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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1〜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골아가리 구멍무늬가 중심이 되는 시기는 기원전 10~9세기, 골·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가 나온 집자리는 기원전 11세기로 판단된다. 남양리 유적의 집자리는 비교적 넓은 면적의 여러 구릉에 흩어져서 분포하고 있는 양상이며 무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규모가 작은 가족 단위의 집단이 [[화전농경|화전 농경]]을 영위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화전 농경은 농업 방식의 특성상 이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이동성이 강한 정주(定住) 마을로 이해하기도 한다. 다만 화전 농경의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견해는 가설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1〜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골아가리 구멍무늬가 중심이 되는 시기는 기원전 10~9세기, 골·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가 나온 집자리는 기원전 11세기로 판단된다. 남양리 유적의 집자리는 비교적 넓은 면적의 여러 구릉에 흩어져서 분포하고 있는 양상이며 무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규모가 작은 가족 단위의 집단이 [[화전농경|화전 농경]]을 영위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화전 농경은 농업 방식의 특성상 이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이동성이 강한 정주(定住) 마을로 이해하기도 한다. 다만 화전 농경의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견해는 가설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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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정보==
==조사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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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10년~2012년 || 화성 남양동 유적Ⅱ || 2014 || 한백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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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 경기문화재연구원. <i>화성 남양동 유적</i>.
* 한백문화재연구원. <i>화성 남양동 유적Ⅱ</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남양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화성 남양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2057·223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저장 구덩이, 화덕 자리,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골아가리 구멍무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형원



설명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2057·2235 일원에 위치한다. 2005~2007년 화성 남양도시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경기문화재연구원이 남양리 2057 일원을, 2010~2012년 화성 남양 뉴타운 도시 개발 사업으로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그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 구역 1·3·4·5·6 지점과 한백문화재연구원 조사 구역 3·12·13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21기, 구덩이 4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삼국 시대 백제 집자리 13기, 구덩이 6기,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1기, 조선 시대 건물지 15기, 집자리 181기, 구덩이 19기, 가마 6기, 무덤 518기, 소성 유구(燒成遺構), 32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8기, 우물 2기, 도랑(溝) 2기 등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 21기와 구덩이 4기는 도시 개발 지구의 넓은 범위의 발굴 지역 가운데 6개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별로 1~6기가 조사된 점에서 분포 밀도는 낮은 편이다. 지형은 대체로 구릉 능선의 사면부에 해당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이 있으며, 이 가운데 세장방형이 가장 많다. 세장방형 집자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5지점 2호(경기문화재연구원)로서, 잔존 길이 13.3m, 너비 3.4m, 최대 깊이 0.25m이다. 집자리 대부분은 삭평된 부분이 많아서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집자리 안에서는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벽 도랑(璧溝)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장축선 중앙부를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세장방형 집자리는 3~4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화덕 자리의 형태는 원형이며 바닥을 약간 판 구덩식(竪穴式)이 많으며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無施設式)도 있다. 저장 구덩이는 각각의 움집에 2~8개를 시설하였는데 5개 내외가 많다. 저장 구덩이는 긴 벽이나 짧은 벽, 또는 모서리 부분에 ‘ㄱ’자 모양으로 설치하였다. 기둥 구멍은 중앙 기둥 구멍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모두 확인되며 벽쪽 기둥 구멍도 마찬가지다. 벽 도랑은 확인된 집자리가 더 많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은 토기와 석기가 있다. 토기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굽다리 토기 항아리(臺附小壺) 등이 있다. 이 토기들 가운데 아가리(口緣部)에 골아가리 무늬(口脣刻目文),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골아가리 구멍 ‘X’선 무늬(口脣刻目孔列X線文), 골·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口脣刻目二重口緣短斜線文), 구멍무늬(孔列文) 등이 새겨진 것이 있으며, 무늬가 없는 것도 있다. 석기는 간 돌살촉,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刃石斧), 외날 돌도끼(刃石斧), 돌끌(石鑿), 가락바퀴, 갈돌(碾石), 숫돌(砥石) 등이 나왔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와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기원전 11〜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골아가리 구멍무늬가 중심이 되는 시기는 기원전 10~9세기, 골·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가 나온 집자리는 기원전 11세기로 판단된다. 남양리 유적의 집자리는 비교적 넓은 면적의 여러 구릉에 흩어져서 분포하고 있는 양상이며 무덤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규모가 작은 가족 단위의 집단이 화전 농경을 영위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화전 농경은 농업 방식의 특성상 이동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이동성이 강한 정주(定住) 마을로 이해하기도 한다. 다만 화전 농경의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견해는 가설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5년 11월 07일~2007년 05월 18일 화성 남양동 유적 2009 경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0년~2012년 화성 남양동 유적Ⅱ 2014 한백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

  • 경기문화재연구원. 화성 남양동 유적.
  • 한백문화재연구원. 화성 남양동 유적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