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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1일 (수) 12:03 기준 최신판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문화
기본 정보
동의어 강원 영동 지역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문화
시대 신석기 시대
지역 한반도 중동부 지역
관련 정보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고성 철통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양양 지경리 유적, 울진 죽변리 유적, 울진 후포리 유적
키워드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지역 구분,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마을,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황철주



설명

한반도 신석기 시대 시대의 중동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강원도 영동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동해안 지역을 뜻한다. 이 지역은 기원전 5,000년 전후의 신석기 시대 조기에 오산리식 토기가 등장하여 유행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울진 죽변리 유적 등에서 새로운 발굴 조사 자료가 확인되면서 토기 문화권이 다시 설정되었으며, 울진 후포리 유적과 같은 기존 자료 역시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현재 중동부 지역의 범위는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 울진군을 경계로 하는 경상북도 북동부까지 포함한 동해안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중부 내륙 지역의 북한강·남한강 유역으로 분류되는 강원도 영서 지방까지 중동부 지역에 포괄하기도 한다. 이는 중동부 지역의 특징적인 토기 양식으로 알려진 신석기 시대 조기 오산리식 토기가 춘천 교동 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으며, 중기 이후 중서부 지역의 새김 줄무늬 계통 토기[沈線文系土器] 집단이 중동부 지역으로 확산하는 과정이나 변화상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산리식 토기는 춘천 교동 동굴 유적을 제외한 영서 지방에서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춘천 내평리 유적·신매리 유적·우두동 유적, 정선 아우라지 유적, 평창 용항리 유적 등에서 확인된 새김 줄무늬 계통의 토기는 동해안 지역뿐만 아니라 중서부 지역이나 호서 지방과도 관련이 깊다.

한반도 중동부 지역의 신석기 시대는 크게 조기, 중기, 후기로 구분되며, 전기와 만기의 양상은 불분명하다. 최근에는 전기 유적이 없는 이유를 당시의 환경 변화에 따른 유적의 입지 변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말기 유적은 겹아가리 토기가 강릉 판교리·안현동 일대에서 지표 채집된 바 있으며, 강릉 초당동 유적·안현동 유적 등에서 아가리에 짧은 새김 줄무늬[短斜沈線文] 1~2줄과 빗금무늬[斜線文]가 시문된 토기가 출토된 바 있으므로 향후 자료의 증가에 따라 유적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조기의 토기는 총 4단계로 구분된다. 조기 1기는 표면에 붉은 칠을 하거나 산화철을 많이 섞어 붉은색을 띠는 눌러찍은 점열무늬[赤色押捺點列文]가 특징적이다. 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가 일반적으로 출토된다. 편평한 바닥[平底]에 몸통의 최대 지름이 윗부분에 있고, 아가리가 바로 서거나[直立] 밖으로 살짝 꺾여[外反] 있으며, 손잡이가 아가리 바로 밑에 부착된다. 고성 문암리 유적Ⅰ 9․10층과 Ⅱ유적 XIV층, 양양 오산리 C유적 조기 최하층(9․10층), 울진 죽변리 유적Ⅱ 3구역 Ⅴ-2층과 야외 화덕 자리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조기 2기의 특징은 붉은 칠을 한 콩알무늬[豆粒文]이다. 아가리는 미약하게 꺾이고 몸통은 윗부분이 급격하게 꺾이는 편평한 바닥 토기가 일반적이며, 손잡이가 없는 대형의 바리 토기가 등장한다. 가장 이른 형식의 콩알무늬로 추정되며, 조기 1단계의 전통 아래에서 남해안 지역 동삼동식 토기(덧무늬 토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울진 죽변리 유적Ⅱ 3구역 Ⅴ-1층과 Ⅳ-2층 등이다.

