돌|덮개돌(上石)]]은 무덤방(墓室) 바로 위에 올려 [[뚜껑돌|뚜껑돌(蓋石)]]의 역할을 한 것과 뚜껑돌 위에 놓여 있는 것(6·8호)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구분된다. 지상식의 무덤방은 뚜껑돌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유사 돌덧널형(石槨形)으로 1~3호가 있다. 지하식의 돌널형(石棺形)은 6·7호, 돌덧널형(石槨形)은 8호로 구분된다. 6호는 부석 시설 없이 대형 깬돌 5매를 받침돌로 하고 그 아래 뚜껑돌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3겹으로 눕혀 쌓았다. 돌널의 크기는 길이 0.66m, 너비 0.32m, 깊이 0.33m로 벽석은 판돌을 세워 잇대고 바닥은 판돌 1매를 깔아 축조하였다. 8호는 길이 2.65m, 너비 1m, 깊이 0.85m로 부석 시설 아래에 나무판(木板)으로 덮고 깬돌을 얹어 뚜껑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벽석은 깬돌을 이용하여 가로변 쌓기를 하고 동쪽 짧은 벽은 다소 엉성하게 세로 쌓기를 하였으며 바닥은 판돌을 한겹 깔았다. 특히 8호는 무덤방 동쪽 짧은 벽에 [[묘도|무덤길(墓道)]]이 있는 [[앞트기식돌덧널무덤|앞트기식 돌덧널형(橫口式石槨形)]]으로 삼국 시대의 무덤축조 방식과 비교된다. 고인돌 내부 출토 유물은 항아리 모양의 붉은 간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단추 모양의 손잡이(把手)와 [[빗모양반달돌칼|빗 모양(櫛形) 반달 돌칼]],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와 고인돌의 시기는 형태와 구조 및 출토 유물로 보아 주로 [[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 및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가 유행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고인돌 가운데 일부는 그 이후 시기인 송국리 문화기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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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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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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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86년 11월 9일~1987년 8월 30일 || 합천 저포리 E지구 유적 || 1987 || 부산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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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부산대학교박물관. (1987). <i>합천 저포리 E지구 유적</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3256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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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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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2 기준 최신판


송림리·계산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합천 송림리·계산리 유적, 합천 저포리 E지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깊은 바리 토기, 얕은 바리 토기, 긴 목 항아리, 붉은 간 토기,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돌끌, 돌낫, 숫돌, 그물추, 빗 모양 반달 돌칼, 자루 간 돌검, 홈 자루 간 돌검, 역삼동식 토기, 흔암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송림리 187 및 계산리 167 일대에 위치한다. 합천댐 수몰 지구에 포함됨에 따라 1986~1987년 조사하여, 집자리 7기, 고인돌 8기 및 신석기·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구덕산과 소용산에 의해 앞뒤가 막혀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덕천 양안의 좁은 곡간지의 경작지가 위치한다. 집자리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 남쪽 사면에 위치, 고인돌은 남쪽에 있는 덕천과 마을 뒷산 사이에 발달된 충적지에 동서 2열로 입지한다. 집자리는 모두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3호 길이 5.9m, 너비 1.32m, 깊이 0.34m, 4호 길이 2.3m, 너비 0.63m, 깊이 0.12m, 6호 길이 4.8m, 너비 2.7m, 깊이 0.4m이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산사면 쪽에 위치하며, 화덕 자리는 얕게 판 구덩식으로 집자리 한 쪽에 치우쳐 1기가 있다.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긴 목 항아리(長頸壺), 항아리 모양의 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문양은 골아가리(口脣刻目), 구멍무늬(孔列文)가 새겨져있다. 석기류는 간 돌검 편,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돌끌(石鑿), 돌낫(石鎌), 숫돌(砥石) 등과 4호에서는 원판형의 흙으로 만든 그물추 51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군은 깬돌(割石)을 깔아서 개별 묘역(墓域)을 만들고 그 중앙부에 받침돌(支石) 없이 무덤방(墓室)을 둔 덮개식(蓋石式)이 대부분이다. 부석 시설(敷石施設)은 장방형이며, 크기는 7호 길이 2.4m, 너비 2.7m, 8호 길이 6m, 너비 10m로 다양하며, 대·소형의 깬돌을 1~3겹 정도로 깔고 가장자리는 대형의 깬돌을 정연하게 배치해 묘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덮개돌(上石)은 무덤방(墓室) 바로 위에 올려 뚜껑돌(蓋石)의 역할을 한 것과 뚜껑돌 위에 놓여 있는 것(6·8호)으로 구분된다. 무덤방은 지하식과 지상식으로 구분된다. 지상식의 무덤방은 뚜껑돌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유사 돌덧널형(石槨形)으로 1~3호가 있다. 지하식의 돌널형(石棺形)은 6·7호, 돌덧널형(石槨形)은 8호로 구분된다. 6호는 부석 시설 없이 대형 깬돌 5매를 받침돌로 하고 그 아래 뚜껑돌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3겹으로 눕혀 쌓았다. 돌널의 크기는 길이 0.66m, 너비 0.32m, 깊이 0.33m로 벽석은 판돌을 세워 잇대고 바닥은 판돌 1매를 깔아 축조하였다. 8호는 길이 2.65m, 너비 1m, 깊이 0.85m로 부석 시설 아래에 나무판(木板)으로 덮고 깬돌을 얹어 뚜껑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벽석은 깬돌을 이용하여 가로변 쌓기를 하고 동쪽 짧은 벽은 다소 엉성하게 세로 쌓기를 하였으며 바닥은 판돌을 한겹 깔았다. 특히 8호는 무덤방 동쪽 짧은 벽에 무덤길(墓道)이 있는 앞트기식 돌덧널형(橫口式石槨形)으로 삼국 시대의 무덤축조 방식과 비교된다. 고인돌 내부 출토 유물은 항아리 모양의 붉은 간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단추 모양의 손잡이(把手)와 빗 모양(櫛形) 반달 돌칼, 슴베 간 돌살촉, 삼각 오목 돌살촉,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와 고인돌의 시기는 형태와 구조 및 출토 유물로 보아 주로 역삼동식 토기흔암리식 토기가 유행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고인돌 가운데 일부는 그 이후 시기인 송국리 문화기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6년 11월 9일~1987년 8월 30일 합천 저포리 E지구 유적 1987 부산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