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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곡옥|굽은옥(曲玉)]],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등이다. 유적의 시기는 [[밀양가인리유적|밀양 가인리]], [[양산소토리유적|양산 소토리 유적]] 유물과 비교하여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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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8). <i>밀양 금포리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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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금포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밀양 금포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100-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움무덤, 송국리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100-11 일원에 위치한다. 밀양 부곡-수산 간 도로 확장에 앞서 2005·2006년 조사하여, 고인돌 4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5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움무덤(土壙墓)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45.7m의 저산성 구릉의 남사면에 입지하며, 무덤은 등고선과 나란하게 열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은 약 10m 범위 내에 4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돌뚜껑움무덤과 돌널무덤이 분포한다.

고인돌은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1호는 원형 묘역, 4호는 장방형 묘역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상태는 양호하지 못하다. 고인돌이 위치하는 곳은 구릉 사면부로 경사가 심하여 뚜껑돌(蓋石) 상부를 돌을 쌓고 성토하여 수평을 맞춘 후 묘역과 덮개돌(上石)을 설치하였다. 고인돌의 무덤방(埋葬主體部)은 돌널과 움으로 구분되며, 1·2호는 널(木棺)을 사용하였다. 3호의 무덤방은 돌널 내에 점판암계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ㅍ’자 모양으로 다시 돌널을 만들고 동쪽 짧은 벽 쪽에 붉은 간 토기를 부장하였다. 바깥의 돌널은 남쪽 긴 벽과 서쪽 짧은 벽에만 벽석(壁石)을 축조하였는데, 남쪽 긴 벽은 4~5단으로 깬돌(割石)을 쌓았으며, 짧은 벽은 1매의 판돌을 세워서 축조하였다. 돌뚜껑움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1단 또는 2단으로 파고, 뚜껑돌은 깬돌을 이용였다. 무덤 구덩이 내부에는 널을 안치한 경우와 시신을 그대로 안치한 경우로 구분된다. 도랑(溝)은 구릉 말단부에 동서 방향으로 확인되며, 구릉 상부의 무덤군을 감싸듯이 배치되어 묘역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굽은옥(曲玉), 민무늬 토기 편 등이다. 유적의 시기는 밀양 가인리, 양산 소토리 유적 유물과 비교하여 송국리 단계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8). 밀양 금포리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