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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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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38 기준 최신판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
기본 정보
동의어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 취락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남부 지역
관련 정보
유적 김천 송죽리 바위그늘 유적, 대구 검암동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키워드 신석기 시대 마을, 한반도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마을, 한반도 남부 내륙 지역의 신석기 마을,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구자진



설명

한반도 남부 지역은 행정구역상 경상도와 전라도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키며, 지리적으로는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이남이다. 남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는 대부분 큰 하천과 그 지류의 충적 대지에서 발견된다. 마을의 입지에 따라 생계 방식과 시기별 문화 확산 과정이 달라지므로 남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은 크게 해안 지역과 내륙 지역으로 나눈다. 전기의 마을은 해안과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며, 점차 내륙 지역으로 확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석기 시대 전기의 마을은 내륙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해안 지역에서만 확인된다. 해안 지역의 전기 마을 중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3호와 여수 송도 조개더미, 하동 목도 조개더미에서 집자리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집자리의 평면은 원형이며, 화덕 자리는 송도 조개더미에서 돌두름식[圍石式], 목도 조개더미에서 구덩식[竪穴式]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중앙에 있기도 하고 한쪽에 치우치기도 하며, 규모는 상대적으로 큰 편으로 대개 지름이 100~150cm 내외이다. 기둥 구멍은 소수의 집자리에서만 확인되었으나 정형성은 보이지 않는다. 송도 조개더미와 목도 조개더미는 모두 패층(貝層) 내에 집자리를 조성하였다.

동삼동 조개더미와 목도 조개더미에서는 기둥 구멍만 남은 유구도 확인되었다. 목도의 집자리는 조개더미의 유구와 같은 층에 위치하며, 구멍은 총 6개로 오각형을 이룬다. 기둥 구멍은 기반층인 자연 암반에서 마무리된다. 동삼동 조개더미에서도 유적의 최하층인 기반층에서 기둥 구멍이 다수 조사되었다. 일정한 정연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집자리나 기타 부속 건물과 관련된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남부 내륙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의 마을이 다수 조사되었다. 시기적으로 중기와 후기의 집자리 평면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중기의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인데, 후기의 집자리는 원형이 주류를 이룬다. 중기의 김천 송죽리 유적이나 진주 상촌리 유적은 집자리의 규모가 지름 7~10m 내외에 달하며, 후기의 합천 봉계리 유적이나 거창 임불리 유적은 집자리의 지름이 3~5m 내외로 중소형에 해당한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 중 화덕 자리는 대부분 구덩식이며, 시기나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작다. 평거동 유적 5호 집자리와 밀양 금천리 유적의 집자리에서는 돌두름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합천 봉계리 유적의 집자리 일부에서는 돌무지식[集石式] 화덕 자리와 돌두름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지만, 그 구조는 확실하지 않다. 중기에는 원형 화덕 자리가 집자리의 중앙에 위치한 데 반해, 후기에는 집자리의 중앙에 위치한 것과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혼재한다.

중기의 집자리는 기둥 구멍을 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배열하거나 불규칙하게 배열한 것이 다수이지만, 후기에는 기둥 구멍이 없는 것과 불규칙한 것이 대부분이다. 집자리가 대부분 강변에 충적 대지에 위치한 만큼, 바닥은 생토인 모래층에 형성된다. 진주 평거동 유적 14호와 김천 지좌리 유적 4·5호 집자리에서만 바닥에 점토를 다진 흔적이 일부 확인될 뿐 대부분 생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입구 시설은 대구 유천동 유적과 합천 봉계리 유적, 진주 평거동 유적의 일부 집자리에서 돌출된 형태로 확인되었다. 중기의 김천 송죽리 유적은 집자리 외부에 저장구덩이가 있는데, 이 저장구덩이에서는 도토리가 확인되어 저장 시설로 보이며 집자리와 저장구덩이는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 대규모 마을임이 확인된 중기 유적에는 진주 상촌리 유적·평거동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이 있으며, 후기 유적에는 합천 봉계리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김천 지좌리 유적 등이 있다. 이 마을들은 강변의 넓은 충적 대지에 입지하며, 주거와 생산이 분리된 구조를 보인다. 또한 대형 집자리의 주변으로는 야외 저장 시설이나 야외 화덕 자리가 분리되어 조성되어 있다.

남부 지역의 해안에 위치한 유적 중 중기 유적인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정화지역 내 유적 1·2호의 집자리는 남해안 지역에서 조사된 조개더미 유적의 집자리 중 잔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집자리의 평면은 1호는 방형, 2호는 원형이며, 규모는 지름 5∼6m 내외로 추정되어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화덕 자리는 1호 집자리의 서벽에서 40c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지름 70cm 정도의 불 맞은 흙이 형성되어 있다. 기둥 구멍의 깊이, 내부토의 부식 정도, 색조 등이 차이를 보여,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2호 집자리의 것으로 판단되는 기둥 구멍도 발견되었는데, 집자리 벽면을 따라 20cm 전후의 기둥 구멍을 1열로 배치하고, 그 안쪽으로 말각 방형인 기둥 구멍을 설치하였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 중 특징적인 것은 도랑과 단 시설의 존재이다. 단 시설은 집자리의 한쪽 벽면에 높이 20cm 정도로 마련하였는데, 단과 집자리의 바닥 사이에는 도랑을 파고 그 내부에 작은 구멍을 설치하였다. 도랑은 단면 ‘U’자 모양으로 이루어졌으며, 깊이 20∼30cm, 너비 50cm, 길이 5m 정도가 남아 있다.

남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 마을의 출토 유물에서 지역 내의 다른 마을이나 주변 지역과 적극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개더미 유적에서 일본산 흑요석이나 조몬(繩文) 토기가 발견되며, 멀리 있는 섬에서 포유류의 뼈가 출토되기도 한다. 또한 토기는 인접한 중서부 지역이나 동해안 지역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 주어, 다른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전기에는 동해안 지역과, 중기 이후에는 중서부 지역이나 내륙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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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