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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
|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
| 성격=복합유적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널무덤]], [[검은 간 토기]], [[주머니호]], [[돌칼]], [[숫돌]], [[작은 옥 꾸러미]], [[랴오닝식 동검]]
| 키워드=[[널무덤]], [[검은 간 토기]], [[주머니호]], [[돌칼]], [[숫돌]], [[작은 옥 꾸러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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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에 위치한다. 체육 시설 건립에 앞서 2005~2006년 조사하여 [[목관묘|널무덤(木棺墓)]] 1기 및 [[조선시대|조선 시대]]~[[근대|근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문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해발 100m의 구릉성 산지 말단 구릉부에 입지한다. 남동쪽으로 1.5㎞ 떨어져 직지천이 흐르며, 주변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에 위치한다. 체육 시설 건립에 앞서 2005~2006년 조사하여 [[목관묘|널무덤(木棺墓)]] 1기 및 [[조선시대|조선 시대]]~근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문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해발 100m의 구릉성 산지 말단 구릉부에 입지한다. 남동쪽으로 1.5㎞ 떨어져 직지천이 흐르며, 주변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널무덤은 야트막한 구릉지 동남쪽 비탈면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사 당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로 보고되었으나, 출토 유물을 통해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일 개연성이 높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며, 길이 2.15m, 너비 0.7m, 깊이 0.55m이다. 내부에서 [[나무널|나무널(木棺)]]의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1.9m, 너비 0.4m, 옆판의 두께는 5㎝이다. 나무널은 소나무류이고 나무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공간은 흙으로 채웠으며 나무널 위에 [[나무뚜껑|나무 뚜껑(木蓋)]]을 덮었다. 나무 뚜껑 위에는 다른 성질의 흙을 0.1~0.15m 두께로 교대로 쌓아서 [[봉토|봉토(封土)]]를 만들었다. 남아 있는 봉토의 높이는 0.4m 정도인데, 원래는 더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널무덤은 야트막한 구릉지 동남쪽 비탈면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사 당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로 보고되었으나, 출토 유물을 통해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일 개연성이 높다.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며, 길이 2.15m, 너비 0.7m, 깊이 0.55m이다. 내부에서 나무널(木棺)의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1.9m, 너비 0.4m, 옆판의 두께는 5㎝이다. 나무널은 소나무류이고 나무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공간은 흙으로 채웠으며 나무널 위에 나무 뚜껑(木蓋)을 덮었다. 나무 뚜껑 위에는 다른 성질의 흙을 0.1~0.15m 두께로 교대로 쌓아서 [[봉토|봉토(封土)]]를 만들었다. 남아 있는 봉토의 높이는 0.4m 정도인데, 원래는 더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부장품은 봉토 내부와 나무널의 나무 뚜껑 위, 나무널 내부 바닥에서 확인되었다.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와 [[주머니호|주머니호]]는 봉토 내부, [[돌칼|돌칼(石劍)]], [[숫돌|숫돌(砥石)]], 용도를 알 수 없는 석기는 나무 뚜껑 위에 포개어 놓았다. 나무널 내부 바닥에는 [[천하석제|천하석제(天河石製)]][[작은옥꾸러미|작은 옥 꾸러미]]를 ‘8’자 모양으로 놓았고 [[비파형동검|랴오닝식 동검(遼寧式銅劍)]]은 중앙에서 조금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껴묻었다. 랴오닝식 동검은 한쪽 날(刃部)의 3/4 정도와 [[봉부|봉부(鋒部)]] 일부가 파손되었다. [[돌기부|돌기부(突起部)]]가 퇴화(退化)되어 뚜렷하지 않고 등날은 돌기부까지 선명하게 만들어져 있는 변형된 형태이다. 그리고 검은 간 토기는 굽(臺脚)과 몸통(胴體)의 경계가 분명하고 몸통의 최대 지름이 아래쪽에 있다. 주머니 항아리는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붙인 모양이다. 돌칼은 크기와 형태로 볼 때 [[간돌창|간 돌창(磨製石槍)]]일 가능성 도 있다. 랴오닝식 동검은 [[고인돌|고인돌]],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함께 출토되지만, 널무덤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토기류와 함께 출토되었다. 즉, 오랜 기간 전해지다가 껴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품은 봉토 내부와 나무널의 나무 뚜껑 위, 나무널 내부 바닥에서 확인되었다.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와 [[주머니호|주머니호]]는 봉토 내부, [[돌칼|돌칼(石劍)]], [[숫돌|숫돌(砥石)]], 용도를 알 수 없는 석기는 나무 뚜껑 위에 포개어 놓았다. 나무널 내부 바닥에는 천하석제(天河石製)의 작은 옥 꾸러미를 ‘8’자 모양으로 놓았고 랴오닝식 동검(遼寧式銅劍)은 중앙에서 조금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껴묻었다. 랴오닝식 동검은 한쪽 날(刃部)의 3/4 정도와 봉부(鋒部) 일부가 파손되었다. 돌기부(突起部)가 퇴화(退化)되어 뚜렷하지 않고 등날은 돌기부까지 선명하게 만들어져 있는 변형된 형태이다. 그리고 검은 간 토기는 굽(臺脚)과 몸통(胴體)의 경계가 분명하고 몸통의 최대 지름이 아래쪽에 있다. 