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205: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20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020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관창리 유적
| 이칭별칭=보령 관창리 유적
| 이칭별칭=보령 관창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1227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가마터]], [[구덩이]], [[도랑움무덤]], [[논]],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가마터]], [[구덩이]], [[도랑움무덤]], [[논]],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현숙
| 집필자=이현숙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1227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34번째 줄: 34번째 줄: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KC-020호 420±70 BP, KC-038호 2400±90 BP, KC-040호 2810±90 BP, KC-048호 2630±70 BP, KC-059호 2480±70 BP로 제시되었다.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KC-020호 420±70 BP, KC-038호 2400±90 BP, KC-040호 2810±90 BP, KC-048호 2630±70 BP, KC-059호 2480±70 BP로 제시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보령_관창리_유적_KC-001_집자리와_구덩이.jpg
File:보령_관창리_유적_제1보시설_세부.jpg
</gallery>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1). <i>관창리 주구묘</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3633
* 대전보건대학박물관. (2002). <i>관창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8350658
* 아주대학교박물관. (1999). <i>관창리 유적</i>.  https://museum.ajou.ac.kr/museum/research/report.do?mode=view&articleNo=328729&article.offset=0&articleLimit=6#a
* 충남대학교박물관. (1995). <i>보령 관창리 주거유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6 기준 최신판


관창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보령 관창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122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가마터, 구덩이, 도랑움무덤, , 도랑,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현숙



설명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1227 일원에 위치한다. 학교 시설 부지였던 곳으로 A~G의 7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1994~1995년까지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원가 관창리 도랑움무덤(周溝土壙墓)과 B·G구역, 아주대학교박물관에서 A·F구역, 대전보건대학박물관에서 C·E구역,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D구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여러 개의 나지막한 구릉과 그 사이의 계곡, 그리고 저지대의 충적 대지에 입지하는데 집자리 147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石棺墓) 16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1기, 타원형 가마터(窯址) 26기, 구덩이 76기, 도랑움무덤 99기, 논(水田) 관련 시설, 고상가옥(高床家屋) 흔적의 기둥 구멍 밀집 유구 40기, 도랑(溝) 5기와 그 밖에 불명 유구 53기,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20기 등으로 구성된 복합 유적이다.

집자리는 모두 송국리식으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말각) 장방형, (말각) 방형, (타)원형으로 구분되지만, (타)원형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내부 시설은 바닥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과,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것, 타원형 구덩이 양쪽의 기둥 구멍이 있는 것, 그리고 타원형 구덩이 외곽에 4~8개의 기둥 구멍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것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타원형 구덩이가 시설될 경우 화덕 자리는 없지만 일부의 장방형에는 화덕 자리가 남아 있기도 하다. 바닥에 도랑(溝) 시설을 갖춘 것도 많다. 면적은 7.8~56.6㎡으로 다양한데, 타원형 구덩이 외곽에 4~8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된 크기는 30~56.6㎡으로 중앙에 밀집된 것이 특징적이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의 일부가 받침돌(支石) 위에 걸쳐있을 뿐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받침돌 높이는 1m 정도이고 탁자식(卓子式)으로 판단된다.

돌널무덤은 16기로 작은 깬돌(割石)이나 판돌(板石)로 축조하였고, 크기는 장축이 0.3~1.4m까지 다양하다. 바닥에는 판돌이나 깬돌을 깔아 주검 받침(屍床)을 마련하였다.

돌뚜껑움무덤은 1기가 있으며 평면 타원형의 무덤 구덩(墓壙)을 파고 여러 매의 돌을 덮은 것이다.

가마터는 형태와 크기에 관계없이 내부에서 불탄 흙과 목탄이 다량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토기 편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들 가마터는 다른 유구와의 중복이 심하며 일부는 집자리가 매몰된 뒤에 만든 것도 있다. 구조는 정확하지 않지만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토기를 소성한 한뎃가마(露天窯)로 판단한다.

논 유구는 구릉을 따라 좁게 형성되어 있는 계곡 말단의 해발 8m 내외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는 지역에 자리한다. 계곡 중앙을 흐르는 작은 하천을 정비하여 수로로 이용해서 양쪽의 평탄지에 경작지로 논(水田面)을 만들었다. 이 논은 청동기 시대에 조성되어 이후 중세 시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한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의 경우 민무늬 토기간 토기(磨硏土器)가 있으며, 민무늬 토기는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사발 모양 토기(燔形土器)의 기종이 보이고 간 토기는 항아리 모양과 사발 모양이 있다. 이들 토기들은 대체로 송국리식에 포함되는 것이나 일부에는 두드림판(打捺板)에 의한 짧은 무늬가 새겨진 것도 있다. 석기는 돌검(石劍), 돌살촉, 돌칼(石刀), 돌도끼(石斧), 숫돌(砥石), 갈판(耉石), 갈돌(耉石棒), 가락바퀴, 돌망치(石鎚), 소형 투공석기(透孔石器) 등이 있다. 이들 출토 유물은 유구 간, 혹은 유물 간에 큰 시기차나 성격차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유구 간에 출토량은 차이가 있다.

관창리 유적은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동일 시기의 집자리와 무덤군, 가마터, 구덩이 등과 함께 생산 유적인 논 유구가 조사되어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집자리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는 KC-020호 420±70 BP, KC-038호 2400±90 BP, KC-040호 2810±90 BP, KC-048호 2630±70 BP, KC-059호 2480±70 BP로 제시되었다.

이미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