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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승옥. (2001). 금강유역 송국리형 묘제의 연구. <i>한국고고학보, 45</i>, 45-74. https://www.riss.kr/link?id=A10530172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청동기 시대 독무덤
기본 정보
동의어 독널무덤, 옹관묘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금강 유역
관련 정보
유적 익산 석천리 유적, 논산 마전리 유적, 익산 화산리 유적, 익산 무형리 고분, 부여 송국리 유적, 공주 남산리 유적, 공주 산의리 유적, 공주 송학리 고분, 공주 안영리 유적, 군산 아동리 유적, 곡성 연화리 유적, 거창 대야리 유적
키워드 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토기, 바리모양토기, 대롱옥,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금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승옥



설명

고인돌,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돌널무덤(石棺墓)과 함께 한국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 중의 하나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독(甕)을 사용하여 주검(屍身)이나 뼈를 묻는 무덤 양식이다. 토기의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유아 전용의 무덤이거나 성인의 시체를 썩혀 육탈(肉脫)된 유골을 안치(洗骨葬)하기 위한 무덤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의 독널은 주로 송국리식 토기(일상 용기)를 사용하지만 익산 석천리 유적에서 발견된 독널은 직립 구연(直立口緣)의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를 사용하여 주목된다. 독널무덤은 전통적으로 독의 아가리를 납작한 깬돌(割石)이나 판돌(板石)로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독의 상부를 토기 편이나 소형의 바리 토기(鉢形土器)로 덮는 구조가 발견되고 있다. 후자의 예로서는 논산 마전리 6호와 22호, 익산 화산리 B1호와 B2호, 익산 무형리 유적에서 지표 수습된 독널을 들 수 있다. 독널의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구멍은 배수(排水)나 방습(防濕), 혹은 의례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독무덤은 독널의 안치 방법에 따라 독을 수직으로 세우는 직치(直置)와 비스듬히 눕혀서 안치하는 사치(斜置)로 나눌 수 있다. 토기로 구연부를 막는 독무덤은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로 보는 한 모두 사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납작한 돌로 막는 독무덤의 안치 방법은 직치와 사치가 비슷한 비율로 발견된다.

독무덤은 부여 송국리, 공주 남산리·산의리·송학리·안영리, 익산 석천리·무형리, 논산 마전리, 군산 아동리 유적 등 주로 금강 유역 일대에서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등과 함께 발견되지만 이외에도 곡성 연화리, 거창 대야리 유적 등지에서도 확인된다. 껴묻거리는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간헐적으로 대롱옥(管玉)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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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