주머니 항아리는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붙인 모양이다. 돌칼은 크기와 형태로 볼 때 [[간돌창|간 돌창(磨製石槍)]]일 가능성 도 있다. 랴오닝식 동검은 [[고인돌|고인돌]],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와 함께 출토되지만, 널무덤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토기류와 함께 출토되었다. 즉, 오랜 기간 전해지다가 껴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영남 지역에서 출토 사례가 적은 랴오닝식 동검을 껴묻은 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조사 이후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의 전세(傳世) 풍습과 장송(葬送) 의례, 널의 구조, 랴오닝식 동검의 변화 과정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적은 영남 지역에서 출토 사례가 적은 랴오닝식 동검을 껴묻은 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조사 이후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의 전세(傳世) 풍습과 장송(葬送) 의례, 널의 구조, 랴오닝식 동검의 변화 과정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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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김천_삼락동_유적_II지구_1호_널무덤_출토_청동_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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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지표조사 || 2005년 3월 ~ 2005년 3월 || 김천시 수영장,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편입부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결과보고 || 2005 || 동양대학교박물관
|-
| 시·발굴조사 || 2005년 7월 20일 ~ 2007년 2월 4일 || 김천 문당동유적 || 2008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8). <i>김천 문당동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417936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1 기준 최신판


삼락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김천 삼락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널무덤, 검은 간 토기, 주머니호, 돌칼, 숫돌, 작은 옥 꾸러미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도헌



설명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 600에 위치한다. 체육 시설 건립에 앞서 2005~2006년 조사하여 널무덤(木棺墓) 1기 및 조선 시대~근대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문암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해발 100m의 구릉성 산지 말단 구릉부에 입지한다. 남동쪽으로 1.5㎞ 떨어져 직지천이 흐르며, 주변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널무덤은 야트막한 구릉지 동남쪽 비탈면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사 당시 청동기 시대로 보고되었으나, 출토 유물을 통해 초기 철기 시대일 개연성이 높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며, 길이 2.15m, 너비 0.7m, 깊이 0.55m이다. 내부에서 나무널(木棺)의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남아 있는 크기는 길이 1.9m, 너비 0.4m, 옆판의 두께는 5㎝이다. 나무널은 소나무류이고 나무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공간은 흙으로 채웠으며 나무널 위에 나무 뚜껑(木蓋)을 덮었다. 나무 뚜껑 위에는 다른 성질의 흙을 0.1~0.15m 두께로 교대로 쌓아서 봉토(封土)를 만들었다. 남아 있는 봉토의 높이는 0.4m 정도인데, 원래는 더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부장품은 봉토 내부와 나무널의 나무 뚜껑 위, 나무널 내부 바닥에서 확인되었다. 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주머니호는 봉토 내부, 돌칼(石劍), 숫돌(砥石), 용도를 알 수 없는 석기는 나무 뚜껑 위에 포개어 놓았다. 나무널 내부 바닥에는 천하석제(天河石製)의 작은 옥 꾸러미를 ‘8’자 모양으로 놓았고 랴오닝식 동검(遼寧式銅劍)은 중앙에서 조금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껴묻었다. 랴오닝식 동검은 한쪽 날(刃部)의 3/4 정도와 봉부(鋒部) 일부가 파손되었다. 돌기부(突起部)가 퇴화(退化)되어 뚜렷하지 않고 등날은 돌기부까지 선명하게 만들어져 있는 변형된 형태이다. 그리고 검은 간 토기는 굽(臺脚)과 몸통(胴體)의 경계가 분명하고 몸통의 최대 지름이 아래쪽에 있다. 주머니 항아리는 아가리에 둥근 덧띠를 붙인 모양이다. 돌칼은 크기와 형태로 볼 때 간 돌창(磨製石槍)일 가능성 도 있다. 랴오닝식 동검은 고인돌, 돌널무덤(石棺墓)에서 붉은 간 토기와 함께 출토되지만, 널무덤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토기류와 함께 출토되었다. 즉, 오랜 기간 전해지다가 껴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은 영남 지역에서 출토 사례가 적은 랴오닝식 동검을 껴묻은 널무덤이라는 점에서 조사 이후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의 전세(傳世) 풍습과 장송(葬送) 의례, 널의 구조, 랴오닝식 동검의 변화 과정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지표조사 2005년 3월 ~ 2005년 3월 김천시 수영장,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편입부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결과보고 2005 동양대학교박물관
시·발굴조사 2005년 7월 20일 ~ 2007년 2월 4일 김천 문당동유적 2008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