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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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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86년 || 사리원시 광성동고인돌발굴에 대하여 || 1988 || 사회과학출판사
| 발굴조사 || 1986년 || 사리원시 광성동고인돌발굴에 대하여 || 1988 || 사회과학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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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동일. (1988). 사리원시 광성동고인돌발굴에 대하여. <i>조선고고연구, 4</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광성동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사리원 광성동 고인돌군, 사리원 광성동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황해북도 사리원시 광성동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사람 뼈, 팽이 토기, 청동기, 침촌형 고인돌, 간 돌살촉, 간 돌검, 돌끌, 대롱옥, 슴베 간 돌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황해북도 사리원시 광성동에 위치한다. 1986년 가을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정방산 남쪽기슭과 발양산 북쪽 기슭으로 용림중학교 옆에서 5기, 변전소 옆에서 5기, 성문 1지점에서 7기, 성문 2지점에서 5기, 성문 3지점에서 3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성문 1지점에서 확인된 것은 하나의 돌무지(積石)에 고인돌 6기가 있다. 무덤방(墓室)은 덮개돌(上石) 아래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을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돌널형(石棺形)으로 짜고 주위에 자갈돌을 채운 구조이다. 무덤 바닥에는 자갈을 깔거나 흙만 깐 것이 있다. 4호에서는 사람 뼈 2개체가 있고, 껴묻거리로는 팽이 토기청동기 편, 청동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5호 무덤에서도 모두 불탄 사람 뼈와 함께 간 돌살촉 3점, 팽이 토기 편, 간 돌검, 돌끌(石鑿) 등이 나왔다.

성문 1지점 고인돌은 침촌형 고인돌 무덤의 전형이며 4호를 부부 합장무덤으로 볼 때 1·3·5호는 가족 무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침촌형 고인돌 무덤에서 청동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성문 2지점 고인돌은 1~3호와 4·5호가 각 하나의 돌무지 안에 들어 있는데 성문 1지점의 무덤방들과 구조는 같다. 1호에서 팽이 토기, 3호에서 벽옥제(壁玉製) 대롱옥(管玉), 4호에서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편 등이 출토되었다.

광성동 고인돌의 유물 갖춤새는 호남리(남경) 유적, 고연리 유적 등 이른 시기의 팽이 토기 유적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86년 사리원시 광성동고인돌발굴에 대하여 1988 사회과학출판사

참고문헌

  • 김동일. (1988). 사리원시 광성동고인돌발굴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