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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서울대학교박물관, 충남대학교박물관. (1999). <i>천안 대흥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85083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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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천안 불당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충청남도 서북구 불당동 81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집자리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역삼동 유형, 송국리 유형, 역삼동 유형 집자리, 송국리 유형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손준호 |
설명
충청남도 서북구 불당동 815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봉서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해발 50~70m의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는 2002년 5월부터 8월, 같은 해 10월부터 2003년 1월까지 2차에 걸쳐 실시되었다. 시굴 조사 결과 Ⅰ·Ⅱ·Ⅲ 3개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나, 이 중Ⅰ지역은 보존되고 나머지 Ⅱ·Ⅲ지역에 대해서만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이후, 유적은 일부 복원·정비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Ⅱ지역에서 집자리 20기와 작은 구덩이 2기, Ⅲ지역에서 집자리 21기와 소형 구덩이 5기가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Ⅱ지역에서 주로 사면부에 배치된 반면, Ⅲ지역에서는 구릉 정상부와 능선을 따라 자리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 25기, 방형과 원형이 16기이다. 세장방형과 장방형 집자리의 내부에서는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도랑 등이 확인되었다. 유일하게 Ⅲ지역 11호 집자리에만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가락동 유형과의 관련성을 짐작게 하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원형이나 방형 집자리는 주로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다.
유물은 세장방형과 장방형 집자리에서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굽달린 바리, 홈 자루 간 돌검, 턱 슴베 간 돌살촉, 슴베 없는 간 돌살촉, 배 모양 돌칼 등이, 원형이나 방형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슴베 간돌검, 통슴베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형태를 볼 때 전자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역삼동 유형, 후자는 늦은 시기의 송국리 유형에 각각 해당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 등을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삼동 유형 집자리와 송국리 유형 집자리 사이의 유구·유물상 차이, 중복 축조 사례 등을 볼 때 양자의 선후 관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출토 토기 무늬의 공통성이나 변화 과정상의 형태로 볼 수 있는 집자리 등을 근거로 양 유형 사이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가능하다. 송국리 유형의 발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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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서울대학교박물관, 충남대학교박물관. (1999). 천안 대흥리 유적. https://www.riss.kr/link?id=M8508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