조기 3기는 강원도 영동 지방의 오산리식 토기와 경상북도 북동부의 죽변리식 토기로 구분된다. 오산리식 토기는 아가리 안쪽을 비스듬하게 처리하여 단을 이루는 편평한 바닥 토기이며, 찌르기[刺突]·눌러찍기[押捺]·눌러긋기[押引] 기법으로 시문한 반붓두껍무늬[半竹管文], 점열무늬, 짧은 빗금무늬, 손톱무늬 등이 중심을 이룬다. 양양 오산리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춘천 교동 동굴 유적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죽변리식 토기는 몸통 윗부분이 급격하게 꺾여서 어깨[肩部]가 형성된 형태의 편평한 바닥 토기이며, 콩알무늬와 덧무늬가 중심을 이룬다. 조기 2기의 토기가 발전된 형태로, 전체에 붉은 칠을 한 토기가 많으며, 손잡이의 형태도 다양해진다. 대표적인 유적은 울진 죽변리 유적이다.

조기 4기는 늦은 단계의 덧무늬 토기로, 산 모양 무늬, 기하학무늬, 수직종대문(垂直縱帶文) 등이 중심을 이룬다. 죽변리식 토기는 3단계에서 이미 덧무늬 토기로 전환되었으므로 자연스러운 변화상으로 보이지만, 오산리식 토기의 시문 기법과는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과도기적인 양상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울진 죽변리 유적 상층과 양양 오산리 C유적 집자리 3~5호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중기의 토기는 2단계로 구분된다. 중기 1기는 중서부 지역의 전통을 따르는 뾰족 바닥[尖底]의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주류를 이룬다. 무늬는 짧은 빗금무늬 위주이며, 구분계 시문과 동일계 시문이 공존하고 표면 전체에 시문하거나 몸통 윗부분까지 시문한다. 아가리에는 짧은 빗금무늬, 그 밑에는 삼각 집선무늬 등을 부가 무늬[附加文]로 새기며, 몸통에는 가로 생선뼈무늬, 바닥에는 방사상무늬를 시문한 것이 많다. 강릉 지경리 유적 1~5호 집자리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중기 2기는 남해안 지역과 마찬가지로 굵은 새김 줄무늬 계통의 토기[太線沈線文系土器]가 주로 나타난다. 중서부 지역의 편평한 바닥 토기가 사라지고 둥근 바닥 토기가 등장하며, 새롭게 작은 긴 목 항아리[長頸壺] 모양 토기와 붉은 칠 토기[朱漆土器]가 나타난다. 무늬는 아가리에 시문한 짧은 빗금무늬 외에도 각종 집선무늬[集線文]가 유행하지만, 몸통에는 여전히 가로 생선뼈무늬가 압도적이다. 양양 송전리 유적 1호 집자리, 양양 지경리 유적 6호 집자리, 강릉 초당동 유적군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후기는 전기와 말기에 비해서는 자료가 많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새김 줄무늬를 아가리에만 시문하며, 가로 생선뼈무늬가 많고 격자무늬, 빗금무늬 등도 확인된다. 고성 철통리 유적, 강릉 지변동 유적, 울진 오산리 931번지 유적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중동부 지역 해안가는 풍성퇴적(風成堆積)이 활발하여 사구(砂丘)와 습지가 발달하였는데, 신석기 시대 유적들은 주로 이러한 안정된 사구 지대에서 확인된다. 특히 양양 오산리 유적과 같이 호수의 입구가 막혀 형성된 석호(潟湖)는 당시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며, 울진 죽변리 유적과 같은 해안 단구와 만(灣)에서는 바다로의 진출입이 쉬워지므로 내만성 어로외양성 어로가 함께 이루어졌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중동부 지역 신석기 시대의 생업 양상은 환경뿐만 아니라 도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기 1기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석기 제작 전통이 이어진 좀돌날 몸돌좀돌날이 확인되며, 길이 13cm 내외인 대형 그물추, ‘C’자 모양 결합식 낚시, 간 돌도끼, 간 돌살촉, 간 돌칼 등의 수렵구어로구가 확인된다. 이후 오산리식과 죽변리식으로 분화하는 조기 3기에는 대형의 그물추가 사라지고, 결합식 낚시의 형태도 ‘J’자 모양으로 변화한다. 또한 굴지구 등 채집 농경구와 돌칼 모양의 썰개[擦切具] 등도 증가한다.

