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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
| 소재지=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
| 성격=복합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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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돌덧널무덤]], [[돌널무덤]], [[간 돌검]], [[돌살촉]], [[그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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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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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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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기념물.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1998~1999년 조사하여,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33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5기, 기타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의 동쪽과 서쪽으로 무덤이 더 분포할 가능성이 있어 상동 일대의 가장 큰 집단 무덤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금호강(琴湖江)과 합류하는 신천(新川)의 동쪽 약 200m에 형성된 충적지에 입지하며, 인접하여 위치하는 [[대구파동고인돌|파동 고인돌]]과 같은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1998~1999년 조사하여,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33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5기, 기타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의 동쪽과 서쪽으로 무덤이 더 분포할 가능성이 있어 상동 일대의 가장 큰 집단 무덤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금호강(琴湖江)과 합류하는 신천(新川)의 동쪽 약 200m에 형성된 충적지에 입지하며, 인접하여 위치하는 [[대구파동고인돌|파동 고인돌]]과 같은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길이 방향은 남북 방향이 27기, 동서 방향이 11기이며, 1~31호는 북쪽에 밀집 분포하고 32~41호는 넓게 분포한다. 북쪽 무덤군은 중앙부에 길이 방향이 동서 방향인 6~11호까지의 6기가 남북 한 줄로 늘어서 있는데, 당시의 기준 무덤으로 판단된다. 기준 무덤의 동·서쪽의 무덤의 길이 방향은 기준 무덤과 반대인 남북 방향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높다. 기준 무덤의 양 끝단인 6·11호에서만 [[간돌검|간 돌검]]이 출토되는데, 6호는 [[슴베식|슴베식(有莖式)]], 11호는 [[자루식|자루식(有柄式)]]이다. 또한 6호의 북쪽에 위치하는 39호 원형 [[돌무지|돌무지(積石)]]는 무덤군을 표시하는[[상징물을세웠던시설|상징물을 세웠던 시설(立木竪穴)]]일 가능성도 있다. 북쪽 무덤군은 동일한 방향을 가진 무덤이 밀집하여 만들어진 점에서 공동 무덤 내 자체적인 규칙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북쪽 무덤군의 무덤간 간격은 1m 내외인 반면 남쪽 무덤군 6기는 무덤간 간격이 2m 내외이며 분포상 규칙성도 확인되지 않는다. 즉, 북쪽 무덤과 남쪽 무덤군은 다른 성격을 가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무덤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구조에서 다소 엉성하게 축조된 모습을 띈다.
무덤의 길이 방향은 남북 방향이 27기, 동서 방향이 11기이며, 1~31호는 북쪽에 밀집 분포하고 32~41호는 넓게 분포한다. 북쪽 무덤군은 중앙부에 길이 방향이 동서 방향인 6~11호까지의 6기가 남북 한 줄로 늘어서 있는데, 당시의 기준 무덤으로 판단된다. 기준 무덤의 동·서쪽의 무덤의 길이 방향은 기준 무덤과 반대인 남북 방향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높다. 기준 무덤의 양 끝단인 6·11호에서만 [[간돌검|간 돌검]]이 출토되는데, 6호는 슴베식(有莖式), 11호는 자루식(有柄式)이다. 또한 6호의 북쪽에 위치하는 39호 원형 [[돌무지|돌무지(積石)]]는 무덤군을 표시하는 상징물을 세웠던 시설(立木竪穴)일 가능성도 있다. 북쪽 무덤군은 동일한 방향을 가진 무덤이 밀집하여 만들어진 점에서 공동 무덤 내 자체적인 규칙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북쪽 무덤군의 무덤간 간격은 1m 내외인 반면 남쪽 무덤군 6기는 무덤간 간격이 2m 내외이며 분포상 규칙성도 확인되지 않는다. 즉, 북쪽 무덤과 남쪽 무덤군은 다른 성격을 가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무덤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구조에서 다소 엉성하게 축조된 모습을 띈다.


