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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리 12지점 유적은 동쪽 및 북동쪽으로 연이어 분포하는 명암리 곱터골 유적과 함께 동일 취락을 형성하는 대규모 취락으로 구릉 정상부 평탄면에 형성된 대형 집자리를 중심으로 통합된 집자리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명암리 12지점 유적은 동쪽 및 북동쪽으로 연이어 분포하는 명암리 곱터골 유적과 함께 동일 취락을 형성하는 대규모 취락으로 구릉 정상부 평탄면에 형성된 대형 집자리를 중심으로 통합된 집자리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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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11). <i>아산 명암리 유적 12지점</i>.  https://www.riss.kr/link?id=M1282776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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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명암리 12지점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아산 명암리 12지점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129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휴암리식 집자리, 반송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나건주



설명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1294 일원에 위치한다. 탕정 T/C 일반 산업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09년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동쪽 배후의 산지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갈라져 내려온 구릉 선단의 정상부 평탄면(해발 79.5m)과 남서쪽 방향으로 늘어선 능선 지대에 위치한다. 동일 구릉의 동쪽과 동북쪽으로 명암리 곱터골 유적 2지점이 위치하여 본 12지점과 함께 단일 취락을 구성한다. 12지점에서는 집자리 28기, 구덩이 19기, 도랑(溝) 5기 등이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 23기와 말각 방형 5기이다.

장방형 집자리의 규모는 길이 5.4~17.2m, 너비 2.25~3.64m이며, 장단비는 2.09:1~5.6:1, 바닥면적은 13~59.7㎡ 정도이다. 가장 규모가 큰 7호는 길이 17.2m, 너비 3.46m, 깊이 0.89m이며 7개의 화덕 자리가 확인된다. 11호는 유실이 심하지만 남은 길이가 12.06m이며, 화덕 자리의 위치로 보아 최소 14m 이상의 규모로 추정된다.

장방형 집자리 1~14호는 구릉 선단에 형성된 정상부 평탄면을 에워싼 형상으로 분포하는데 등고선을 따라 ‘U’자 모양으로 열을 지어 배치된 모습을 보인다. 15~18호는 구릉 선단부 일대에서 동쪽으로 63m 정도 떨어진 남서 방향의 능선부에 분포하며 명암리 곱터골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와 함께 집자리군을 형성한다. 이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46m 정도 떨어진 능선부에 19호가 위치하며, 77m 떨어진 구릉의 서쪽 사면부에 20·21호가 자리한다. 19호는 명암리 곱터골 유적과 동일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20호와 21호는 곡부를 사이에 두고 건너 편에 형성된 별도의 구릉에 위치한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 사발 모양 토기, 얕은 바리 토기, 짧은 목 항아리, 컵 모양 토기, 굽다리 토기 등의 민무늬 토기 기종과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민무늬 토기에는 다수의 구멍무늬, 골아가리와 함께 일부 짧은 빗금무늬와 ‘X’자 무늬가 새겨진 것이 확인된다. 석기류는 피 홈 자루 간 돌검(有血溝有柄式磨製石劍), 슴베 없는 돌살촉, 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양날 돌도끼,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石斧), 돌대팻날, 배모양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갈판, 다양한 형태의 활석제 석제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말각 방형 집자리 중 5기는 타원형 구덩이에 2주식 기둥 구멍이 결합된 휴암리식인 24호와 기둥 구멍과 중앙 구덩이가 분리된 반송리식인 25~28호로 구분된다. 24호는 길이 5.03m, 너비 4.86m이며, 나머지는 길이 3~4.4m, 너비 2.85~3.68m 정도로 휴암리식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휴암리식인 24호는 구릉 정상부 평탄면에 위치하며, 반송리식인 25~27호는 24호의 남쪽 사면부에 위치한다. 28호는 집자리군에서 동쪽으로 34m 떨어져 단독으로 위치한다. 24호에서는 깊은 바리 토기와 다수의 민무늬 토기 바닥편과 함께 숫돌(砥石)과 홈자귀, 25~28호에서는 바리 토기, 사발 모양 토기(碗形土器)와 함께 구멍무늬 토기, 턱 슴베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 19기 중 13·14·17호는 연구자에 따라 함정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13, 17호는 각각 8, 3호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되었고 17호는 집자리군에 분포하며 나머지 2기도 곡저로 이어지는 사면 하단부에 위치하여 수렵 외의 용도일 가능성도 있다. 이 외에 다른 구덩이는 평면 형태와 깊이 등이 매우 다양하며, 일부는 바닥에 화덕이 설치된 것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다양한 기능의 옥외 시설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바리 토기, 얕은 바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와 함께 슴베 없는 돌살촉, 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돌대팻날, 숫돌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5기가 조사된 도랑은 집자리와 구덩이 외곽의 사면 하단에 분포한다. 내부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 바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갈판, 반달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명암리 12지점 유적은 동쪽 및 북동쪽으로 연이어 분포하는 명암리 곱터골 유적과 함께 동일 취락을 형성하는 대규모 취락으로 구릉 정상부 평탄면에 형성된 대형 집자리를 중심으로 통합된 집자리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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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