중기에는 각종 돌살촉, 그물추, 돌도끼, 돌칼, 공이, 갈돌, 갈판 등 수렵구와 채집구, 어로구가 다양하게 확인되며, 그중에서도 돌살촉과 그물추가 다수를 차지한다. 채집 농경구와 가공구는 조기에 비해 수량이 줄어들고 비중도 높지 않지만, 공이, 갈돌, 갈판 등 잡곡 농경과 관련된 새로운 도구 조합이 나타난다. 어로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그물 어로가 중점적으로 활용되면서 낚시 어로는 크게 감소한다. 수렵구는 돌창돌작살이 감소하고 돌살촉의 수량과 비중이 증가한다. 따라서 중기에도 여전히 수렵어로가 생업의 중심이지만, 조기와 달리 포획 대상물이 짐승이나 물고기 등으로 변화한 듯하다. 중서부 지역 새김 줄무늬 계통 집단의 영향으로 새김 줄무늬 계통 토기와 함께 새로운 도구 조성과 잡곡 농경이라는 생계 양식도 들어왔으나, 농업이 생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에는 그물추와 돌도끼, 갈돌과 갈판 등 어로구와 가공구를 중심으로 도구가 구성된다. 중기에 비해 가공구는 급격히 늘어난 반면에 어로구는 줄어드는 양상이 확인되는데, 이는 유적의 감소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돌살촉은 울진 오산리 931번지 유적에서만 1점이 출토되었다.

중동부 지역 집자리는 중서부 지역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신석기 시대 조기부터 확인되지만, 주로 중기에 집중된다. 조기 1기의 집자리는 단 2동뿐으로, 양양 오산리 C유적 최하층에서 조사된 지상식 집자리와 반지하식 집자리이다. 초기 사구가 형성되는 시기인 고토양층 상면에서 조사되었으며, 평면은 원형이고, 지름은 3m로 소형이다. 중앙에는 양쪽을 냇돌로 막은 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가 있으며, 벽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조기 3기의 집자리는 고성 문암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용호리 유적 등 사구에서 조사된 오산리식 토기 집단의 집자리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바닥만 남아 있어 지상식 집자리로 알려졌지만, 사구 유적의 특성상 얕은 구덩이를 판 움집[竪穴住居址]일 가능성도 있다. 평면은 원형이나 타원형이며, 크기는 대체로 3∼7m 내외이다. 가운데에 돌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를 설치하였다. 조기 4기의 집자리는 덧무늬 토기가 출토된 양양 오산리 C유적 3~6호의 움집 4동뿐이다. 평면은 원형과 방형이며, 크기는 4~7m이다. 가운데에 구덩이를 얕게 판 돌두름식 화덕 자리가 있으며, 벽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중기의 집자리는 깊이 30cm 내외인 움집으로 조기에 비해 정형화되었다. 신석기 시대 조기에서 후기까지를 통틀어 유적과 유구의 수가 가장 많다. 고성 문암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가평리 유적·송전리 유적, 강릉 지경리 유적·초당동 유적·하시동 유적 등 강원도 영동 지방 해안 사구 지대나 석호 일대 전역에서 확인된다. 집자리 간 규칙이나 인위적 공간 형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움집의 평면은 원형이 많은 편이며, 말각방형, 장방형 등도 있다. 대체로 지름이 5~6m 내외이며, 큰 것은 8~10m에 달한다. 주로 원형 집자리가 소형이며, 방형계 집자리가 대형에 속한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가운데에 두며, 돌두름식과 구덩식이 모두 확인되고, 방형, 타원형, 원형, 장타원형, 장방형 등이 있다. 조기에 비해 좀 더 간단한 형태로 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화덕 자리가 없기도 하다. 기둥 구멍은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었거나 확인되지 않는 것이 많다.

