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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東京考古學會. (1935). <i>金海貝塚―その新發見―</i>.
* 榧本杜人. (1957). 金海貝塚の甕棺と箱式石棺―金海貝塚の再検討―. <i>朝鮮の考古學</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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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봉황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김해 봉황동 유적, 김해 패총, 김해 패총 D구 유적, 김해 회현리 패총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333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조개더미, 고인돌, 독무덤, 상자형 돌널무덤, 세형동검, 동새기개, 야요이 시대, 붉은 간 토기, 슴베 간 돌살촉,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상길



설명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333에 위치한다. 유적은 1907년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의해 처음 소개된 유적으로, 당시부터 몇 개의 구(區)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D구는 조개더미(貝塚)가 있는 구릉으로, 정상에 있는 고인돌을 포함한 구역이다. 1914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蔵),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 1917년 도리이 류조에 의해 부분적인 발굴 조사가 계속되었다. 그 뒤 1920년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1934·1935년 가야모토 모리토(榧本杜人)에 의한 본격적인 발굴 조사로 성격이 명확해졌다. ‘김해 패총(金海貝塚)’이라는 명칭은 이 조개더미를 처음 발견한 이마니시 류가 붙인 것으로, 조선 총독부에서 1933년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김해 회현리 패총(金海會峴里貝塚)’이라는 정식 이름이 붙었다. 이후 1963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였고, 2000년에는 원래 지형적으로 이어졌던 봉황동 유적과 회현리 유적을 묶어서 사적으로 확대 지정하면서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D구에 대한 조사는 1934~1935년 사이에 이루어졌고, 고인돌, 돌 깔린 구덩이(石敷竪穴), 독무덤(甕棺墓), 상자형 돌널무덤(箱形石棺墓), 돌무지(積石), 노적(爐蹟)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 아래에서 매장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돌 깔린 구덩이로 명명된 유구가 매장 주체부(埋葬主體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덮개돌(上石)의 남쪽에서는 돌무지로 명명된 석축(石築)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길이는 7m이다. 이 석축은 창원 덕천리 1호 고인돌의 묘역(墓域) 시설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독무덤은 3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일본 야요이 시대(彌生時代) 토기를 사용하였다. 이 가운데 3호 독무덤에서는 세형동검 2점과 동새기개(銅蠣)가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5기가 조사되었다.

D구에서 조사된 무덤은 조개더미보다 먼저 만들어졌지만 모두가 동일 시기는 아닌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고인돌의 하한(下限)이 더 내려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독무덤, 돌널무덤이 고인돌, 석축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유적에서는 고인돌의 묘역인 석축 시설이 최초로 조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인돌과 일본 야요이 시대 독무덤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향후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98년에 토층 전사(轉寫)를 위해 일제 강점기의 A구 패총을 재조사하여, A구의 서쪽 편에서 청동기 시대 무덤 1기가 추가로 확인된 바 있다. 내부에서 출토된 붉은 간 토기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을 통해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정정보

구분 지정 종목 지정 명칭 자세히 보기
국가유산 사적 김해 봉황동 유적 (金海 鳳凰洞 遺蹟) 🔗

참고문헌

  • 東京考古學會. (1935). 金海貝塚―その新發見―.
  • 榧本杜人. (1957). 金海貝塚の甕棺と箱式石棺―金海貝塚の再検討―. 朝鮮の考古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