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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상동동 유적 | |||
| 이칭별칭=김제 상동동 유적 | | 이칭별칭=김제 상동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시대=청동기 | |||
| 위치=대한민국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상동동 247-15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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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동희 | | 집필자=이동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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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설명== |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상동동 247-15 일원에 위치한다. 익산-광주-목포를 잇는 호남 고속 철도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2010~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해발16m 내외의 구릉에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3기와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이 확인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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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은 토기류, 토제품, 석기류 및 다량의 수정 원석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로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盌形土器)]], [[외반구연항아리|외반 구연 | 출토 유물은 토기류, 토제품, 석기류 및 다량의 수정 원석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로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盌形土器)]], [[외반구연항아리|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 등이 주를 이루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와 [[골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등이 출토된다. 석기는 [[반달돌칼|반달 돌칼]],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돌검|간 돌검(石劍)]], [[돌살촉|돌살촉(石鏃)]], [[숫돌|숫돌(砥石)]], 다량의 미완성 석기, 석재 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밖에 토제 [[가락바퀴|가락바퀴]],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1호 집자리에서는 벽구와 그 주변에서 미완성 석기 및 수정원석 등이 다수 확인되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집자리에서 166개체의 탄화미와 탄화머루 등이 다량 출토(1호 75점, 2호 88점, 3호4점)되었는데, 1호 집자리의 저장 구덩이에서 주로 확인되고, 2호는 바닥면 전체에서 고르게 출토된다. 집자리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에 해당하고 시기는 기원전 13~10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 ||
움무덤은 북쪽 구릉 하단부에서 1기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길이 1.8m, 너비 0.65m, 깊이 0.13m이다. 내부에서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1점이 출토되었다. | 움무덤은 북쪽 구릉 하단부에서 1기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길이 1.8m, 너비 0.65m, 깊이 0.13m이다. 내부에서 [[둥근덧띠토기|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1점이 출토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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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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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0년~2011년 || 김제 상동동Ⅰ 유적 || 2013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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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3). <i>김제 상동동Ⅰ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3485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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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김제 상동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상동동 247-1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움무덤, 화덕 자리, 민무늬 토기, 깊은 바리 토기, 외반 구연 항아리, 붉은 간 토기, 사발 모양 토기, 골아가리 토기,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 간 돌검, 돌살촉, 숫돌, 가락바퀴, 그물추, 가락동 유형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동희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상동동 247-15 일원에 위치한다. 익산-광주-목포를 잇는 호남 고속 철도 건설 사업의 일환으로 2010~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해발16m 내외의 구릉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3기와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1·2호는 장방형, 3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으로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柱孔), 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평면 형태 (타)원형이고, 바닥면을 굴착하여 사용하였으며 내부에서 숯과 불탄 흙들이 출토된다. 특히 3호 집자리는 바닥 중앙부에 화덕 3기가 일렬로 배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2·3호 집자리에서 2열의 정연한 양상을 보인다. 저장공은 3기의 집자리 모두에서, 벽구는 1·3호 집자리에서만 확인되었다. 벽 도랑에서는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어 벽체와 연관된 시설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토제품, 석기류 및 다량의 수정 원석이 있다. 토기는 민무늬 토기로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사발 모양 토기(盌形土器), 외반 구연 항아리(外反口緣壺) 등이 주를 이루며,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와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등이 출토된다. 석기는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 돌검(石劍), 돌살촉(石鏃), 숫돌(砥石), 다량의 미완성 석기, 석재 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밖에 토제 가락바퀴,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1호 집자리에서는 벽구와 그 주변에서 미완성 석기 및 수정원석 등이 다수 확인되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집자리에서 166개체의 탄화미와 탄화머루 등이 다량 출토(1호 75점, 2호 88점, 3호4점)되었는데, 1호 집자리의 저장 구덩이에서 주로 확인되고, 2호는 바닥면 전체에서 고르게 출토된다. 집자리의 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가락동 유형에 해당하고 시기는 기원전 13~10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움무덤은 북쪽 구릉 하단부에서 1기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말각 장방형으로 길이 1.8m, 너비 0.65m, 깊이 0.13m이다. 내부에서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1점이 출토되었다.
이미지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10년~2011년 | 김제 상동동Ⅰ 유적 | 2013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
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3). 김제 상동동Ⅰ 유적. https://www.riss.kr/link?id=M13348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