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깬돌|깬돌(割石)]]을 이용한 돌덧널무덤이며 일부 깬돌 안쪽에 [[판돌|판돌(板石)]]을 세워 돌널의 구조를 한 것도 있다. 돌덧널무덤 중 벽면이 다소 엉성하게 쌓여진 경우는 벽면 내부에 나무덧널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바닥 시설은 대부분 납작한 [[강돌|강돌(川石)]]을 깔았으며 정연한 것과 띄워서 깐 것, 자갈돌을 혼합한 것, 자갈돌만 깐 것으로 구분되며 3기는 바닥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깬돌(割石)을 이용한 돌덧널무덤이며 일부 깬돌 안쪽에 판돌(板石)을 세워 돌널의 구조를 한 것도 있다. 돌덧널무덤 중 벽면이 다소 엉성하게 쌓여진 경우는 벽면 내부에 나무덧널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바닥 시설은 대부분 납작한 강돌(川石)을 깔았으며 정연한 것과 띄워서 깐 것, 자갈돌을 혼합한 것, 자갈돌만 깐 것으로 구분되며 3기는 바닥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4~6호 무덤에서 [[삼국시대|삼국 시대]] [[횡구식|앞트기식(橫口式)]]과 닮은 형태가 확인되었다. 특히 6호는 3차에 걸친 [[추가장|추가장(追加葬)]]이 확인되었다. 1·2차 [[시상|주검 받침(屍床)]]은 여러 장의 판돌으로, 3차는 10㎝의 자갈을 깔아 주검 바닥으로 사용하였다. 1차 주검 바닥에서는 돌살촉 3점, 3차 바닥에 서는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합천저포리유적|합천 저포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 영남 지역 무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4~6호 무덤에서 [[삼국시대|삼국 시대]] 앞트기식(橫口式)과 닮은 형태가 확인되었다. 특히 6호는 3차에 걸친 [[추가장|추가장(追加葬)]]이 확인되었다. 1·2차 [[시상|주검 받침(屍床)]]은 여러 장의 판돌으로, 3차는 10㎝의 자갈을 깔아 주검 바닥으로 사용하였다. 1차 주검 바닥에서는 돌살촉 3점, 3차 바닥에 서는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합천저포리유적|합천 저포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 영남 지역 무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은 간 돌검, [[돌살촉|돌살촉]]이 확인되었다. 18호는 돌살촉 9점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다. 돌살촉이 출토된 무덤과 출토되지 않은 무덤 간 구조나 규모에서 특별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유적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확인되지 않고 돌검과 돌살촉만 확인된다는 점은 신천 일대의 무덤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간 돌검, [[돌살촉|돌살촉]]이 확인되었다. 18호는 돌살촉 9점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다. 돌살촉이 출토된 무덤과 출토되지 않은 무덤 간 구조나 규모에서 특별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유적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확인되지 않고 돌검과 돌살촉만 확인된다는 점은 신천 일대의 무덤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유적의 밀집된 무덤 배치를 통해 공동 무덤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성이 보이는 무덤이 대구 지역의 여러 곳에서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 늦은 단계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연구 자료이다. 또한, 유적과 인접하여 대규모 [[취락|취락]]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밀집된 무덤 배치를 통해 공동 무덤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성이 보이는 무덤이 대구 지역의 여러 곳에서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 늦은 단계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연구 자료이다. 또한, 유적과 인접하여 대규모 [[취락|취락]]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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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대구_상동_고인돌군_출토_간_돌검1.jpg
File:대구_상동_고인돌군_출토_간_돌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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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8년 11월 16일 ~ 1999년 2월 28일 || 대구 상동지석묘 발굴조사 보고서 || 2000 || 국립대구박물관
|}


==지정정보==
==지정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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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 대구광역시 기념물 || 상동지석묘군 (上洞支石墓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200120000 🔗]</span>
| 국가유산 || 대구광역시 기념물 || 상동지석묘군 (上洞支石墓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200120000 🔗]</span>
|}
|}
==참고문헌==
* 국립대구박물관. (2000). <i>대구 상동지석묘 발굴조사 보고서</i>. https://www.riss.kr/link?id=M1099311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상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상동 고인돌군, 대구 상동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덧널무덤, 돌널무덤, 간 돌검, 돌살촉, 그물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병록



