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700-0196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700-0196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치레걸이[裝身具]}}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치레걸이 | 이칭별칭=장신구 | 시대=구석기 시대 | 키워드=[[지닐 예술품]], [[불 땐 자리]], [[화석]], [[매장]]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23 | 집필자=공수진 }} ==설명== 치레걸이는 개인의 몸이나 의복을 꾸미기 위해서 만들거나 사용한 물품으로, [[지닐예술품|지닐 예술품]]의 한 종류다. 가장 오래된 치레걸이의 시기는 1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모로코 비즈문(Bizmoune) 유적], 대부분 [[후기구석기시대|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소재로 치레걸이를 만들었는데, 동물의 이빨, 뿔, 뼈, 상아, 조가비 또는 다양한 종류의 돌을 사용하였다. 동물의 이빨에 구멍을 뚫어서 여러 개를 연결한 목걸이나 팔찌, 뼈나 상아를 갈아서 만든 구슬 등도 발견되었다. 뼈나 돌 등의 재료로 만든 조각에 구멍을 뚫어 치레걸이로 만들기도 했다. 치레걸이는 화석화된 사람의 뼈 옆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 땐 자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치레걸이가 구석기 시대의 사회 구성이나 상징 체계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나, 그 용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이것이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상징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에는 많은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치레걸이가 집단 내 개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위세품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구석기 시대에 역사 시대와 같은 해석을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나코의 카비용(Cavillon) 동굴에서 발견된 ‘카비용 부인(Dame de Cavillon)’이나 러시아의 순기리(Sungir) 유적처럼 많은 치레걸이를 지닌 채 매장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성(性)이나 나이에 따른 차별성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순기리_유적_노인_매장_유구.jpg </gallery> ==참고문헌== * Chiotti, L. et al. (2008). Art et parure aurignaciens de l’abri Pataud (les Eyzies-de-Tayac, Dordogne, France) dans le contexte aurignacien du Périgord. In H. Floss, N. Rouquerol(Eds.), <i>Les chemins de l’art aurignacien en Europe</i>(pp. 171-186). Musée-forum Aurignac.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316004932 * Delluc, B., Delluc, G. (2012). <i>La vie des hommes de la Prehistoire</i>(2nd ed.). Ouest France. https://search.worldcat.org/ko/title/801042370 * Kuhn, S. L., Stiner, M. C. (2006). Les parures au paléolithique: Enjeux cognitifs, démographiques et identitaires. <i>Diogène, 214</i>(2), 47-58. https://doi.org/10.3917/dio.214.0047 * Vanhaeren, M., d’Errico, F. (2001). La parure de l’enfant de la Madeleine (fouilles Peyrony). Un nouveau regard sur l’enfance au Paléolithique supérieur. <i>PALEO, 13</i>, 201-240. https://doi.org/10.4000/paleo.1058 * d’Errico, F. et al. (2005). Nassarius kraussianus shell beads from Blombos Cave: Evidence for symbolic behaviour in the Middle Stone Age. <i>Journal of Human Evolution, 48</i>(1), 3-24. https://doi.org/10.1016/j.jhevol.2004.09.002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구석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700-0196
문서로 돌아갑니다.