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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제주도의 신석기 토기(濟州道의 新石器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제주도의 신석기 토기 | 시대=신석기 시대 | 관련 지역=제주도 | 관련 유적=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 북촌리 유적, 서귀포 성읍리 유적, 제주 오등동 유적 | 키워드=[[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 [[고산리식 토기]], [[북촌리식 토기]], [[제주도의 신석기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4 | 집필자=박근태 }} ==설명== 토기는 점토를 성형하여 소성한 용기로 토기의 무늬와 기형은 만들어진 시간과 지역을 반영하는 물질 자료이다. 제주도의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유사하면서도 제주도만의 특징이 나타난다.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신석기 시대 토기인 [[고산리식토기|고산리식 토기]]는 제주도에서만 한정적으로 출토되는 반면, 가장 일반적인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인 [[굵은새김줄무늬|굵은 새김 줄무늬[太線沈線文]]] 토기는 제주도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시기 구분에 따라 초창기-조기-전기-후․말기의 신석기 토기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초창기 단계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은 제주도 지역에만 분포한다. 고산리식 토기는 유기물 혼입흔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눌러찍은 점열무늬[押捺點列文] 토기로 구분된다. 유기물 혼입흔 토기는 토기를 소성(燒成)한 후에 토기의 표면에서 식물의 잎이나 줄기와 같은 유기물이 혼입된 흔적이 확인되는 토기를 말한다. [[제주고산리유적|고산리 유적]], [[서귀포강정동유적|강정동 유적]], [[제주삼화지구유적|삼화지구 유적]], [[제주수산리유적|수산리 유적]], [[제주금성리유적|금성리 유적]], [[제주오등동유적|오등동 유적]], [[제주김녕리유적|김녕리 유적]], [[제주도두동유적|도두동 유적]], [[제주외도동유적|외도동 유적]], [[서귀포예례동유적|예례동 유적]], [[서귀포성읍리유적|성읍리 저류지]]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으며 제주 전역에 분포한다. 식물 규산체 분석 결과, 혼입된 유기물의 종류는 대부분 볏과의 억새속형, 기장족형으로 분석되었으며 목본 식물과 강아지풀속형, 쇠풀족형, 잔디속형도 일부 확인되었다. 대부분 [[바리토기|바리 토기]]이며, [[테쌓기|테쌓기[輪積法]]]나 [[점토판접합방식|점토판 접합 방식]]으로 토기를 제작하였다. 유적에 따라 바닥 지름의 크기가 5cm 정도인 소형 토기도 확인되지만, 대부분은 7~14cm로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었다. 고산리 유적 출토품을 복원한 결과 높이 25.5cm, 아가리 지름 21cm, 바닥 지름 10.9cm, 두께 0.5~0.7cm로 매우 얇게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는 유기물 혼입흔이 육안으로는 뚜렷하게 관찰되지 않는 토기이다. 고산리 유적, 강정동 유적, 삼화 지구 유적, 김녕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유기물 혼입흔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 대부분에서 함께 확인된다. [[편평한바닥토기|편평한 바닥을 가진 바리 토기]]가 대부분이다. 삼화 지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기형을 복원한 결과, 높이 11.8cm, 입 지름 14.6cm, 바닥 지름 6.6cm, 두께 0.5~1.3cm였다. 눌러찍은 점열무늬 토기는 고산리 유적, 김녕리 유적, 강정동 유적, 삼화 지구 유적, 외도동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한반도 지역의 신석기 시대 조기 이른 단계 유적인 [[양양오산리C지구유적|양양 오산리 C유적]]이나 [[여수안도조개더미|여수 안도 조개더미]]의 눌러 찍은 점열무늬 토기와 비교할 수 있다. 바닥은 편평하고, 바닥에서 몸통으로 올라가면서 완만한 곡선으로 벌어진다. 아가리는 대부분 직립하며 일부가 몸통 윗부분에서 입술 방향으로 약간 축약되는 형태도 확인된다. [[평행선문|평행선문]], [[삼각집선무늬|삼각 집선무늬]], [[톱니무늬|톱니무늬]], [[비뚠격자무늬|비뚠 격자무늬]], [[지자무늬|‘지(之)’자무늬]], [[마름모무늬|마름모무늬]] 등이 시문된다. 조기 단계의 [[덧무늬토기|덧무늬 토기]]의 시문 방식은 [[융기대문|융기대문(隆起帶文)]]이나 [[융기선문|융기선문(隆起線文)]]을 단독으로 시문하는 방식과 두 무늬를 복합하는 방식, [[새김줄무늬|새김 줄무늬[沈線文]]], [[자돌문|찌른 무늬[刺突文]]], [[두립문|콩알무늬[豆粒文]]]와 함께 장식하는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융기대문은 점토 띠 위를 손가락이나 도구로 누르거나 찍어 만든 무늬이며, 융기선문은 토기의 표면에 점토 띠를 덧붙인 무늬를 일컫는다. 한반도의 덧무늬 토기 전개는 총 4기로 구분되는데, 제주도의 덧무늬 토기에서는 1기의 횡대융기대문 토기가 확인되지 않는다. 융기대문과 융기선문이 복합 장식된 덧무늬 토기와 콩알무늬 토기는 2기에 해당하는데, 오등동 유적, [[제주고산리동굴유적|고산 동굴 유적]], [[제주삼양동유적|삼양동 유적]], [[제주김녕구좌체육공원유적|김녕 구좌 체육공원 유적]]에서 출토된다. 