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976: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0976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0976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모량리·방내리 유적 | | 한글표제어=모량리·방내리 유적 | ||
| 이칭별칭=경주 모량리·방내리 유적 | | 이칭별칭=경주 모량리·방내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 8번째 줄: | 8번째 줄: | ||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 |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 | ||
| 성격=복합유적 | | 성격=복합유적 | ||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검단리식 토기 |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 [[숫돌]], [[갈판]], [[대롱옥]], [[검단리식 토기]]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17번째 줄: | 17번째 줄: |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에 위치한다. 2010~2011년 울산-포항 간 복선 전철 공사에 앞서 모량리 530-10 일대를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3기, [[구덩이|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경부 고속 철도와 동해 남부선 연결선 공사로 2012~2014년 방내리 1287-6, 모량리 211-18, 527, 528-12 일대를 조사하여(모량·방내리 도시 유적) 집자리 33기, 구덩이 1기 및 통일 신라~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반경 900m에 분포한다. 건천읍 일대는 경북 내륙에서 이어지는 교통로가 지나는 길목으로 경주의 서쪽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유적은 단석산(해발 827m)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과 충적지에 입지한다.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에 위치한다. 2010~2011년 울산-포항 간 복선 전철 공사에 앞서 모량리 530-10 일대를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3기, [[구덩이|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경부 고속 철도와 동해 남부선 연결선 공사로 2012~2014년 방내리 1287-6, 모량리 211-18, 527, 528-12 일대를 조사하여(모량·방내리 도시 유적) 집자리 33기, 구덩이 1기 및 통일 신라~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반경 900m에 분포한다. 건천읍 일대는 경북 내륙에서 이어지는 교통로가 지나는 길목으로 경주의 서쪽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유적은 단석산(해발 827m)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과 충적지에 입지한다. | ||
모량리 530-10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3.6~4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하거나 그대로 사용하였다. 2호는 중앙에 0.1~0.3m 크기의 | 모량리 530-10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3.6~4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하거나 그대로 사용하였다. 2호는 중앙에 0.1~0.3m 크기의 깬돌과 강돌을 쌓은 [[돌더미|돌더미(集石)]]가 확인되었다. [[기둥구멍|기둥 구멍]]은 벽 모서리에 배치되는 4주식(柱式)이고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집자리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벽 도랑은 ‘ㄷ’자 모양이며, 너비 0.05m, 깊이 0.02m이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모서리에 설치되는데 [[벽도랑|벽 도랑]]과 이어지지 않고 0.1m 정도의 높이차를 보인다. 출토 유물은 2호에서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항아리, 석기 [[격지|격지(薄片)]], 3호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 ||
모량·방내리 도시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 비탈면에 27기, 충적지에 6기가 위치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수의 집자리가 분포하지만, 중복되지는 않았다. 경사면 아래가 유실되어 남아 있는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2.2~4.3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整地)한 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지만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2~3기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배치에 정형성이 없다. 벽 도랑은 대부분 확인되지만 내부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는다. | 모량·방내리 도시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 비탈면에 27기, 충적지에 6기가 위치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수의 집자리가 분포하지만, 중복되지는 않았다. 경사면 아래가 유실되어 남아 있는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2.2~4.3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整地)한 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지만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2~3기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배치에 정형성이 없다. 벽 도랑은 대부분 확인되지만 내부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는다. | ||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작은 바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돌살촉|돌살촉]],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 [[숫돌|숫돌(砥石)]], [[갈판|갈판]],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주요 교통로에 반경 900m에 걸쳐 대규모 마을 자료를 보여준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식토기단계|검단리식 토기 |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작은 바리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돌살촉|돌살촉]],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도끼|돌도끼]], [[숫돌|숫돌(砥石)]], [[갈판|갈판]],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주요 교통로에 반경 900m에 걸쳐 대규모 마을 자료를 보여준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식토기단계|검단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된다. | ||
==조사정보== | |||
{|class="listtable" | |||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 |||
| 조사 || 2010년 ~ 2011년 || 경주 모량리 530번지유적 || 2011 || 영남문화재연구원 | |||
|- | |||
| 조사 || 2012년 ~ 2014년 || 경주 모량·방내리 도시유적 || 2015 || 영남문화재연구원 | |||
|} | |||
==참고문헌== | |||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1). <i>경주 모량리 530번지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734759 | |||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5). <i>경주 모량·방내리 도시유적</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모량리·방내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 숫돌, 갈판, 대롱옥, 검단리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30-10, 방내리 1287-6 일원에 위치한다. 2010~2011년 울산-포항 간 복선 전철 공사에 앞서 모량리 530-10 일대를 조사하여, 집자리 3기, 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경부 고속 철도와 동해 남부선 연결선 공사로 2012~2014년 방내리 1287-6, 모량리 211-18, 527, 528-12 일대를 조사하여(모량·방내리 도시 유적) 집자리 33기, 구덩이 1기 및 통일 신라~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반경 900m에 분포한다. 건천읍 일대는 경북 내륙에서 이어지는 교통로가 지나는 길목으로 경주의 서쪽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유적은 단석산(해발 827m)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과 충적지에 입지한다.
모량리 530-10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3.6~4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하거나 그대로 사용하였다. 2호는 중앙에 0.1~0.3m 크기의 깬돌과 강돌을 쌓은 돌더미(集石)가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벽 모서리에 배치되는 4주식(柱式)이고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집자리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벽 도랑은 ‘ㄷ’자 모양이며, 너비 0.05m, 깊이 0.02m이다.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모서리에 설치되는데 벽 도랑과 이어지지 않고 0.1m 정도의 높이차를 보인다. 출토 유물은 2호에서 바리 토기(鉢形土器), 민무늬 토기 편, 항아리, 석기 격지(薄片), 3호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모량·방내리 도시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 비탈면에 27기, 충적지에 6기가 위치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수의 집자리가 분포하지만, 중복되지는 않았다. 경사면 아래가 유실되어 남아 있는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형태는 장방형,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2.2~4.3m로 소형이다. 바닥은 맨땅을 정지(整地)한 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지만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2~3기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배치에 정형성이 없다. 벽 도랑은 대부분 확인되지만 내부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작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돌살촉, 반달 돌칼, 돌도끼, 숫돌(砥石), 갈판, 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주요 교통로에 반경 900m에 걸쳐 대규모 마을 자료를 보여준다.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검단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된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조사 | 2010년 ~ 2011년 | 경주 모량리 530번지유적 | 2011 | 영남문화재연구원 |
| 조사 | 2012년 ~ 2014년 | 경주 모량·방내리 도시유적 | 2015 | 영남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1). 경주 모량리 530번지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734759
- 영남문화재연구원. (2015). 경주 모량·방내리 도시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