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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광평리 유적 | |||
| 이칭별칭=안동 광평리 유적 | | 이칭별칭=안동 광평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 509 | |||
| 성격=저수시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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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김도헌 | | 집필자=김도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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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 시설은 저수지(貯水池)인지 보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수리 시설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출토 사례가 드문 청동기 시대의 나무 연장과 농기구, 벼 껍질이 출토되어 농경 문화를 이해하는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출토된 토기는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檢丹)]]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영남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의 확산과 융합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저수 시설은 저수지(貯水池)인지 보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수리 시설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출토 사례가 드문 청동기 시대의 나무 연장과 농기구, 벼 껍질이 출토되어 농경 문화를 이해하는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출토된 토기는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檢丹)]]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영남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의 확산과 융합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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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노중국. (2010). 한국고대의 수리시설과 농경에 대한 몇 가지 검토. 한국고고환경연구소(편), <i>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i>(pp.11-50). 서경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2141992 | |||
* 동양대학교박물관. (2010). <i>안동저전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5232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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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안동 광평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 509 |
| 관련 정보 | |
| 성격 | 저수시설 |
| 키워드 | 저수시설, 도랑,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토기, 간 돌칼, 간 돌도끼, 간 돌살촉, 가락바퀴, 목기, 절굿공이, 검단리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도헌 |
설명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 509에 위치한다. 안동 서후-평은 국도 확장 공사에 앞서 2005~2008년 조사하여, 저수(貯水) 시설 시설 2기, 도랑(溝) 1기 및 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야트막한 구릉지(丘陵地) 사이에 발달한 골짜기 가운데 경사가 완만한 지점(해발 132~136m)에 위치한다. 저수 시설 2호는 1호 위에 중복하여 설치되었으며 도랑은 1호 저수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파괴되었다.
저수 시설 1호는 발굴 범위 전체에 걸쳐 확인되었으며, 길이 145m, 너비는 8~15m, 깊이 0.7~2m이다. 너비가 좁으면 완만하게 꺾이는 사행천(蛇行川)과 비슷하며, 단면은 끝이 뭉퉁한 ‘V’자 모양이다. 남서쪽의 너비가 급격히 좁아지는 지점 주변에 지름 10~20㎝의 목재(木材)가 10여 점 출토되었고, 지름 1m, 깊이 0.7m의 구멍(穴) 2개도 확인되었다. 다수의 목재와 구멍은 수문(水門)의 흔적이라는 의견과 보(洑)의 흔적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저목장(貯木場)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호도 유적 전체에서 확인되었는데, 길이 145m, 너비 2.5~4.5m, 깊이 0.7~1.5m이다. 형태는 1호와 비슷하지만, 너비가 급격히 달라지는 부분이 없다. 단면은 1호처럼 끝이 뭉퉁한 ‘V’자 모양이다. 내부에서 확인된 시설은 없으나, 내부의 퇴적(堆積) 양상이 1호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의 시설로 추정된다. 도랑은 북남 방향으로 진행하고, 길이 24.2m, 너비 4.2m, 깊이 1m이다. 구조로 보면 수로(水路)일 가능성이 높다.
유물은 저수 시설에서 대부분 확인되었으며, 몇 개의 지점에 집중되어 있고 파편이 많다는 점에서 수변(水邊)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류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와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바리 토기(鉢形土器)는 양쪽에 손잡이(把手)가 달린 것도 있으며, 아가리는 대체로 직립(直立)하거나 약간 내경(內頃)한다. 무늬는 대부분 민무늬이며, 일부 구멍무늬(孔列文), 낟알무늬도 확인된다. 석기류는 다양한 모양의 간 돌칼(磨製石刀), 간 돌도끼, 간 돌살촉이 있고 돌로 만든 가락바퀴도 확인되었다. 나무 연장(木器)도 출토되었는데, 절굿공이와 나무 괭이, 도끼 자루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많은 양의 벼 껍질도 확인되었다.
저수 시설은 저수지(貯水池)인지 보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수리 시설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출토 사례가 드문 청동기 시대의 나무 연장과 농기구, 벼 껍질이 출토되어 농경 문화를 이해하는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출토된 토기는 검단리식(檢丹)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영남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의 확산과 융합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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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노중국. (2010). 한국고대의 수리시설과 농경에 대한 몇 가지 검토. 한국고고환경연구소(편), 한국고대의 수전농업과 수리시설(pp.11-50). 서경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2141992
- 동양대학교박물관. (2010). 안동저전리유적. https://www.riss.kr/link?id=M12523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