융기선문 토기는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과의 교류로 유입된 반면, 융기대문과 콩알무늬의 덧무늬 토기는 동남해안 지역에서 직접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3기 유적은 강정동 유적, [[서귀포사계리유적|사계리 유적]], 도두동 유적, 고산리 유적이다. 융기대문 토기는 확인되지 않으며 모두 융기선문 토기로 확인된다. 융기선문에 새김 줄무늬가 구획문 형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융기선문에 포함되어 시문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4기의 유적은 [[제주한동리유적|한동리 유적]], 고산리 유적, 삼양초등학교 유적, 사계리 유적 등인데, 3기와 같이 융기대문 토기는 확인되지 않고 모두 융기선문 토기이다. [[수직무늬|수직무늬]]나 [[빗금무늬|빗금무늬]] 등이 단독으로 배치되는 단순한 구성으로 변화한다. 전기 단계의 [[영선동식토기|영선동식 토기]]로는 바리 토기와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사발모양토기|사발 모양 토기]]가 확인된다. 바닥은 둥글거나 뾰족한 모양을 띤다. 찌른 무늬, [[압날문|눌러찍은 무늬]], [[압인문|눌러그은 무늬[押引文]]], [[골아가리|골아가리]] 무늬[口脣刻目文], [[가는새김줄무늬|가는 새김 줄무늬[細沈線文]]], [[조압문|꼬집은 무늬[爪押文]]]가 시문된 토기가 확인되며 지금까지 [[덧띠토기|덧띠[粘土帶] 접합흔 토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영선동식 토기는 덧무늬 토기(사계리 유적, 오등동 유적)나 후기 단계의 [[봉계리식토기|봉계리식 토기]](김녕 실증 단지 유적)와 유적 내에서 공반하는 양상을 보인다. 제주도의 영선동식 토기는 덧무늬 토기 단계의 찌르거나 눌러찍은 무늬 토기 전통이 유지되다가, 남해안 서부 지역과의 교류로 [[가로생선뼈무늬|가로 생선뼈무늬]]의 항아리 모양 토기나 바리 토기가 유입되는 시기에 전개된다. 제주도 영선동식 토기는 총 3기로 나뉜다. 1기는 찌른 무늬 계통 토기 중심의 영선동식 토기이다. 2기는 가로 생선뼈무늬 토기를 중심으로 하며 골아가리 토기도 확인된다. [[마름모집선무늬|마름모 집선무늬]], 삼각 집선무늬, 비뚠 격자무늬, 꼬집은 무늬 등 무늬 형태와 시문 방법이 다양하다. 3기는 가로 생선뼈무늬가 퇴화하여 수직문이나 복합문으로 변화한다. 골아가리는 단독 무늬에서 복합 무늬로 변화하고 삼각 집선무늬나 [[짧은빗금무늬|짧은 빗금무늬]], 비뚠 격자무늬 등이 발달한다. 중기 단계의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가 출토되지 않는 제주도 신석기 시대의 토기 편년을 감안하면 제주도의 영선동식 토기는 중기 단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봉계리식 토기와 [[북촌리식토기|북촌리식 토기]],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로 구성되는 제주도 후‧말기 단계의 토기는 시문 방법과 무늬 형태, 기종 등에 따라 [[점열선문토기|점열선문 토기]], [[새김줄무늬토기|새김 줄무늬 토기]], [[점열무늬토기|점열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로 구분된다. 제주도 신석기 시대 후기의 토기 문화는 [[수가리Ⅱ식토기|수가리 Ⅱ식 토기]]보다는 낙동강 이서의 남부 내륙과 서남부 지역에 분포하는 봉계리식 토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후기 단계에 부분적으로 겹아가리 토기문화가 유입되어 유행하면서, 겹아가리 토기가 원형 점열무늬 토기, 새김 줄무늬 토기와 공반하기도 한다. 후기 단계의 토기 양상은 봉계리식 토기에 가깝지만, 일부 [[번개무늬|번개무늬]]나 꼬집은 무늬 토기는 [[금강식토기|금강식 토기]]가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기에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가 부재했던 영향으로 새김 줄무늬계 토기의 분포가 적다. 또한 성읍리 유적처럼 꼬집은 무늬 토기가 유행하고 [[점열무늬|점열무늬]] 토기 무늬가 다양하며 현지화하는 특징이 확인된다. 말기 단계에는 재지화한 북촌리식 토기와 겹아가리 토기가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삼각 점열무늬를 주 무늬로 하지만 원형, 타원형, 사각형, 붓두껍 모양, 부정형 등의 다양한 점열무늬가 횡대 배열, 사선 배열(교차 배열), 수직 배열로 시문된다. 손잡이 달린 토기가 증가하는 양상도 확인된다. 이 역시 말기 단계에 후기의 토기 문화가 현지화되는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 토기는 대체로 한반도 남해안 지역과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섬이라는 환경적 요인의 영향으로 고산리식 토기처럼 제주도에서만 출토되는 토기가 있는 동시에 중기 단계의 굵은 새김 줄무늬 토기가 확인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제주도 토기의 특징은 환경적인 측면이나 생업 등과 관련하여 복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제주_고산리_유적_출토_눌러찍은_점열무늬_토기_조각.jpg File:제주_고산리_유적_출토_토기.jpg File:제주_성읍리_유적_출토_영선동식_토기.jpg </gallery> ==참고문헌== * 박근태. (2021). <i>제주도 신석기문화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부산대학교. https://www.riss.kr/link?id=T15810260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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