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048: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04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04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박곡리 유적
| 이칭별칭=고령 박곡리 유적
| 이칭별칭=고령 박곡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구덩이]],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간 돌살촉]]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구덩이]],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돌도끼]], [[격지]],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간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광명
| 집필자=김광명
| 조성 시기=기원전 9세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설명==
==설명==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에 위치한다. 동고령 일반 산업 단지 건립에 앞서 2015~2016년 8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은 1~3·8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5기, [[고인돌|고인돌]] 및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 3기, [[구덩이|구덩이]] 5기, [[구|도랑(溝)]] 10기, [[물길|물길(河道)]] 1기, [[부석|부석(敷石)]]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남북으로 흐르는 낙동강 북서쪽 외곡산 남동쪽의 능선 중 사이에 있는 박실골과 구릉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에 위치한다. 동고령 일반 산업 단지 건립에 앞서 2015~2016년 8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은 1~3·8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5기, [[고인돌|고인돌]] 및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 3기, [[구덩이|구덩이]] 5기, [[구|도랑(溝)]] 10기, 물길(河道) 1기, 부석(敷石)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남북으로 흐르는 낙동강 북서쪽 외곡산 남동쪽의 능선 중 사이에 있는 박실골과 구릉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집자리는 원형 3기, (장)방형 2기가 확인되었다. 원형의 내부 시설은 가운데에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쪽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개씩 확인되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다. 방형은 집안 가운데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만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손잡이|손잡이(把手)]], [[돌도끼|돌도끼(石斧)]], [[격지|격지]],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원형 3기, (장)방형 2기가 확인되었다. 원형의 내부 시설은 가운데에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쪽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개씩 확인되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다. 방형은 집안 가운데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만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손잡이|손잡이(把手)]], [[돌도끼|돌도끼(石斧)]], [[격지|격지]],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만 2기가 확인되었고, 매장 주체부 2기가 확인되었다. 1구역 2호 고인돌은 [[덮개식고인돌|덮개식 고인돌]]로, 덮개돌은 [[역암재|역암재]]이고,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돌덧널형(石槨形)]]이다. 매장 주체부는 길이 0.2~0.5m의 [[강돌|강돌(川石)]]을 사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판돌|판돌(板石)]]을 깔아 [[시상|주검 받침(屍床)]]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동쪽 긴 벽 쪽에서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2점이 출토되었다. 8구역 고인돌의 덮개돌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묘역|묘역(墓域)]] 시설 일부와 매장 주체부만 확인되었다. 특히 묘역은 매장 주체부 동쪽으로 약 1.5m 떨어진 지점에서 일부만 확인되었는데, 묘역의 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매장 주체부 가운데 남쪽 긴 벽 쪽에서 [[간돌검|간 돌검]] 1점, [[간돌살촉|간 돌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만 2기가 확인되었고, 매장 주체부 2기가 확인되었다. 1구역 2호 고인돌은 [[덮개식고인돌|덮개식 고인돌]]로, 덮개돌은 역암재이고,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石槨形)이다. 매장 주체부는 길이 0.2~0.5m의 강돌(川石)을 사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판돌(板石)을 깔아 [[시상|주검 받침(屍床)]]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동쪽 긴 벽 쪽에서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2점이 출토되었다. 8구역 고인돌의 덮개돌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묘역|묘역(墓域)]] 시설 일부와 매장 주체부만 확인되었다. 특히 묘역은 매장 주체부 동쪽으로 약 1.5m 떨어진 지점에서 일부만 확인되었는데, 묘역의 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매장 주체부 가운데 남쪽 긴 벽 쪽에서 [[간돌검|간 돌검]] 1점, [[간돌살촉|간 돌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도랑은 2구역 1호가 길이 2~3.4m로 구획되었고, 3~6호는 약 6m 간격을 두고 구획되었으며, 모두 물길을 향하고 있어 배수가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즉, 경작(耕作)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획한 것으로 판단된다.
도랑은 2구역 1호가 길이 2~3.4m로 구획되었고, 3~6호는 약 6m 간격을 두고 구획되었으며, 모두 물길을 향하고 있어 배수가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즉, 경작(耕作)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획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의 연대는 2구역 1호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480±30 BP~1170±30 BP로 기원전 780년~480년으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곡부 초입에 고인돌을 축조하고, 주변으로 집자리와 경작지를 조성하였다. 유적에서 서쪽으로 600m 떨어져 동일한 입지에 [[고령박곡리고인돌군|박곡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집단이 더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연대는 2구역 1호 집자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480±30 BP~1170±30 BP로 기원전 780년~480년으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곡부 초입에 고인돌을 축조하고, 주변으로 집자리와 경작지를 조성하였다. 유적에서 서쪽으로 600m 떨어져 동일한 입지에 [[고령박곡리고인돌군|박곡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집단이 더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조사 || 2015년 ~ 2016년 || 고령 박곡리 유적 || 2018 || 삼한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삼한문화재연구원. (2018). <i>고령 박곡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540300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0 기준 최신판


박곡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고령 박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구덩이,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돌도끼, 격지,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간 돌살촉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광명



설명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99(8구역), 130-1(1구역), 154-6(2구역), 173-1(3구역) 일원에 위치한다. 동고령 일반 산업 단지 건립에 앞서 2015~2016년 8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적은 1~3·8구역에서 집자리 5기, 고인돌매장 주체부 3기, 구덩이 5기, 도랑(溝) 10기, 물길(河道) 1기, 부석(敷石)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남북으로 흐르는 낙동강 북서쪽 외곡산 남동쪽의 능선 중 사이에 있는 박실골과 구릉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집자리는 원형 3기, (장)방형 2기가 확인되었다. 원형의 내부 시설은 가운데에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쪽에 기둥 구멍이 각각 1개씩 확인되는 송국리식 집자리다. 방형은 집안 가운데 길쭉하게 원형 구덩이만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손잡이(把手), 돌도끼(石斧), 격지,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만 2기가 확인되었고, 매장 주체부 2기가 확인되었다. 1구역 2호 고인돌은 덮개식 고인돌로, 덮개돌은 역암재이고, 매장 주체부는 돌덧널형(石槨形)이다. 매장 주체부는 길이 0.2~0.5m의 강돌(川石)을 사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에는 판돌(板石)을 깔아 주검 받침(屍床)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동쪽 긴 벽 쪽에서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2점이 출토되었다. 8구역 고인돌의 덮개돌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묘역(墓域) 시설 일부와 매장 주체부만 확인되었다. 특히 묘역은 매장 주체부 동쪽으로 약 1.5m 떨어진 지점에서 일부만 확인되었는데, 묘역의 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매장 주체부 가운데 남쪽 긴 벽 쪽에서 간 돌검 1점, 간 돌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조성 시기는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도랑은 2구역 1호가 길이 2~3.4m로 구획되었고, 3~6호는 약 6m 간격을 두고 구획되었으며, 모두 물길을 향하고 있어 배수가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즉, 경작(耕作)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구획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의 연대는 2구역 1호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480±30 BP~1170±30 BP로 기원전 780년~480년으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곡부 초입에 고인돌을 축조하고, 주변으로 집자리와 경작지를 조성하였다. 유적에서 서쪽으로 600m 떨어져 동일한 입지에 박곡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집단이 더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조사 2015년 ~ 2016년 고령 박곡리 유적 2018 삼한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