설명

대구광역시 기념물.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501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1998~1999년 조사하여, 돌덧널무덤(石槨墓) 33기, 돌널무덤(石棺墓) 5기, 기타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의 동쪽과 서쪽으로 무덤이 더 분포할 가능성이 있어 상동 일대의 가장 큰 집단 무덤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금호강(琴湖江)과 합류하는 신천(新川)의 동쪽 약 200m에 형성된 충적지에 입지하며, 인접하여 위치하는 파동 고인돌과 같은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길이 방향은 남북 방향이 27기, 동서 방향이 11기이며, 1~31호는 북쪽에 밀집 분포하고 32~41호는 넓게 분포한다. 북쪽 무덤군은 중앙부에 길이 방향이 동서 방향인 6~11호까지의 6기가 남북 한 줄로 늘어서 있는데, 당시의 기준 무덤으로 판단된다. 기준 무덤의 동·서쪽의 무덤의 길이 방향은 기준 무덤과 반대인 남북 방향이라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높다. 기준 무덤의 양 끝단인 6·11호에서만 간 돌검이 출토되는데, 6호는 슴베식(有莖式), 11호는 자루식(有柄式)이다. 또한 6호의 북쪽에 위치하는 39호 원형 돌무지(積石)는 무덤군을 표시하는 상징물을 세웠던 시설(立木竪穴)일 가능성도 있다. 북쪽 무덤군은 동일한 방향을 가진 무덤이 밀집하여 만들어진 점에서 공동 무덤 내 자체적인 규칙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북쪽 무덤군의 무덤간 간격은 1m 내외인 반면 남쪽 무덤군 6기는 무덤간 간격이 2m 내외이며 분포상 규칙성도 확인되지 않는다. 즉, 북쪽 무덤과 남쪽 무덤군은 다른 성격을 가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무덤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구조에서 다소 엉성하게 축조된 모습을 띈다.

무덤의 구조는 대부분 깬돌(割石)을 이용한 돌덧널무덤이며 일부 깬돌 안쪽에 판돌(板石)을 세워 돌널의 구조를 한 것도 있다. 돌덧널무덤 중 벽면이 다소 엉성하게 쌓여진 경우는 벽면 내부에 나무덧널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바닥 시설은 대부분 납작한 강돌(川石)을 깔았으며 정연한 것과 띄워서 깐 것, 자갈돌을 혼합한 것, 자갈돌만 깐 것으로 구분되며 3기는 바닥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4~6호 무덤에서 삼국 시대 앞트기식(橫口式)과 닮은 형태가 확인되었다. 특히 6호는 3차에 걸친 추가장(追加葬)이 확인되었다. 1·2차 주검 받침(屍床)은 여러 장의 판돌으로, 3차는 10㎝의 자갈을 깔아 주검 바닥으로 사용하였다. 1차 주검 바닥에서는 돌살촉 3점, 3차 바닥에 서는 돌검 1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합천 저포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 영남 지역 무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은 간 돌검, 돌살촉이 확인되었다. 18호는 돌살촉 9점과 흙으로 만든 그물추가 출토되었다. 돌살촉이 출토된 무덤과 출토되지 않은 무덤 간 구조나 규모에서 특별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유적에서 붉은 간 토기가 확인되지 않고 돌검과 돌살촉만 확인된다는 점은 신천 일대의 무덤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유적의 밀집된 무덤 배치를 통해 공동 무덤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경향성이 보이는 무덤이 대구 지역의 여러 곳에서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 늦은 단계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연구 자료이다. 또한, 유적과 인접하여 대규모 취락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8년 11월 16일 ~ 1999년 2월 28일 대구 상동지석묘 발굴조사 보고서 2000 국립대구박물관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대구광역시 기념물 상동지석묘군 (上洞支石墓群)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