후기의 집자리는 깊이 20cm 내외인 움집으로 사구에 자리한 조기나 중기의 유적과 달리 고성 철통리 유적, 울진 오산리 931번지 유적 등과 같이 구릉에 위치하여 입지 변화가 뚜렷하다. 움집의 평면은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 등으로, 방형이 많고 원형은 보이지 않는다. 고성 철통리 유적에서는 집자리 7동이 조사되었는데, 남북으로 뻗은 구릉의 평탄한 지점에 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된 양상이 확인된다. 1호 집자리만 북쪽으로 25m 떨어져 있을 뿐, 나머지 6동은 2∼5m 거리를 두고 규칙적으로 배치되었다. 지름은 3~6m로 조기나 중기에 비해 소형 집자리의 비중이 더욱 늘어난다. 화덕 자리는 크기가 50cm 내외인 원형의 구덩식으로 집자리 크기에 맞춰 작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울진 오산리 931번지 유적 집자리에서는 70~80cm 크기의 장방형 돌두름식 화덕 자리 2개가 겹쳐진 상태로 확인되어, 강원도 영동 지방과 경상북도 북동부 간의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기둥 구멍은 4주식(4柱式)으로 정형화되었다.

중동부 지역의 무덤은 현재까지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만 발견되었다. 최소 40여 구의 주검이 매장된 집단 무덤으로 모두 두벌묻기 하였다. 주검의 머리는 바다를 향하고 있으며, 장의예식(葬儀禮式)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장대형의 간 돌도끼 180여 점을 덮었다. 껴묻거리로는 옥 장신구가 있으며, 토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반적인 유물상은 오산리식 토기가 출토된 춘천 교동 동굴 유적과 유사하므로, 신석기 시대 조기의 무덤으로 편년하는 연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의례 활동은 조기 유적에서 확인된다.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조기 1기에 해당하는 곰 모양 흙 인형, 울진 죽변리 유적에서 조기 3기에 해당하는 곰 모양 흙 인형과 인물 모양 손잡이[象形把手], 원판 모양 토제품, 붉은 칠을 한 죽변리식 토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생활 유적 내의 별도 구역에서 출토된 바 있다. 또한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 출토된 장대형 간 돌도끼와 주검의 머리 방향이 바다를 향하도록 매장한 방식 등은 장송 의례의 한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반도 중동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 변화에 따른 입지 변화와 문화 변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역 간 이동과 교류가 활발하여 토기 문화의 공존기와 교체기도 가장 복잡했다. 특히 중서부 지역과 남부 지역,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 지역 간의 점이 지대(漸移地帶)로서 독특한 문화 유형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중동부 지역은 한반도 신석기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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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윤정국. (2016). 한반도 중동부지역 신석기시대 생계유형의 검토 -석기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신석기연구, 31, 51-86. https://www.riss.kr/link?id=A104730569
  • 임상택. (2017).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양식의 성립과 변동. 고고학, 16(1), 39-102. https://www.riss.kr/link?id=A103104395
  • 황철주. (2020). 토기로 본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 신석기시대 조기 사회상. 고고광장, 27, 1-23. https://www.riss.kr/link?id=A107213915
  • 황철주. (2022). 동해에 인접한 극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매장 관습과 사회상. 한국신석기연구, 43, 1-34. https://www.riss.kr/link?id=A108197075
  • 황철주. (2022). 신석기시대 조·전기 동해안 중부지역의 고환경과 토기문화 변동. 영남고고학회(편저), 한일의 무기·무구·마구 -최신 발굴조사 자료로 본 교류-: 제14회 영남·구주학회 합동고고학대회 발표자료집(pp.275-302). https://www.riss.kr/link?id=A108514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