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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갈마리 해평 유적
| 이칭별칭=임실 갈마리 해평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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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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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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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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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천선행
| 집필자=천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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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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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과 [[회곽묘|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움무덤(土壙墓)]]과 [[회곽묘|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4기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단독 또는 2~3기가 무리를 이루며 구릉 정상과 사면에 흩어져 있다. 집자리는 원형 5기(1·3~6호)와 방형 9기(2·7~14호)로 나뉜다. 원형은 구릉 능선상에 입지하고, 방형은 2호와 14호를 제외하고 남사면에 입지한다. 원형 집자리의 규모는 지름은 3.1~6.3m로 면적이 20㎡를 넘는 것과 소형인 것이 있다. 집자리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을 설치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松菊里式) 집자리]]로, 타원형 구덩이 외측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1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것이다. 타원형 구덩이에서 [[석기|석기]] 제작 관련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특히 미완성 석기와 [[숫돌|숫돌(砥石)]]이 많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중간 소재에 해당하는 석기 유물들과 석기 제작 관련 도구들이 보관되었거나 마연과 같은 석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4기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단독 또는 2~3기가 무리를 이루며 구릉 정상과 사면에 흩어져 있다. 집자리는 원형 5기(1·3~6호)와 방형 9기(2·7~14호)로 나뉜다. 원형은 구릉 능선상에 입지하고, 방형은 2호와 14호를 제외하고 남사면에 입지한다. 원형 집자리의 규모는 지름은 3.1~6.3m로 면적이 20㎡를 넘는 것과 소형인 것이 있다. 집자리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을 설치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松菊里式) 집자리]]로, 타원형 구덩이 외측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1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것이다. 타원형 구덩이에서 [[석기|석기]] 제작 관련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특히 미완성 석기와 [[숫돌|숫돌(砥石)]]이 많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중간 소재에 해당하는 석기 유물들과 석기 제작 관련 도구들이 보관되었거나 마연과 같은 석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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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갈마리 유적에서 확인된 원형계 집자리에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양상이 우세하다는 사실은 임실을 포함한 섬진강 유역의 송국리식 집자리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특징은 금강 유역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전라북도 서부 지역 양상과 유사하다.
아울러 갈마리 유적에서 확인된 원형계 집자리에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양상이 우세하다는 사실은 임실을 포함한 섬진강 유역의 송국리식 집자리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특징은 금강 유역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전라북도 서부 지역 양상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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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7). <i>임실 갈마리 해평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6 기준 최신판


갈마리 해평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임실 갈마리 해평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돌덧널무덤, 움무덤, 회곽묘, 송국리식 집자리, 석기, 숫돌, 격지, 송국리문화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천선행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542에 위치한다. 임실 제2 농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고덕산(해발 625m)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가지구릉(해발 240m 내외)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해발 300m 내외의 구릉이 발달하고, 서편으로 대덕천이 남북으로 흘러 임실천으로 합류한다. 유구는 해발 240~230m의 가지구릉 정상부와 능선, 사면에 걸쳐 분포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를 비롯하여 구석기 시대 문화층, 원삼국 시대 집자리와 구덩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회곽묘(灰槨墓)가 다수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4기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단독 또는 2~3기가 무리를 이루며 구릉 정상과 사면에 흩어져 있다. 집자리는 원형 5기(1·3~6호)와 방형 9기(2·7~14호)로 나뉜다. 원형은 구릉 능선상에 입지하고, 방형은 2호와 14호를 제외하고 남사면에 입지한다. 원형 집자리의 규모는 지름은 3.1~6.3m로 면적이 20㎡를 넘는 것과 소형인 것이 있다. 집자리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을 설치한 송국리식(松菊里式) 집자리로, 타원형 구덩이 외측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1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것이다. 타원형 구덩이에서 석기 제작 관련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특히 미완성 석기와 숫돌(砥石)이 많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중간 소재에 해당하는 석기 유물들과 석기 제작 관련 도구들이 보관되었거나 마연과 같은 석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방형 집자리는 사면 하단부쪽이 모두 유실되어 내부 시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규모는 길이가 4m내외이고 면적 12~21㎡로 방형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크지만, 송국리식 집자리에 비해서는 작다. 내부 시설로는 2호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고, 12호에서 벽가를 따라 도랑(壁溝)이 형성된 정도이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나뉜다. 토기류는 51점으로 민무늬 토기 편을 비롯하여 바리 토기(鉢形土器), 외반 구연 토기(外反口緣土器),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가 출토되었다. 대부분이 문양이 없지만, 10호에서 구멍무늬(孔列文)가 시문된 토기 편이 2점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118점으로 완제품인 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7점, 뒤지개(掘地具) 1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기 제작 관련 유물로, 돌도끼(石斧), 간 돌살촉, 돌칼(石刀)의 미완성품, 배 모양 석기(船形石器), 망칫돌, 숫돌(砥石)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일부 격지(剝片)와 석편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형태와 구조, 출토 유물로 보아 갈마리 해평 유적은 송국리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청동기 시대 6호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가 2490±30 BP(기원전 790~510년)로 기원전 7~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갈마리 해평 유적은 인근에 위치하는 삼길리 유적(외량2 유적)과 유사하게 석기 제작이 이루어진 취락이다. 그러나 삼길리 유적에서 방형 집자리만 확인되는 반면, 갈마리 유적에서는 원형과 방형이 함께 확인되고, 양자 사이의 석기 구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완제품의 석기가 출토되고, 숫돌이 거의 대부분 확인되는 반면, 방형 집자리에서는 소형 숫돌이 출토된 10호를 제외하고 숫돌이 거의 출토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석편이나 격지의 출토량이 많다. 원형와 방형 집자리에 보이는 유물 구성 차이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던 주된 석기 제작 공정이 달랐음을 말해준다. 즉 방형 집자리에서는 주로 석기 제작의 초기 공정, 원형 집자리에서는 석기 제작의 마지막 공정이 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갈마리 유적에서 확인된 원형계 집자리에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을 설치한 양상이 우세하다는 사실은 임실을 포함한 섬진강 유역의 송국리식 집자리 특징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특징은 금강 유역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전라북도 서부 지역 양상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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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7). 임실 갈마리 해평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