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361: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361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dkamaster 600-0361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22번째 줄: 22번째 줄:


청동기 시대 기둥 건물은 남아 있는 기둥의 흔적과 주변 유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성격을 유추할 뿐이다. 기능과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후대의 기록이지만 문헌, 고분 벽화, [[가형토기|집 모양 토기(家形土器)]], 민족지 자료 등을 참조하여야 한다.
청동기 시대 기둥 건물은 남아 있는 기둥의 흔적과 주변 유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성격을 유추할 뿐이다. 기능과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후대의 기록이지만 문헌, 고분 벽화, [[가형토기|집 모양 토기(家形土器)]], 민족지 자료 등을 참조하여야 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사천_이금동_유적_61호_기둥_건물지.jpg
File:사천_이금동_유적_61호_기둥_건물지_복원도.jpg
</gallery>
==참고문헌==
* 김도경. (2000). <i>한국 고대 목조건축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고려대학교.
* 宮本長二郞. (1991). 徒生時代·古墳時代の掘立柱建物. <i>徒生時代の掘立柱建物―本編―</i>. 埋蔵文化財研究会.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기둥 건물
기본 정보
동의어 굴립주 건물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사천 이금동 유적, 하남 미사동 유적
키워드 지면식 건물, 고상식 건물, 기둥 구멍,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윤호필



설명

기둥 건물(堀立柱建物)이란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서 만든 건물로, 바닥면이 지면 또는 지표면보다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굴립주(堀立住)’는 우리나라 말로 ‘백이 기둥’이라 하며, 바닥면의 위치에 따라 지면식(地面式)고상식(高床式)으로 나눌 수 있다. 지면식은 바닥면이 지면에 거의 붙어있는 형식이며, 고상식은 지면과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두 형식은 발굴 조사에서는 대부분 기둥 구멍의 형태만이 확인되기 때문에 그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우나, 지표면에 화덕 자리(爐址), 배수 시설, 바닥 다짐, 불탄 흙(燒土), 목탄 등 인간 생활과 관련된 것이 확인되면 지면식일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증거들이 없거나 지표면이 경사져 있으면 고상식일 가능성이 높다. 또 기둥 구멍의 배치가 정연하게 대칭되지 않으면 지면식일 가능성이 높다.

기둥 건물의 평면 기둥 배치 모양은 주로 방형이나 장방형이다. 지붕은 용마루(棟木), 도리(桁), 들보(梁)로 구성되는데, 도리가 걸치는 방향을 형행(桁行), 들보가 걸치는 방향을 양행(梁行)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평면 행태가 장방형일 경우는 형행이 장축, 양행이 단축이 된다. 건물의 규모는 기둥과 기둥의 간격 수인 주간(柱間)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기둥 건물은 대부분이 고상식으로 추정된다.

고상식 건물은 바닥면이 지면에서 떨어져 있으므로 습기나 동식물로 인한 피해 방지, 침수 예방 등에 유리하다. 고온 다습한 동남아시아나 건조하고 추운 시베리아, 북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며 그 용도도 주거, 창고, 제단(회의 장소), 망루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 우리나라 고상식 건물의 등장은 동남아시아나 중국 남방 지역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남방 전파설과 북방 지역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북방 전파설이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 유적인 하남 미사동 유적(고려대)에서 확인되는 기둥 건물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며 이후 송국리 문화 단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농경 발달과 더불어 대규모의 고인돌군, 환호(環濠) 등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노동 집약적 생산 활동인 농경을 중심으로 취락을 이루게 되고, 이로 인한 잉여 생산물과 자신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구별하기 위해 환호 등의 방어 시설을 축조하게 된다. 기둥 건물은 이러한 취락 속에서 주거, 창고, 망루, 제단, 회의 장소 등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져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상식 건물의 용도는 기둥 구멍의 배치 양상과 주변 유구와의 관계로 추정할 수 있다. 주거와 창고는 사실 형태상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우나 주변에서 확인되는 유구들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즉, 주변에 움집자리(竪穴住居址)가 많이 분포하거나 움집자리와 세트 관계를 이루고 있으면 창고의 기능일 가능성이 높으며 주변에 다른 움집이 없이 굴립주만 분포하는 것은 주거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된 많은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세트를 이루거나 집자리에 비해 수가 적은 점으로 보아 창고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망루는 규모가 작고 기둥 구멍의 배치 형태가 방형을 이루며, 취락에서도 높은 곳이나 환호 주변에서 확인된다. 제단이나 공공 집회소는 다른 기둥 건물에 비해 규모가 크고 위치도 광장이나 무덤군 주변에 위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단이나 공공 집회소의 대표적인 예는 사천 이금동 유적에서 조사된 대형 기둥 건물이다.

청동기 시대 기둥 건물은 남아 있는 기둥의 흔적과 주변 유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성격을 유추할 뿐이다. 기능과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후대의 기록이지만 문헌, 고분 벽화, 집 모양 토기(家形土器), 민족지 자료 등을 참조하여야 한다.

이미지

참고문헌

  • 김도경. (2000). 한국 고대 목조건축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박사 학위 논문). 고려대학교.
  • 宮本長二郞. (1991). 徒生時代·古墳時代の掘立柱建物. 徒生時代の掘立柱建物―本編―. 埋蔵文化財研究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