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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반제리 유적 | |||
| 이칭별칭=안성 반제리 유적 | | 이칭별칭=안성 반제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 산8-1 일원 | |||
| 성격=복합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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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서길덕 | | 집필자=서길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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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반제리 유적에서 확인된 둥근 덧띠 토기 시기의 대규모 유적은 당시 마을 공동체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환구는 제천(祭天) 의례 또는 농경 의례 등을 행하는 [[의례활동|의례 시설]]로 주목된다. | 안성 반제리 유적에서 확인된 둥근 덧띠 토기 시기의 대규모 유적은 당시 마을 공동체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환구는 제천(祭天) 의례 또는 농경 의례 등을 행하는 [[의례활동|의례 시설]]로 주목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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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4년 06월 15일~2005년 01월 26일 || 안성 반제리유적 || 2007 || 중원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4년 06월 15일~2005년 01월 26일 || 안성 반제리유적 || 2007 || 중원문화재연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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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중원문화재연구원. (2007). <i>안성 반제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0897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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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안성 반제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 산8-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환구, 도랑, 목책 열, 움무덤, 구덩이, 벽부식 화덕 자리, 둥근 덧띠 토기, 의례 시설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서길덕 |
설명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 산8-1 일원에 위치한다. 고속 국도 제40호선 안성~음성간(제5공구)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2004~2005년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81기·환구(環溝) 1기·목책 열 1개소·도랑(溝) 7기·움무덤(土壙墓) 3기·구덩이 10기가 확인되었다. 매봉산 정상부(해발 99m)와 서쪽의 봉우리(해발 91m) 사이는 해발 89m 정도의 완만한 평탄면을 이루고 있어 마치 낙타의 등 모양을 하고 있다. 구릉의 북쪽과 남쪽은 급한 비탈을 이루며, 동쪽에 연해 반제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토기가 나온 장방형 집자리는 양쪽 봉우리 사이의 평탄면에 4기, 남쪽 비탈에 5기가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3·4호), 장방형(2·5·6·7호), 방형(9호)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대부분 파괴가 심해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으나 가장 긴 것은 10.2m(5호)이고 가장 넓은 것은 4.8m(6호)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이 있다. 화덕 자리는 주로 집자리의 중앙축을 따라 배치되거나 중앙에 1개씩 위치하며, 바닥을 파지 않은 무시설식이다.
저장 구덩이는 4호에서 경사면 위쪽 긴 벽 아래에 5개가 1열로 배치된 것과 7호에서 벽에 붙어서 9개가 2열로 배치된 것이 특징적이다. 특히 2열 배치는 수원 이목동, 평택 칠괴동 유적과 비교할 수 있다. 벽 도랑은 5호와 6호에서만 확인되었는데 5호는 짧은 벽에, 6호는 경사면 위쪽의 긴 벽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二重口緣短斜線)+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민무늬 토기, 돌살촉(石鏃), 돌창(石槍), 숫돌(砥石), 갈돌(碾石棒) 등이 나왔다. 크게는 겹아가리 토기가 나오는 장방형 및 방형의 집자리와 겹아가리 토기가 없는 세장방형계 집자리로 구분된다. 한편, 청동기 시대 집자리(4·5호)의 연대 측정 결과의 보정값은 기원전 11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둥근 덧띠 토기가 나온 늦은 시기의 집자리 72기는 말 안장 모양의 구릉과 구릉 마루 주변의 비탈에 분포한다. 파괴가 심해 평면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나 주로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 타원형으로 추정된다. 특히 세장방형 집자리(13호)가 확인된 점이 주목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이 대부분이나 일부 구덩식도 확인된다. 특징적인 것은 66·68·69·70·72호에서 비탈 위쪽의 벽면에 점토를 덧붙여 만든 것으로, 이른바 ‘벽부식 화덕 자리(壁附式 爐址)’로 불리는 벽 화덕 자리가 확인된 점이다. 이러한 화덕은 중국의 신민 궁주둔 허우산(新民 公主屯 后山) 유적을 비롯해 중부 지방에서는 보령 교성리와 양주 수석리 유적 등에서 조사된 바 있다. 이밖에 점토를 덧붙이지 않았으나 화덕 자리가 벽에 붙어서 위치하는 것도 일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중앙 기둥 구멍과 벽 기둥 구멍으로 구분되나 대부분 정연하지 못하다. 벽 도랑은 13·26·63호에서 비탈 위쪽의 긴 벽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유물은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긴 목 검은 간 토기(黑陶長頸壺),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손잡이 항아리(把手附壺), 가락바퀴, 그물추, 슴베 없는 간 돌살촉, 갈돌(碾石棒),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나왔다.
반제리 유적의 늦은 시기 집자리 사이에서는 중복 관계가 확인되어 반복적으로 점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집자리에서 얻어진 절대 연대의 보정값은 기원전 7~5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덧띠 토기가 나온 무덤 3기는 구릉의 비탈에서 확인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주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무덤의 크기는 길이 1.83~2.17m, 너비 0.59~0.75m, 깊이 0.31~0.43m이다. 나무널을 돌로 뒤채움한 형식으로, 나무널의 크기는 2호가 길이 1.58m, 너비 0.4m 이다.
유물은 1호와 2호에서 각각 덧띠 토기 1점과 긴 목 검은 간 토기 1점이, 3호에서 긴 목 검은 간 토기 1점이 나왔다. 이밖에 1호에서 나온 토제 가락바퀴 1점도 주목된다.
의례 공간으로 추정되는 환구는 매봉산 봉우리 아래(해발 94~95m)를 머리띠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환구 내부에 해당하는 정상부 평탄면에는 길이 4m, 너비 3m 정도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이 바위는 환구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제단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환구는 약 지름 38m, 길이 71m, 최대 너비 3m이다. 특히 환구 내 외부에 목책 열 1개소가 확인된 점이 주목된다. 기둥 구멍의 지름은 0.3~0.5m이고 기둥 구멍 사이의 거리는 약 1m이다. 유물은 환구 내부에서 덧띠 토기 및 굽다리 토기 편 등이 나왔다. 또한 바깥 환구로 의심되는 도랑(溝)도 환구 바깥을 돌아가며 발견되었다. 이 도랑의 남은 길이는 24.5m, 너비 0.6m 정도로, 안쪽 환구의 너비에 비해 매우 좁지만 도랑이 환구를 에워싸듯이 돌아가고 있는 점에서 환구와의 관련성은 매우 높다.
이밖에 구릉의 비탈에서 확인된 도랑은 모두 7기이나 대부분 삭평되고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양상을 알기 어렵다. 다만 6호와 7호는 단절되었지만 환구 바깥을 에워싸고 있어 환구를 둘러싼 바깥 환구가 삭평되고 남은 부분일 수 있고, 남사면의 1호와 2호는 유적의 서쪽 끝에 남아 있는 4호 및 3호와 각각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반대쪽 비탈에는 5호 도랑이 확인된다.
주목되는 점은 무덤은 모두 1호와 2호 도랑 바깥에 있고 집자리는 대부분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는 구릉 전체를 둘러싼 다중 환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유물은 내부에서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손잡이 조각, 검은 간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안성 반제리 유적에서 확인된 둥근 덧띠 토기 시기의 대규모 유적은 당시 마을 공동체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환구는 제천(祭天) 의례 또는 농경 의례 등을 행하는 의례 시설로 주목된다.
이미지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4년 06월 15일~2005년 01월 26일 | 안성 반제리유적 | 2007 | 중원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중원문화재연구원. (2007). 안성 반제리유적. https://www.riss.kr/link?id=M110897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