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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대곡동 고인돌군 | |||
| 이칭별칭=인천 대곡동 고인돌군, 인천 대곡동 지석묘군 | | 이칭별칭=인천 대곡동 고인돌군, 인천 대곡동 지석묘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인천광역시 서구 대곡동 147 일원 | |||
| 성격=고인돌 | |||
| 키워드=[[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무지석식 고인돌]] | | 키워드=[[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무지석식 고인돌]]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구준모 | | 집필자=구준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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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질의 분석 결과, 덮개돌로 사용한 암석은 흑운모 편마암이나 화강암질 편마암을 사용하였다. 이는 대곡동 일대에는 없는 암석이며, 동편으로 2km 이상 떨어진 북변동 장릉산에서 채석해 왔을 가능성이 제시되어 고인돌의 축조와 관련하여 경관을 검토하는데 참고가 된다. | 암질의 분석 결과, 덮개돌로 사용한 암석은 흑운모 편마암이나 화강암질 편마암을 사용하였다. 이는 대곡동 일대에는 없는 암석이며, 동편으로 2km 이상 떨어진 북변동 장릉산에서 채석해 왔을 가능성이 제시되어 고인돌의 축조와 관련하여 경관을 검토하는데 참고가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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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인천_대곡동_고인돌군_E군_3호_고인돌.jp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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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산 || 인천광역시 기념물 || 대곡동 고인돌군 (大谷洞 고인돌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300330000 🔗]</span> | | 국가유산 || 인천광역시 기념물 || 대곡동 고인돌군 (大谷洞 고인돌群) || <span class="plainlinks">[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300330000 🔗]</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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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동양고고학연구소. (2001). <i>인천 대곡동 고인돌무덤</i>. | |||
* 인하대학교박물관. (2005). <i>대곡동 지석묘</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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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8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인천 대곡동 고인돌군, 인천 대곡동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대곡동 147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 무지석식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구준모 |
설명
인천광역시 기념물. 인천광역시 서구 대곡동 147 일원에 위치한다. 대곡동 소재 지석묘군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에 지표 조사를 진행하여 고인돌 99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가현산 북쪽 해발 50m 전후의 나지막한 능선 끝자락에 위치하고, 인접하여 김포 마산리 고인돌군과 인천 석모리 고인돌군이 있다. 대곡동 고인돌군은 지형상 5개 군으로 나뉘며 A군에 1기, B군에 6기, C군에 75기, D군에 8기, E군에 9기가 분포한다.
A군은 탁자식(卓子式)인 1호를 중심으로 약 25기의 석재(石材)가 산발적으로 분포하는데 모두 2m 이하의 소형으로 일부는 탁자식 고인돌의 판돌(板石)로 보이는 것도 확인된다. 1호는 남쪽으로 쓰러져 있으며 덮개돌(上石)의 알 구멍(性穴)은 모두 7개가 확인된다. 덮개돌 아래 동‧서‧남쪽 방향의 받침돌(支石) 3개가 깔려 있고 각 받침돌의 길이는 동 1.79m, 서 1.9m, 남 1m이다.
B군은 해발 50m의 가지 능선 말단에 입지한다. 6기 모두 무지석식(無支石式)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은 부정형이거나 길쭉한 형태로 길이 1.4~3.2m, 너비 0.9~2.9m의 크기이며 알 구멍은 1호에 12개, 2호에 4개가 확인된다.
C군은 가현산의 북편 가지 능선 사이 곡간부의 볼록 솟은 얕은 능선(해발 50~80m)에 위치하며, 고인돌은 이 능선마루를 따라 75기가 집중되어 있다. 이 중 대부분이 매몰되거나 주위에 흩어져 파괴된 상태로 보이지만, 알 구멍, 채석흔이 확인되는 12기 외에 덮개돌의 받침돌이나 벽석으로 추정되는 석재와 기타 관련 석재도 다수 확인되어 채석장으로서의 가능성도 제기되며, 일부는 고인돌의 모석(母石)으로 추정된다.
D군의 잔존 형태는 무지석식과 탁자식이 확인되며 2호와 6호는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2호의 덮개돌은 멸실된 것으로 보이지만 하부 구조로 볼 때 원래의 형태는 탁자식으로 추정된다. 하부 구조는 제자리에 박힌 채 세워져 있는 길이 1m 내외의 판돌이 3개, 쓰러진 판돌이 1개 확인되어 무덤방은 길이 2.6m, 너비 1.1m 정도의 대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판돌 바깥 쪽을 깬돌(割石)로 보강한 시설도 확인되었다. 6호도 덮개돌이 소멸된 소형 고인돌의 하부 구조로 2매의 소형 판돌이 남아 있어 원래의 형태는 탁자식으로 추정된다.
E군 고인돌은 1995년 기념물로 지정되어 안내판과 함께 펜스가 둘러져 있다. 탁자식이 7기, 무지석식이 3기이다. 1호는 탁자식으로 북쪽으로 쓰러져 있다. 덮개돌은 마름모꼴 형태인데 길이 4m, 너비 4m로 채석흔이 일부 확인되며 받침돌은 길이 2m, 너비 1.7m 정도이다.
암질의 분석 결과, 덮개돌로 사용한 암석은 흑운모 편마암이나 화강암질 편마암을 사용하였다. 이는 대곡동 일대에는 없는 암석이며, 동편으로 2km 이상 떨어진 북변동 장릉산에서 채석해 왔을 가능성이 제시되어 고인돌의 축조와 관련하여 경관을 검토하는데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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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 국가유산 | 인천광역시 기념물 | 대곡동 고인돌군 (大谷洞 고인돌群) | 🔗 |
참고문헌
- 동양고고학연구소. (2001). 인천 대곡동 고인돌무덤.
- 인하대학교박물관. (2005). 대곡동 지석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