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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정보 | {{개념정보 | ||
| 한글표제어=목책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관련 유적=부여 송국리유적, 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서천 도삼리유적, 안성 반제리유적 | |||
| 키워드=[[방어 시설]], [[구획 시설]], [[덧띠 토기 문화]], [[환호]], [[토루]], [[녹채]] | | 키워드=[[방어 시설]], [[구획 시설]], [[덧띠 토기 문화]], [[환호]], [[토루]], [[녹채]]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형원 | | 집필자=이형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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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평리옥방유적|진주 대평리 옥방 1·7지구 유적]]의 환호 4기 가운데 3호 및 4호에서는 안쪽에 목책 열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구간이 확인되었다. 또한, 옥방 1·7 지구 3호 및 옥방 4지구의 이중(二重) 환호는 안쪽과 바깥쪽 환호 사이에 토루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상정되고 있는데, 이는 방어 시설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서천도삼리유적|서천 도삼리 유적]]과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의 목책 열은 방어 시설보다는 마을의 경계나 구획 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진주대평리옥방유적|진주 대평리 옥방 1·7지구 유적]]의 환호 4기 가운데 3호 및 4호에서는 안쪽에 목책 열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구간이 확인되었다. 또한, 옥방 1·7 지구 3호 및 옥방 4지구의 이중(二重) 환호는 안쪽과 바깥쪽 환호 사이에 토루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상정되고 있는데, 이는 방어 시설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서천도삼리유적|서천 도삼리 유적]]과 [[안성반제리유적|안성 반제리 유적]]의 목책 열은 방어 시설보다는 마을의 경계나 구획 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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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진주_대평리_옥방_유적_1지구_목책.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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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국립공주박물관. (1993). <i>송국리Ⅴ-목책(1)</i>. https://www.excavation.co.kr/bookLi | |||
* 이형원. (2018). 청동기시대 중심취락의 지역적 양상–송국리유형 시기의 대규모 기념물을 중심으로–. <i>중부고고학회 학술발표회, 2018(2)</i>, 99–124. https://www.riss.kr/link?id=A108265924 | |||
* 최종규. (2002). <i>옥방환호</i>. | |||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1). <i>송국리Ⅶ</i>. https://www.riss.kr/link?id=M13182847 | |||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3). <i>송국리Ⅷ</i>. https://www.riss.kr/link?id=M13543735 | |||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4). <i>송국리Ⅸ</i>. https://www.riss.kr/link?id=M14819259 | |||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6). <i>송국리Ⅹ</i>. https://www.riss.kr/link?id=M14083262 | |||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7). <i>송국리Ⅺ</i>. https://www.riss.kr/link?id=M147906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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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부여 송국리유적, 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서천 도삼리유적, 안성 반제리유적 |
| 키워드 | 방어 시설, 구획 시설, 덧띠 토기 문화, 환호, 토루, 녹채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형원 |
설명
목책(木柵)은 방어 시설의 하나로 마을의 주위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기둥을 박아 서로 연결하여 만든 담이다. 청동기 시대의 목책은 기원전 9~6세기의 송국리 문화 시기와 기원전 5~3세기의 덧띠 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시기에 주로 축조되었다. 목책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목책과 환호(環濠)가 함께 쓰이기도 한다. 또한 목책, 환호와 더불어 토루(土壘)도 함께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목책은 방어 시설 이외에 마을의 경계나 구획 시설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목책으로만 방어 시설을 조성한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2년과 1993년의 발굴 조사에서 확인한 목책은 기둥 구멍이 방형과 원형이었으며 대형 목책 구멍의 경우 주로 폭 1.5m 전후, 깊이 1m 전후이고 기둥 사이의 간격은 1~2m였다. 목책으로 둘러싸인 송국리 마을 유적의 전체 면적은 61만 ㎡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 견해도 있다. 2008년 이후의 송국리 유적 발굴 조사에서 목책으로 보고된 유구 가운데 일부는 방어용의 목책이 아니라 대형의 지상 건물, 또는 특수한 성격의 시설물로 밝혀졌다. 성격이 불분명하지만 의례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수 시설물은 3m 간격을 갖는 두 줄의 기둥 구멍들이 200m 이상 늘어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발굴 성과에도 송국리 유적에 방어 시설인 목책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형 지상 건물과 의례용 특수 시설물 이외에도 목책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둥 구멍들이 있으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나뭇가지나 나무 토막을 사슴뿔 모양으로 얽거나 얼기설기 땅에 박아 놓아서 만든 시설물인 녹채(鹿砦)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주 대평리 옥방 1·7지구 유적의 환호 4기 가운데 3호 및 4호에서는 안쪽에 목책 열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구간이 확인되었다. 또한, 옥방 1·7 지구 3호 및 옥방 4지구의 이중(二重) 환호는 안쪽과 바깥쪽 환호 사이에 토루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상정되고 있는데, 이는 방어 시설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서천 도삼리 유적과 안성 반제리 유적의 목책 열은 방어 시설보다는 마을의 경계나 구획 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지
참고문헌
- 국립공주박물관. (1993). 송국리Ⅴ-목책(1). https://www.excavation.co.kr/bookLi
- 이형원. (2018). 청동기시대 중심취락의 지역적 양상–송국리유형 시기의 대규모 기념물을 중심으로–. 중부고고학회 학술발표회, 2018(2), 99–124. https://www.riss.kr/link?id=A108265924
- 최종규. (2002). 옥방환호.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1). 송국리Ⅶ. https://www.riss.kr/link?id=M13182847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3). 송국리Ⅷ. https://www.riss.kr/link?id=M13543735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4). 송국리Ⅸ. https://www.riss.kr/link?id=M14819259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6). 송국리Ⅹ. https://www.riss.kr/link?id=M14083262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고고학연구소. (2017). 송국리Ⅺ. https://www.riss.kr/link?id=M147906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