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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i>돌낫</i>.
* 水道稔夫. (1985). <i>石鎌</i>. 雄山閣.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청동기 시대 돌낫
기본 정보
동의어 석겸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곡성 형정리 고인돌
키워드 나무 자루,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돌낫(石鎌)은 날에 직교하게 나무 자루를 끼워서 사용하는 수확구로서 오늘날의 낫과 유사하다. 반달 돌칼(半月形石刀)에 비해 출토량은 적지만, 한반도 전역에서 고르게 출토된다.

날(刃部)은 양쪽에서 마연하였는데 안쪽으로 조금 휘어져 들어가 있어 몸쪽으로 끌어당기듯이 수확물을 베어내는데 알맞다. 날의 반대쪽(背部)은 앞쪽 끝 부분으로 가면서 아래쪽으로 휘어지고, 자루가 착장되는 부분은 단면 장방형을 이룬다. 날은 치밀하게 마연되었으며, 몸체와 자루를 착장하는 부분에는 제작할 때 타격흔(打擊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길이는 20~25㎝ 정도로서 반달 돌칼에 비하면 대형이지만, 상대적으로 두께는 1㎝ 정도로서 매우 얇다. 석재(石材)를 길고 얇게 떼어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숙련된 제작 기술을 필요로 한다.

곡성 현정리 고인돌에서 껴묻거리로 발견된 예도 있지만 대부분 집자리 내에서 출토되는 실생활용의 수확구이다. 용도에 대해서는 수확 이외에 잡초 제거, 가지치기, 목재 가공, 수확 후의 줄기 절단 등이 상정된 바있다. 역삼동·흔암리 유형 단계부터 송국리 유형 단계까지 뚜렷한 형태 변화는 보이지 않으며, 이후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는 크기가 작아진다.

이미지

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돌낫.
  • 水道稔夫. (1985). 石鎌. 雄山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