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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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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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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KC-001호 집자리에 서 26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40년), KC-002호에서 25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5년), KC-003호에서 24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35년)의 값이 산출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KC-001호 집자리에 서 26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40년), KC-002호에서 25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5년), KC-003호에서 24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35년)의 값이 산출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0). <i>석곡리 유적</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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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석곡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천안 석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리 20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현숙



설명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리 20에 위치한다. (주)동산C&G의 공장 부지로 1996년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5기, 작은 구덩이 11기, 시기 불명의 소형 구덩이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정양봉(해발 210m)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저산성 구릉의 선상부와 북동쪽으로 펼쳐진 경사면에 입지한다. 유적의 전방에 금강의 지류인 승천천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그 주변에 넓은 충적 평야가 발달하였다.

집자리는 송국리식으로 볼 수 있는 평면 원형이 3기, 평면 말각 방형이 2기이다. 원형인 KC-004호는 지름 2.4~3.9m, 깊이 0.2m이고, 말각 방형인 KC-005호는 길이 2.37m, 너비 1.64m, 깊이 0.18m이다. 이들은 서로 중복되지는 않았지만 말각 방형이 원형에 비해 크기가 작다. 내부 시설로 원형 집자리에는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말각 방형 집자리에는 구덩식 화덕 자리가 있다.

작은 구덩이는 모두 11기로 분포상에서 7기는 구릉 정상부의 해발 85.5~86.5m 사이에 약 0.5~3m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나머지 4기는 원형 집자리와 말각 방형 집자리 사이에 자리한다. 평면은 타원형을 포함한 원형과 말각 방형으로 구분되지만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타원형의 경우 지름 1.53~2.8m이고, 원형은 2.35m, 말각 방형은 1.26m 정도이다. 이들 구덩이는 집자리와 구역을 달리하여 구릉의 정상부에 비교적 정연하게 분포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출토 유물은 주로 바리 토기(鉢形土器),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민무늬 토기 저부 편이 있으며, 돌검(石劍), 돌칼(石刀), 돌도끼(石斧), 숫돌(砥石) 등의 석기도 있는데 종류는 다양하지만 수량은 적은 편이다. 집자리 출토 유물은 원상을 간직한 것이 많지만 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은 파손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집자리는 송국리식이나 출토 유물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송국리식 유물로 볼 수 있는 것은 드물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KC-001호 집자리에 서 26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40년), KC-002호에서 252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5년), KC-003호에서 249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635년)의 값이 산출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0). 석곡리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